진심은 법정에서도 가장 강력한 증거

답이 정해진 듯 인과가 명확할 땐
인식·의도 찾는 것이 변호의 출발
회피보다는 성찰, 변명보다는 진심
선택과 변화의 가능성을 증명하다

 

성범죄 사건을 담당하다 보면, 수사 단계에서 이미 ‘답이 정해진’ 듯한 사건을 접할 때가 있다. 증거는 명확하고, 혐의는 중대하며, 피의자 역시 자신의 행위를 부인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유죄 판결이 나오는 것이 정해진 수순일 것이다. 그러나 그럴수록 피의자 측에 선 변호인은 한 걸음 더 들어가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변호란 ‘정해진 답’이 아닌, 그 사람의 진심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확인하는 일이 되어야 한다. 

 

필자가 담당했던 이번 사건이 그랬다. 의뢰인은 아직 어린 나이로, 사회 초년생에 불과했다. 그는 온라인 음성 채팅 플랫폼을 통해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 판매 광고를 보고, 문화상품권으로 클라우드 링크를 구매해 약 1TB에 달하는 영상을 내려받아 노트북에 보관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특히 문제가 된 영상 중에는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던 ‘N번방’ 계열의 자료가 일부 포함되어 있었다.

 

처음 의뢰인은 단순한 호기심에 영상을 구매했다고 했다. 그러다 반복적인 행위로 이어졌고, 영상 판매자가 검거되면서 그가 가지고 있던 구매자의 아이디와 IP 주소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의뢰인의 존재까지 드러나게 되었다. 이때가 의뢰인이 처음 필자를 찾아온 시기였다.

 

수사기관은 이미 의뢰인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한 상태였고, 복구된 저장 장치에는 방대한 불법 영상이 저장되어 있었음이 확인되었다. 사안의 중대성을 따졌을 때 의뢰인에게는 구속영장이 발부될 가능성이 높았다. 더구나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아청법)’ 위반은 초범이라 할지라도 실형이 선고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제 막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의뢰인에게는 구속이 되는 일만큼은 피하고 싶다는 간절함이 있었다. 필자는 이 건을 단순한 ‘불법 영상 소지 사건’으로 보고 접근하지 않았다. 필자가 짚은 사건의 핵심은 ‘의뢰인이 이 영상을 어떤 인식 아래 보관했는가’, ‘어느 정도의 고의가 있었는가’였다.

 

형사 재판에서 ‘인식’과 ‘의도’는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사실관계를 통해 구체적으로 입증해야 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먼저 의뢰인이 소지한 자료의 구성과 수량, 영상의 성격을 하나씩 확인했다. 대부분은 단일 링크를 통해 일괄 압축된 형태였고, 의뢰인이 직접 열람하지 않은 파일도 상당수였다.

 

피의자신문조서에 기재된 파일 목록에는 일부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로 추정되는 제목이 있었지만, 전체 폴더의 규모가 수천에서 수만 개에 달해 의뢰인이 모든 파일의 내용을 확인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또한 보관 중인 상당수 영상의 파일명이 단순한 숫자 나열로 되어있어 이름만 보았을 때 어떤 내용인지 식별할 수 없는 형태였다.

 

이 점을 근거로 필자는 의뢰인이 단순 ‘영상 소지자’로서의 책임은 있을지 모르나, ‘성 착취물 유포·제작 의도’는 있지 않았음을 명확히 구분했다. 동시에 의뢰인의 태도 변화를 변론의 중심으로 삼았다. 의뢰인은 수사 초기부터 모든 사실을 인정하고 협조했다.

 

디지털 포렌식 조사에 참관하며 스스로 저장장치의 비밀번호를 제공했고, 자료 복구 과정에서도 은폐나 회피를 시도하지 않았다. 또한 의뢰인은 성 인식 개선 교육을 이수했다. 이를 통해 단순히 죄를 인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진심으로 반성하고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그의 가족과 지인들도 곁에서 그를 선도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탄원서를 제출했다.

 

그가 재판부에 보인 진심은 어떤 변명보다 강력한 설득력이 있었다. 이에 더해 필자는 재판부에 여러 차례 의견서를 제출했다. ‘이 사건은 반복적·상습적 유포 사건이 아닌 잘못된 호기심과 무지에서 비롯된 일회적 행위였다’는 점, ‘의뢰인이 장기간 동종의 범행을 저지른 적이 없어 재범의 가능성이 현저히 낮다’는 점을 강하게 어필하기 위해서였다.

 

최종적으로 법원은 이 주장을 받아들였고, 아동·청소년 성범죄 사건에서는 이례적으로 의뢰인에게 ‘선고유예’가 선고되었다. 마침내 의뢰인은 구속의 위기에서 벗어나 새로운 기회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정확한 사실관계의 확인이야말로 탄탄한 변호의 출발선이다. 더불어 형사사건의 변호의 본질은 죄를 변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선택과 변화의 가능성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번 사건은 다시 한번 그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