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3월 25일 오전, 경남 창원시 명서동의 한 주택가 골목에 세워진 택시 안에서 끔찍한 시신이 발견됐다.
당시 58세였던 택시 기사 강선길(가명) 씨는 자신이 몰던 택시 뒷좌석에 쓰러져 있었고, 공업용 커터칼에 목 혈관이 깊게 절단된 상태였다.
사건 직후 경찰은 차량 내부와 주변을 샅샅이 수색했지만, 범인을 특정할 만한 지문이나 DNA는 남아 있지 않았다. 창원 일대 198곳의 CCTV를 일일이 확인했지만 택시의 마지막 동선조차 명확히 잡히지 않았다. 수사팀의 유일한 단서는 택시의 운행 기록이 저장된 ‘타코미터’뿐이었다.
속도로 이동 거리를 추산하는 타코미터 분석 결과 범인은 3월 24일 밤 9시 50분쯤 시내에서 강 씨의 택시에 올라 시외 지역으로 가자고 한 뒤 약 30분 후쯤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추정됐다.
범인의 윤곽이 좀처럼 드러나지 않던 그해 7월, 인근 관서에서 또 다른 택시 강도 사건 용의자 3명이 검거됐다. 새벽 시간 택시 기사를 흉기로 위협해 트렁크에 감금하고 현금인출기에서 돈을 빼내 달아난 3인조였다. 가까스로 탈출한 택시 기사의 신고와 통신 수사 끝에 붙잡힌 이들은 우즈베키스탄 출신 외국인들이었다.
경찰은 이들 가운데 한 명을 창원 서부 택시 기사 살인 사건의 진범으로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 인물이 당시 19세였던 보조로브 아크말이다. 경찰은 금품을 빼앗기 위해 택시 기사를 살해한 것으로 보고 강 씨 살인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했다.
아크말은 7월에 벌어진 택시 강도 사건에 대해서는 비교적 순순히 인정했지만 3월의 살인 사건과는 무관하다며 강하게 부인했다.
이후 경찰 조사 2회 만에 아크말이 입을 열었다. 그는 창원 명곡교 인근에서 강 씨의 택시에 올라 시 외곽으로 유인한 뒤, 미리 준비한 공업용 커터칼과 빨랫줄을 이용해 강 씨를 공격하고 택시를 다시 몰아 주택가 골목에 세웠다고 자백했다.
결국 법원은 강도살인 및 상해 혐의 등을 인정해 아크말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고, 16년째 복역 중인 무기수가 됐다.
취재 과정에서 드러난 의문점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당시 수사 기록에는 아크말에 대해 “한국어를 말하고 듣는 데 어려움이 없어 통역이 필요 없다”고 기재돼 있지만, 주변 지인들은 “당시 한국어가 거의 안 됐다”고 입을 모았다. 그럼에도 재판 과정에서 그가 충분한 통역 지원을 받았는지 여부는 불분명했고, 검찰이 구형한 ‘사형’이라는 단어의 의미조차 제대로 전달받지 못했다는 정황도 전해졌다.
그의 사건 기록 중에는 아크말이 직접 한글로 작성했다는 진술서가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 진술서를 두고 “육하원칙에 따라 정보만 빼곡히 적혀 있을 뿐, 감정의 흔적이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주 언어가 아닌 외국어로, 그것도 당시 한국어 수준을 고려할 때 이 정도 문장을 스스로 작성했다는 점 역시 의문으로 남는다.
2023년 재심 전문 변호사 박준영 변호사는 아크말의 편지를 보고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에게 이 사건이 이상하다는 제보를 했다. 당시 수사가 ‘강압에 의한 허위 자백’ 위에 진행됐고, 그 결과 아크말이 살인자로 만들어졌다는 것이었다.
아크말의 주장에 따르면, 수사를 담당한 형사들은 불법 체류자였던 누나와 매형을 언급하며 “자백하지 않으면 모두 감옥에 갈 것”이라고 협박했다. 살인 혐의를 인정하면 2년 뒤 우즈베키스탄으로 돌려보내 줄 것처럼 회유했고, 한국어가 서툰 자신을 상대로 원하는 방향의 진술을 유도했다고 말했다.
반면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형사들은 “한국어를 잘하는 아크말에게 ‘DNA를 확보했다. 네 것인지 확인해 보겠다’고 하니 그제야 눈물을 흘리며 자백했다”고 말했고, 또 다른 형사는 “불법 체류자인 누나를 추방하겠다고 겁을 주니 울면서 잘못했다고 했다”고 털어놨다. 형사들은 이를 ‘수사 기법’ 정도로 설명했지만, 피의자 입장에서 보면 거짓말과 협박을 동반한 강한 압박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대목이다.
사건의 핵심 단서였던 타코미터 기록 역시 새로운 의문을 던졌다. 복원 작업 끝에 당시 속도 기록을 재구성해 보니 아크말이 자백 과정에서 설명한 동선과 실제 운행 경로 사이에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개발자는 “타코미터 훼손 방식이 택시 운전을 해본 사람이나 미터기를 잘 아는 사람이 아니면 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외국인 유학생 출신인 아크말에게 이 모든 행동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는 해석도 뒤따랐다.
전문가들은 이 사건을 두고 “아크말이 실제 범인이라 하더라도 수사 단계에서 이를 입증해 내는 데 실패한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현장 검증이 이례적으로 두 차례나 진행됐고, 그 사이 범행 주요 내용이 조금씩 바뀌어 간 점 역시 허위 자백 가능성을 시사하는 대목으로 지적됐다.
그리고 지난 9일, 아크말이 제기한 재심 청구의 첫 심문이 열렸다. 아크말의 변호인을 맡은 박준영 변호사는 “자백이 사실상 유일한 증거인 사건”이라며 “19세 미성년 외국인이 취약한 지위에서 강압 수사, 형식적 국선 변호, 부실한 재판 심리 속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고 말했다.
16년 전 강 씨가 살해된 채 발견된 그 골목의 진실은 아직 완전히 드러나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 법정은 사건에 대해 처음부터 다시 그 실체를 묻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