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한미 팩트시트(Fact Sheet)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되면서 국내외의 관심이 집중된 바 있다. 필자 역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어려운 외교 환경 속에서 협상을 이끌어 낸 이재명 대통령과 관련 부처, 그리고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국익을 위해 힘을 쏟은 수많은 관계자들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협상 타결 이후 언론을 통해 공개된 대통령의 소회는 필자의 시선을 특히 오래 붙잡았다. 외교적 압박이 극대화된 상황에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협상에 임했는지, 그리고 그 경험이 오늘의 형사재판을 대하는 우리에게 어떤 통찰을 주는지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용산 대통령실에서 “이번 협상은 우리의 의사가 합리적으로 반영되기보다 국제적 역학관계와 힘의 논리에 의해 일방적으로 처리될 가능성이 컸다”고 회고했다.
그는 협상안이 추상적 문헌처럼 보이기도 하고, 정치적 시각에 따라 오해의 여지가 많아 내부에서도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자’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는 점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대통령이 꼽은 가장 어려운 지점은 외부의 압박보다 오히려 내부의 조급함이었다. “빨리 합의하라. 시간 끄는 것은 무능의 증거다”라는 비판과 압박 속에서 그는 한동안 “참으로 힘들었다”고 표현했다.
그는 이번 협상을 “우리가 원하는 것을 쟁취하기 위한 적극적 협상이 아니라, 국제질서의 재편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손실을 최소화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임해야 하는 비자발적 협상이었다”고 정의했다. 그럼에도 그는 최대한 버티며 시간을 끌었다.
“강자와의 협상에서 우리가 가진 유일한 힘은 버티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협상 지연으로 인해 경제 불안이 커졌던 것에 대해서도, 그는 “시간이 오래 걸린 것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며 “국민께서 늦었다고 지탄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언급하며 연설을 마무리했다.
필자는 이 장면을 지켜보며 형사재판이 떠올랐다. 형사재판은 법리상 ‘당사자 대등’이라는 원칙을 전제로 하지만, 실무에서는 사실상 검사에게 유리한 구조가 고착화되어 있다. 공소제기 단계부터 방대한 기록 확보와 증거조사에 이르기까지 피고인이 출발선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피고인은 증거기록 열람·등사조차 확보하기 쉽지 않다.
대부분 신청 후 한참 지나서야 손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피고인이 취할 수 있는 전략은 단순하다. ‘버티며 시간을 확보하고, 그 사이에 논리와 자료를 갖춰 반격의 기회를 마련하는 것’이다.
재판은 빨리 끝내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제대로 끝내는 것이 본질이다. 그러나 상당수 피고인들은 구속 상태에서 시간이 길어질수록 불안과 조급함에 사로잡힌다. 속행을 요청하는 것조차 ‘재판부의 눈치를 보는 행위’로 오해해 스스로 불리한 선택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이재명 대통령의 말처럼 때로 우리의 유일한 힘은 ‘버티는 것’이다.
조급하게 재판을 밀어붙이면 정작 중요한 증거를 확보할 기회를 잃고, 전략을 정비할 시간도 부족해진다. 이 점에서 외교 협상과 형사재판은 닮아있다. 불리한 조건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견디며 스스로의 논리를 정교하게 다듬어 나가는 과정이 결과를 좌우한다.
협상 테이블에서 그렇듯, 법정에서도 버티는 시간은 결코 헛되지 않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필요한 자료를 모으고, 변호인과의 논의를 깊이 있게 진행하며, 재판부가 받아들일 수 있는 서면과 증거를 축적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혹한의 날씨 속에서, 또는 갑갑한 수감생활 속에서 하루하루가 끝없이 길고 두렵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을 것이다. ‘이 상황이 언제 끝날까’, ‘내가 버티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밀려오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럴 때일수록 필자는 이 말을 전하고 싶다. “때로 우리가 가진 유일한 힘은 버티는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분들 가운데도 인생의 가장 험난한 시기를 지나고 있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불안이 파도처럼 밀려오고 지칠 때, 스스로를 의심하는 순간이 찾아올 때, 대통령이 외교의 최전선에서 견지한 그 한 문장을 떠올려 주시길 바란다. 버티는 힘이 곧 살아남는 힘이며, 결국 상황을 바꾸는 힘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주셨으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