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한 성범죄 혐의로 고통받는 당신을 위로하며

폭행·협박 동반한 강간사건 드물어
성범죄에도 ‘무죄추정원칙’ 지켜야
형사사법은 ‘감정’ 아닌 증거가 중요
도덕적 평가보다 법의 원칙 따라야

 

얼마 전 경찰 여청수사팀에서 근무 중인 경찰대 동기로부터 전화를 한 통 받았다. 평소보다 긴장된 목소리였다.

 

“이번 사건은 폭행과 협박이 명확한 강간 사건이야.”

 

그 한마디에 수사관으로서의 무게가 전해졌다. 명백한 폭력과 강제성이 동반된 사건에서 피해자를 보호하는 일은 형사사법의 가장 중요한 책무 가운데 하나다. 그런 사건일수록 수사관들은 더욱 신중하고 단호해진다.

 

그러나 현장에서 마주하는 성범죄 사건의 양상은 매우 다양하다. 물리적 폭행이 분명한 사건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적지 않다. 관계의 해석, 동의의 범위, 당시의 상황 인식 등을 둘러싼 다툼이 쟁점이 되는 사건들이 많다.

 

변호사로서 체감하기로는 최근 몇 년 사이 성범죄 관련 상담이 크게 증가했다. 상담 사건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그중에는 명백한 범죄 혐의가 의심되는 사안도 있지만, 사실관계에 대한 인식 차이에서 비롯된 분쟁도 적지 않다.

 

시간이 흐르며 관계의 기억이 달라지거나 사후적 감정 변화가 법적 분쟁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이 과정에서 수사와 재판은 언제나 어려운 선택의 기로에 선다. 피해자 보호라는 가치와 무죄추정의 원칙이 동시에 작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성범죄 피해를 예방하고 보호를 강화하는 것은 분명 중요한 사회적 과제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형사절차의 기본 원칙 역시 흔들려서는 안 된다. 형사재판은 감정이 아니라 증거에 의해 판단되어야 한다는 점은 어떤 사건에서도 예외가 될 수 없다.

 

특히 성범죄 사건에서는 ‘피해자의 일관된 진술’이 중요한 판단 요소로 고려된다. 하지만 그 진술 역시 다른 증거와 함께 종합적으로 검증되어야 한다. 일관성 자체가 곧바로 진실을 의미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경찰 조사실과 법정에서 변호인의 역할은 바로 그 지점에 있다. 감정적 대립을 부추기기 위함이 아니라, 절차와 증거가 법적 기준에 따라 엄격하게 검토되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는 피해자를 공격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형사사법의 신뢰를 지키기 위한 과정이다.

 

최근 일부 사건에서는 여론의 흐름이 수사 방향에 영향을 미친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그러나 형사사법은 도덕적 평가나 사회적 분위기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그래야만 억울한 피해도, 억울한 피의자도 최소화할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균형이다. 피해자 보호와 무죄추정의 원칙은 대립하는 가치가 아니다. 두 원칙이 함께 지켜질 때 형사사법은 비로소 신뢰를 얻는다.

 

변호사의 역할 역시 그 균형을 유지하는 데 있다. 특정 성별이나 집단의 편에 서는 것이 아니라, 증거와 절차, 그리고 법의 기준에 충실한 판단이 이루어지도록 돕는 것이다.

 

그것이 지금 이 시대에 성범죄 사건을 다루는 법률가가 가져야 할 태도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