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형사 재판이라는 긴 터널을 지나다 보면 처음의 결연했던 마음은 온데간데없고, 시간이 흐를수록 작은 변화 하나에도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특히 재판 과정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상황들이 혹시 나에게 불리한 징조는 아닐지 밤잠을 설치며 고민하시는 분들이 참 많습니다. 이 글이 여러분의 막막한 심경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Q. 변호사님, 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재판을 받는 중인데 생각보다 오래 진행되고 있습니다.
주변에서는 재판이 길어지면 판사가 안 좋게 본다거나, 형이 더 무거워질 수 있다는 말도 하는데 사실인가요? 어떤 말이 맞는지 몰라서 많이 걱정됩니다.
A. 질문자분의 불안한 마음이 전해져 위로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재판이 길어지면 누구나 몸도 마음도 지치기 마련입니다.
기일이 한 차례, 두 차례 진행될 때마다 ‘괜히 재판부가 안 좋게 보지는 않을까?’, ‘이러다 형이 더 무거워지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이 커지는 것도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먼저 질문하신 내용에 답변을 드리자면, 재판이 오래 진행된다는 이유만으로 재판부가 피고인을 부정적으로 보거나 그 자체가 양형에 불리하게 작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형사 재판의 속도는 사건의 복잡성이나 증거의 양, 증인신문의 필요성 등에 따라 천차만별입니다. 공범이 많아 각자의 진술을 대조해야 하거나, 복잡한 금융 거래 내역을 하나하나 확인해야 하는 사건은 물리적으로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피고인의 잘못이라기보다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입니다. 오히려 재판부가 피고인의 주장을 경청하고 변호인의 입증 기회를 충분히 보장해 주기 위해 기일을 넉넉히 잡는 경우도 많습니다. 즉 재판이 길어지고 있다는 것은 재판부가 그만큼 사건을 신중하게 들여다보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다만 주의해야 할 점은 ‘지연의 이유’입니다. 정당한 사유 없이 기일에 반복적으로 불출석하거나 명백히 시간을 끌기 위한 목적에서 무리한 신청을 반복하는 등 의도적으로 재판을 지연시키는 태도를 보이는 경우에는 재판부가 이를 범행 이후의 태도 중 하나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양형 판단에서 부정적인 요소로 반영할 여지가 있는 것이죠.
결국 중요한 것은 재판이 길게 또는 짧게 진행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어떤 태도로 재판에 임하는지입니다. 현재 재판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사정이 무엇인지 차분히 정리하고 다툴 부분은 충분히 다투어 재판부에 전달할 수 있도록 해야겠습니다.
Q. 변호사님, 선고기일이 잡혔는데 제가 아직 합의를 못 했습니다. 선고기일 연기 신청도 불허됐고요.
주변에서는 선고 날 안 나가면 시간을 벌 수 있다고 하던데, 그렇게 해도 되는 걸까요? 혹시 출석하지 못하면 바로 구속되는 건 아닌지 무섭습니다.
A. 재판을 마무리하는 선고기일이 다가오면 긴장과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질문자분처럼 피해자와 합의가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거나 신변을 정리할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한 분들은 ‘선고 날 안 나가면 기일이 미뤄지지 않을까?’ 하는 고민에 빠지기도 합니다.
일단 원칙적인 내용을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약식명령에 대해 피고인만 정식재판을 청구한 사건 등의 경우 피고인이 출석하지 않더라도 판결 선고가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반드시 선고기일에 출석해야 합니다. 출석이 어렵다면 반드시 사전에 기일 변경 신청을 해야 하고요.
