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 폭행 끝 사망했지만…법원 “미필적 고의는 결과 아닌 인식”

 

일면식도 없는 상대가 ‘선배 행세를 했다’는 이유로 거리에서 무차별 폭행을 가해 피해자를 장기간 의식불명 상태에 빠뜨린 뒤 결국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과 관련해, 항소심 법원도 살인에 관한 미필적 고의는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다만 1심과 달리 상해치사죄를 유죄로 인정해 형량은 두 배로 늘었다.

 

서울고법 춘천재판부 형사1부(이은혜 부장판사)는 지난 3일 살인 혐의로 기소된 A씨(47)에 대한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징역 4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8년을 선고했다.

 

사건은 지난해 12월 22일 새벽 강원 춘천의 한 주점 인근에서 발생했다. A씨는 별다른 친분이 없던 피해자 B씨(55)가 자신에게 ‘선배 행세를 했다’는 이유로 시비를 걸었고, 곧장 주먹과 발로 무차별 폭행을 가했다.

 

주점 업주와 행인들이 여러 차례 제지했지만 A씨는 B씨의 얼굴을 발로 밟거나 걷어차는 등 폭행을 멈추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B씨는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고 장기간 치료를 받던 중 약 10개월이 지난 뒤 결국 숨졌다.

 

검찰은 피해자의 사망으로 항소심 단계에서 공소장을 변경해, A씨에게 살인죄를 주된 혐의로 적용하고, 예비적 공소사실로 상해치사죄를 추가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A씨의 폭행 행위가 극히 위험하고 비난 가능성이 크다는 점은 분명히 인정했다. 다만 그 폭행에 살인의 미필적 고의가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살인의 미필적 고의는 단순히 폭행의 강도나 잔혹성만으로 인정될 수 없다”며 “행위 당시 가해자가 사망이라는 결과 발생 가능성을 인식하고도 이를 용인했는지가 형사법적으로 엄격하게 증명돼야 한다”고 밝혔다.

 

형법 제250조의 살인죄는 명시적인 살의뿐 아니라 사망 가능성을 인식하면서도 이를 받아들이는 미필적 고의가 있어야 성립한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 사건에서 그러한 고의가 객관적 증거로 입증되지 않았다고 봤다.

 

재판부가 주목한 것은 범행의 동기와 경위, 그리고 사망에 이르기까지의 시간적 간격이었다.

 

우선 A씨와 피해자 사이에는 사전에 누적된 원한 관계나 살해에 이를 정도의 중대한 갈등이 확인되지 않았다. ‘선배 행세를 했다’는 이유로 촉발된 우발적 폭행이라는 점에서, 살인을 전제로 한 목적적 범행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한 피해자는 폭행 직후 사망한 것이 아니라 장기간 치료를 받다가 약 10개월이 지난 뒤 숨졌다. 재판부는 이 점을 들어, 폭행 당시 A씨가 피해자가 결국 사망에 이를 것까지 예견하고 이를 용인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폭행 동기와 경위, 사망까지의 시간적 간격을 종합하면 사망 결과 발생 가능성을 인식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살인에 관한 미필적 고의를 부정했다.

 

다만 법원은 상해치사죄의 성립은 인정했다. 상해치사죄(형법 제259조 제1항)는 상해의 고의는 있었으나 사망의 고의는 없는 경우, 그 상해로 인해 사망이라는 결과가 발생하면 성립하는 결과적 가중범이다.

 

재판부는 A씨가 피해자를 의식불명 상태에 빠뜨릴 정도로 폭행한 점에서 상해의 고의는 명백하고, 그 상해와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 역시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법무법인 태율 김상균 변호사는 “해당 판결은 강한 폭행으로 사망 결과가 발생했더라도 살인의 미필적 고의는 행위의 중대성이나 잔혹성만으로 추정할 수 없다”며 “사망 결과에 대한 인식과 용인이 구체적 증거로 입증돼야 한다는 형사법 원칙을 다시 한번 확인한 사례”라고 설명했다.

 

이어 “살인의 고의는 부정되더라도 중대한 폭행으로 사망에 이른 경우에는 상해치사죄를 통해 그 책임을 엄중히 묻겠다는 법원의 메시지가 분명히 드러난 판결”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