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금 청구만으로 위반 인지 아냐…“객관적 확인 있어야 기산”

보험금 청구만으로 위반 사실 알았다고 볼 수 없어

 

보험계약자의 직업 변경 통지 의무 위반과 관련해 보험사의 계약 해지권 행사 기간은 ‘위반 사실을 인지한 시점’부터 기산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단순히 보험금이 청구됐다는 사정만으로 곧바로 위반 사실을 알았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취지다.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오석준 대법관)는 선박 기관장 A씨의 유족들이 보험사를 상대로 제기한 보험금 청구 소송에서 원심의 원고 승소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부산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

 

A씨는 2022년 4월 탑승한 선박이 대만 해상에서 조난되면서 사망한 채 발견됐다. 유족들은 같은 해 6월 보험사에 1억5000만원의 상해사망보험금을 청구했지만, 보험사는 면책을 통보하며 지급을 거절했다.

 

보험사는 선원의 직무상 선박 탑승 중 발생한 사고가 약관상 면책 사유에 해당한다고 봤다.

 

면책사유란 보험계약에서 정한 일정한 사유가 발생할 경우 보험자가 보험금 지급 책임을 지지 않도록 정한 조항으로, 통상 직무상 위험이 높은 직종에서 발생한 사고 등을 포함한다는 취지다.

 

또한 A씨가 보험기간 중 경비원에서 선박 기관장으로 직업이 변경돼 위험이 현저히 증가했음에도 이를 알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통지의무 위반 및 계약 해지 사유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후 보험사는 2022년 7월 유족들에게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이에 대해 유족들은 A씨의 사고가 보험계약상 보험사고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보험사가 계약 체결 당시 면책 및 통지의무 약관에 대해 명시·설명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점도 함께 문제 삼았다.

 

이 사건의 쟁점은 보험사가 2022년 6월 보험금 청구 당시 이미 A씨의 직업 변경 및 통지의무 위반 사실을 인지했는지 여부였다. 상법은 보험자가 통지의무 위반 사실을 안 날부터 1개월 내에 계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1심과 2심은 모두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보험사가 A씨의 배우자에게 5000만원, 자녀 3명에게 각각 약 3333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1심은 보험사가 면책 및 통지의무 약관에 대한 설명 의무를 이행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해당 약관은 계약 내용으로 편입되지 않았으며, 이를 근거로 한 보험금 지급 거절과 계약 해지는 부당하다고 봤다.

 

2심 역시 보험사가 늦게 해지권을 행사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유족들이 사망 경위를 구체적으로 기재해 보험금을 청구한 2022년 6월 3일 무렵에는 보험사가 통지의무 위반 사실을 알았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1개월의 제척기간이 경과한 이후 이뤄진 해지 통보는 효력이 없다고 봤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보험사가 단순히 보험금 청구를 접수한 시점이 아니라, 조사와 확인을 통해 통지의무 위반을 뒷받침할 객관적 근거를 확보한 시점부터 해지권 행사 기간이 진행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유족들은 보험금 청구 과정에서 A씨의 ‘직무 외 일회성 선박 탑승’을 주장했다”며 “보험사로서는 A씨의 직업이 경비원에서 선박 기관장으로 변경됐다는 사실 자체를 쉽게 알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보험금 청구서 접수만으로 통지의무 위반 사실을 인지했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원심이 해지권 행사 기간의 기산점에 관한 법리를 오해했다고 판단하고 사건을 파기환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