단순히 신청서를 제출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고 재판부가 그 신청을 받아들여 실제로 기일이 변경되었는지까지 반드시 확인해야 합니다. 가끔 신청하면 무조건 변경되는 걸로 알고 계시는 분도 있는데, 기일이 변경되지 않은 상태에서 출석하지 않아 곤란한 상황에 놓이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다음으로, 재판장의 허가 없이 선고기일에 불출석하는 것은 당연히 불이익이 있습니다. 재판부가 이를 절차에 성실히 임하지 않는 태도로 받아들여 형량을 높일 수도 있고, 실형 선고를 하려던 사안에서는 도주 우려를 이유로 바로 구속영장을 발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어차피 합의가 안 된 상태라 이대로 선고를 받는다면 실형 선고 가능성이 거의 100%인 경우라면, 이때는 원칙을 떠나서 고민을 좀 해봐야 할 수 있습니다.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은 있지만 시간을 조금만 더 벌면 확실히 합의를 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거기에 기대를 걸어볼 수도 있을 겁니다. 선고기일에 1회 불출석해서 형량이 높아지는 불이익과 합의해서 감형되는 이익을 저울질하여 무엇이 더 나은지 전문가와 상의해 봐야 할 것입니다.
다만 조심스럽지만, 제가 지금까지 상담한 사례들을 보면 선고기일까지 합의가 안 됐는데 갑자기 극적으로 성사되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너무 가능성이 낮은 결과를 기대하고 있는 건 아닌지, 당장 구속되는 것이 두려워서 잘못된 판단을 하는 것이 아닌지 냉정하게 따져보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조언을 드리고 싶습니다.
Q. 재판이 진행되는 내내 재판부에서 질문을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할 말이 많은데 판사님은 고개만 끄덕이고 조용히 계시니 이미 결론을 내리신 것 같아 불안합니다. 판사가 질문을 안 하는 것이 나쁜 징조인가요?
A. 재판을 받는 입장에서는 판사가 질문을 거의 하지 않거나 고개만 끄덕이며 조용히 듣고 있으면 ‘이미 마음속으로 결론을 정해둔 것 아닌가’ 하는 불안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변론이 길지 않게 진행되거나 검사, 변호인의 주장에도 별다른 반응이 없을 때는 더 그렇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재판부가 질문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곧바로 결론이 났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실무에서는 그 반대의 경우도 적지 않고, 질문을 하느냐 마느냐는 단지 판사 개인의 성향에 달린 경우가 많습니다.
형사 재판의 판사는 검사와 변호인이 제출한 방대한 기록을 재판 전에 미리 꼼꼼히 검토하고 들어옵니다. 공판은 검사와 피고인 측의 주장과 증거 제출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판사는 이를 듣고 판단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미 제출된 서면과 증거기록으로 쟁점이 충분히 정리되어 있다고 판단되면 굳이 질문을 덧붙이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질문이 없다는 것을 관심이 없다거나 이미 결론을 냈다는 의미로 받아들이실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또한 재판부의 재판 진행 스타일은 개인차가 큽니다. 어떤 재판부는 적극적으로 질문하며 쟁점을 정리하는 반면, 어떤 재판부는 묵묵히 경청하기도 합니다. 이미 충분한 기록이 확보된 사건에서는 질문이 생략되는 경우도 흔합니다. 즉 질문의 많고 적음만으로 재판의 방향을 예측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은 판단일 수 있습니다.
다만 한 가지 팁(TIP)을 드리자면, 판사가 피고인에 대해 단순 ‘질문’이 아니라 가치 판단이 섞인 ‘부정적인 말’을 한다면 이를 그냥 넘겨서는 안 됩니다. 무죄를 주장하는 사건에서 변호인에게 근거가 부족하다고 나무라거나 합의할 의향이 없냐고 묻는 것은 큰 힌트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런 경우에는 기존 주장을 철회하거나 변론 방향을 수정해야 할 수도 있으니 법정 분위기 파악은 다른 문제라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형사 절차는 결과보다 과정이 더 불안하게 느껴지는 영역이기도 합니다. 이때 주변에서 전해 들은 단편적인 이야기나 막연한 기대에 의존하다 보면, 오히려 상황을 오해하거나 불필요한 결정을 내리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형사 재판은 감정이나 추측이 아니라 정해진 절차와 기준에 따라 진행됩니다. 무엇이 법적으로 의미 있는 요소인지, 어디까지가 가능하고 어디부터는 한계가 있는지를 정확히 아는 것만으로도 대응의 방향이 훨씬 분명해집니다.
이번 글이 복잡하게 느껴졌던 형사 절차를 차분히 정리하고, 각자의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신중하게 고민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더시사법률> 독자 여러분 모두 원하는 결과를 얻으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