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 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 시행 이후, 전기통신금융사기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은 계속 변화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반복되는 금융사기 피해를 억제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지고 전기통신금융사기 범행이 점점 조직화·전문화되면서, 사건에 연루된 사람의 역할과 책임을 평가하는 기준 역시 강화되는 추세다.
과거에는 범죄 조직과의 직접 접촉 여부나 금전적 이익의 취득 여부 등이 중심적 판단 요소였지만, 최근에는 자금 전달책이나 단순 심부름 단계의 말단 피고인조차 범죄 구조에 기능적으로 기여했다고 보아 공동정범으로 인정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이는 광범 위한 사회적 피해를 차단하기 위한 정책적 필요성에서 비롯된 흐름이지만, 한편으로는 피고인의 실제 인식과 판단 능력이 충분히 평가되지 못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특히 실무에서 두드러지는 변화는 낮아진 고의 판단의 문턱이다.
전기통신금융사기 사건에서 고의 판단은 더 이상 피고인이 범죄 조직과 어떤 방식으로 연락을 주고받았는지, 범행 구조를 어느 정도 이해했는지에만 제한되지 않는다. 오히려 사건 당시 정황을 통해 피고인이 불법성을 미필적으로라도 인식할 수 있었는지가 핵심 기준으로 작용한다.
반복적인 인출·전달 지시, 비정상적인 금전 흐름, 급박한 시간 지정이나 전달 장소의 잦은 변경 등은 구체적인 범죄 유형을 알지 못했더라도 불법성을 인식할 만한 요소로 해석된다.
이러한 판단 기준은 과거에 비해 크게 낮아진 것이며, 개별 피고인의 실제 이해 수준과 상황적 맥락이 충분히 반영되지 못할 경우도 적지 않아 변론 단계에서 보다 정밀한 설명이 요구된다. 실제 사건에서 고의 판단은 외형적 정황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경향이 강하다.
피고인이 단순 아르바이트나 지시 대행 정도로 인식했다고 주장하더라도 대량 현금 전달 요구, 특정 시간대만을 강조하는 지시, 전달 장소의 반복적 변경 등 사실상 위험 신호로 볼 만한 정황이 존재하면 피 고인에게 미필적 인식 가능성이 있었다고 평가된다.
이는 범죄 조직의 활동을 차단하고 피해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측면에서는 효과적이지만, 한편으로 사회·경제적 취약성, 제한된 정보 접근성, 지시 상황에서 느낀 압박 등 피고인의 현실적 인식 능력이 충분히 고려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 결과 피고인의 실제 인식 범위를 넘어선 과도한 형사 책임이 부과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경향 속에서 변론 전략의 핵심은 피고인의 인식 구조와 행동 경위를 사실관계 중심으로 정교하게 재구성 하는 작업이다. 지시를 받게 된 경위, 그 지시가 당시 상황에서 얼마나 개연성이 있었는지, 의심을 가질 만한 정황이 실제 어느 수준으로 드러났는지를 구체적 자료와 함께 제시해야 한다.
문자·통화 기록, 계좌 거래 내역, 이동 동선 등 객관적 자료는 피고인의 인식이 제한적이었음을 입증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한 피고인의 행위가 범죄 조직의 지속적 운영에 결합된 구조적 역할이 아니라 단발적·독립적 수행에 그쳤다는 점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러한 구조적 접근 은 고의 판단 단계뿐 아니라 양형 단계에서도 피고인의 책임 범위를 합리적으로 조정받는 근거가 된다.
최근 실무에서는 피고인의 초기 대응 태도 역시 고의 판단에 간접적으로 반영되는 경향이 있다. 피고인이 범행 연루 가능성을 느끼고 스스로 신고한 정황, 수사기관의 연락에 신속히 응한 점, 금융자료 제출에 적극 협조한 사실 등은 고의 또는 미필적 인식을 부정하는 근거로 제시될 수 있다.
반면 초기 진술이 일관되지 못하거나 후반부 해명이 기존 진술과 충돌할 경우, 이는 오히려 미필적 인식의 존재를 추정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따라서 변론 단계에서는 피고인의 진술 흐름과 초기 대응 배 경을 일관성 있게 설명하고, 왜 그러한 행동이 나타났는지 구체적으로 해석하는 작업이 중요하다.
최근의 실무경향에서도 사실관계와 인식 구조를 세밀하게 정리하여 피고인의 실제 인식 가능 범위를 정당하게 평가받을 수 있도록 한다면, 말단 가담자에게 과도하게 확장된 책임이 부과되는 것을 예방하고 보다 균형 있는 판단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