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변호사와 의뢰인 간 비밀유지권(Attorney-Client Privilege, ACP)을 제도화하는 내용의 변호사법 개정안을 소위원회 단계에서 여야 합의로 통과시켰다.
국회 법사위는 지난 12일 법안심사제1소위를 열고 변호사의 비밀유지권을 명문화하는 변호사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의결했다.
개정안은 의뢰인의 자발적 승낙이 있거나 법률에 따른 예외 사유가 없는 한, 변호사와 의뢰인 간 상담 내용이나 관련 자료에 대해 공개·제출·열람을 요구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를 위반해 수집한 증거는 재판에서 증거로 사용할 수 없도록 했다.
여당 간사인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소위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법무부 안을 중심으로 여야 의원들이 일부 수정을 거쳐 원만하게 합의 처리했다”며 “변호사법 제28조 제2항 단서에 포함돼 있던 업무상 작성 문건 관련 예외 조항은 제3항의 예외 규정과 중복된다고 보고 삭제했다”고 설명했다.
이날 법사위 소위에는 반인권적 국가범죄의 공소시효 등에 관한 특례법안과 긴급조치 피해자 민사재심 등에 관한 특별법안도 함께 상정됐다. 다만 두 법안은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계속 심사하기로 했다.
반인권적 국가범죄 공소시효 특례법안은 국가폭력 범죄의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으며, 긴급조치 피해자 민사재심 특별법안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5년 발령한 ‘긴급조치 9호’ 피해자에 대한 구제를 주요 내용으로 한다.
앞서 2024년 3월 대한변호사협회는 변호사에 대한 압수수색이나 의뢰인과의 소통 내용에 대해 자료 제출·공개를 거부할 수 있는 ACP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변협은 현행 변호사법이 변호사의 비밀유지의무만 규정하고 있을 뿐, 의뢰인과의 의사 교환 내용에 대해 압수수색을 거부할 명확한 법적 근거가 없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하며 입법을 제안했다.
실제로 최근 수년간 대형 로펌을 대상으로 한 압수수색이 잇따르면서 변호사업계에서는 ACP 법제화 요구가 거세졌다. 검찰은 롯데그룹 조세포탈 의혹,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가습기살균제 사건, 대장동 개발 의혹 수사 과정에서 김앤장, 태평양 등 대형 로펌을 압수수색한 바 있다.
변호사단체는 이러한 압수수색이 반복될 경우 헌법상 보장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형해화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변호사와 의뢰인 간 상담 내용과 자료가 언제든 수사기관에 노출될 수 있다면, 의뢰인이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하고 방어권 역시 위축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ACP 도입이 수사권을 과도하게 제한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변호사가 범죄수익 은닉이나 증거 인멸에 가담하는 경우까지 보호해서는 안 된다”며 “로펌이 ‘의뢰인의 금고’가 되는 것을 막을 제도적 장치가 함께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학계에서도 제도 보완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차진아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ACP가 도입되면 로펌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증거의 증거능력이 문제 될 수 있다”며 “사법방해죄 등 보완 장치 없이 제도만 도입할 경우 형사사법의 균형이 깨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해외 사례를 보면, 독일은 변호사가 공범이거나 증거인멸 혐의가 있는 경우 압수거부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미국은 압수된 자료를 봉인한 뒤 법원이 비밀유지권 해당 여부를 판단하는 절차를 두고 있다.
한편 법조계에서는 변호사가 의뢰인의 범죄를 돕거나 범죄를 완성하는 경우에는 형사처벌과 대한변호사협회의 징계 대상이 되지만, 헌법과 법령에 따라 적법하게 조력한 경우에는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보호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헌법은 체포·구속된 피의자에게 즉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법사위 소위를 통과한 이번 변호사법 개정안은 향후 법사위 전체회의와 국회 본회의 심의를 거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