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방조범을 기소하면서 전제가 되는 정범의 범죄사실을 구체적으로 특정하지 않은 공소장을 제출했다가 법원으로부터 공소기각 판결을 받았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전지검 천안지청은 지난 3월 보이스피싱 조직에 가담해 이른바 송금책 역할을 한 A씨(33·여)를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 위반 방조 혐의로 기소했다.
A씨는 불법 대출을 알아보던 중 보이스피싱 조직원으로부터 “대출을 받으려면 거래 실적을 늘려야 한다”는 말을 듣고 범행에 가담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자신의 계좌로 입금된 돈을 조직원이 지정한 다른 계좌로 재송금하는 역할을 맡았고 그 대가로 매주 20만 원을 지급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A씨가 지난해 3월부터 5월까지 모두 78차례에 걸쳐 약 1억8788만 원을 재송금해 보이스피싱 범행을 돕고 이를 방조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법원은 이 가운데 5차례에 대해서만 방조 혐의를 인정했다. 방조범의 범죄가 성립하려면 그 전제가 되는 정범의 범죄사실 즉 피해자가 어떤 기망행위에 의해 언제 어떤 방식으로 피해를 입었는지가 구체적으로 특정돼야 하는데 나머지 73차례 공소사실에는 이러한 내용이 빠져 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유죄가 인정된 5차례의 공소사실에는 보이스피싱 조직이 피해자에게 자녀를 사칭하는 문자를 보내 돈을 편취한 경위와 송금 일시 피해 금액이 구체적으로 기재돼 있었고 A씨가 해당 피해금을 재송금한 사실도 연결돼 있었다.
반면 나머지 공소사실에는 A씨가 돈을 재송금했다는 사실만 적혀 있을 뿐 해당 자금이 어떤 피해자로부터 어떤 보이스피싱 범행을 통해 형성된 것인지는 전혀 특정돼 있지 않았다.
대전지법 천안지원 제1형사부(재판장 전경호)는 “방조범의 공소사실을 기재함에 있어서는 그 전제가 되는 정범의 범죄구성을 충족하는 구체적 사실을 기재해야 한다”며 “이 사건 공소사실 중 73차례는 정범의 범행 일시 장소 대상 방법 등에 관한 사항이 전혀 특정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검사는 법원의 범죄사실 특정 요구에도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며 “검찰의 공소는 범죄 구성을 충족하는 구체적 사실을 기재했다고 볼 수 없어 법률의 규정을 위반해 무효인 경우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형사소송법 제254조 제4항은 공소사실의 기재에 있어 범죄의 시일과 장소 방법을 명시해 사실을 특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대법원 역시 방조범의 공소사실에는 정범의 범죄 일시와 장소 방법 등이 구체적으로 기재돼야 한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밝혀왔다.
이 같은 요건을 갖추지 못한 공소제기는 ‘공소제기의 절차가 법률의 규정을 위반해 무효인 경우’에 해당하며 이 경우 법원은 형사소송법 제327조에 따라 실체 판단에 들어가지 않고 공소기각 판결을 선고해야 한다는 것이 확립된 법리다.
다만 재판부는 범행 경위가 구체적으로 특정된 5건에 대해서는 방조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범행을 주도한 것은 아니지만 보이스피싱 범행에 가담한 점에서 죄질이 가볍지 않다”며 A씨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법무법인 청의 곽준호 변호사는 “방조범을 기소하려면 단순히 자금 흐름만 적시할 것이 아니라 그 자금이 어떤 정범의 범죄로부터 발생했는지까지 특정돼야 한다”며 “공소사실 특정은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을 위한 최소한의 요건으로 이번 판결은 검찰 공소장 작성 실무에 중요한 기준을 다시 한번 확인한 사례”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