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동대표에 ‘X맨’ 발언…대법 “일상적 추상 표현, 모욕 아냐”

1·2심 “인격 가치 저하” 벌금형
대법 “명예 침해로 보기 어려워”

 

아파트 입주민 갈등 과정에서 다른 동대표를 두고 ‘X맨’이라고 말했더라도 모욕죄로 처벌하기는 어렵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엄상필 대법관)는 모욕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벌금 50만원을 선고한 원심의 유죄 판단을 파기하고 사건을 인천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사건은 아파트 동대표 간 갈등 과정에서 발생했다. 2019년 당시 동대표였던 A씨는 회계 문제 등을 둘러싸고 갈등을 겪던 다른 동대표 B씨를 두고 입주민들에게 “X맨이다. 건설사로부터 이익을 얻는 자일 수 있으니 항상 조심하고 경계하라”, “비대위 안의 X맨이 B씨였다”, “B씨가 시공사의 X맨이다”라고 말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은 A씨의 발언이 모두 모욕에 해당한다고 보고 벌금 70만원을 선고했다.

 

2심은 일부 발언에 대해 “A씨가 해당 발언을 했다는 사실이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로 판단해 벌금 50만원으로 감형했다.

 

다만 ‘X맨’이라는 표현 자체는 “B씨의 인격적 가치에 대한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경멸적 감정을 담은 추상적 표현”이라며 모욕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현행 형법 제311조는 공연히 사람을 모욕한 경우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한다.

 

대법원은 그동안 모욕에 대해 “사실을 적시하지 않고 사람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추상적 판단이나 경멸적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보면서도 표현이 무례하거나 저속하더라도 객관적으로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정도에 이르지 않는다면 모욕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시해 왔다(대법원 2015. 9. 10 선고 2015도2229 판결).

 

이번 사건에서도 대법원은 이 같은 기준에 따라 모욕죄 성립 여부를 판단했다. 재판부는 모욕죄 성립 여부는 발언을 들은 사람이 주관적으로 불쾌감을 느꼈는지가 아니라 표현의 내용과 경위, 당사자 관계, 발언 당시 상황 등을 종합해 객관적으로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정도인지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A씨의 발언에 대해 “아파트 입주민들에게 이미 알려진 일정한 전제 사실을 바탕으로 B씨의 행위나 처신에 의혹을 제기하면서 비판적 의견이나 감정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일상적으로 사용되기도 하는 경미한 수준의 추상적 표현을 사용한 것에 불과하다”고 했다.

 

이어 “‘X맨’이라는 표현은 조직 내부에서 반대 세력을 돕는 사람을 비꼬는 의미로 일상생활이나 언론에서도 비교적 가볍게 사용되는 표현”이라며 “사건 경위와 B씨의 지위, 갈등의 성격 등을 고려하면 해당 표현만으로 B씨의 외부적 명예가 침해됐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판결이 공동주택 등 생활 공동체에서 발생하는 갈등 상황에서의 표현이 형사처벌 대상이 되는 범위를 다시 한번 정리한 사례로 평가한다.

 

법률사무소 로유 배희정 변호사는 “모욕죄는 단순히 상대방의 기분이 상했다는 사정만으로 성립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표현이어야 한다는 점을 대법원이 재확인한 판결”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생활 공동체 내부 갈등에서 상대방을 비판하거나 의혹을 제기하는 표현이라 하더라도 구체적 사실 적시 없이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추상적 표현 수준이라면 형사처벌로 이어지기 어렵다”며 “다만 표현 방식이나 상황에 따라 명예훼손 등 다른 법적 책임이 문제 될 수 있는 만큼 주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