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 문을 열고 하루를 시작하면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것은 사건기록이다. 책상 위에 정리된 파일을 펼치면, 늘 같은 단어가 눈에 들어온다. ‘사실관계’, 변호사의 하루는 이 단어에서 시작해 이 단어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법률서면은 언제나 사실관계 위에 세워지고, 사실관계가 흔들리면 그 위에 쌓은 모든 논리도 함께 흔들린다. 나는 변호사다. 그리고 습관처럼 모든 문장을 근거 위에 세우려 한다. 의뢰인은 종종 결론을 먼저 묻는다. “이길 수 있나요”, “실형이 나올까요”, “집행유예 가능성은 있습니까”. 하지만 나는 그 질문에 바로 답하지 않는다. 먼저 기록을 펼치고, 조문을 확인하고, 판례를 살핀다. 그 과정이 번거롭고 느린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논리의 뼈대가 서면 안에서 먼저 서지 않으면 법정에서의 말 한마디는 쉽게 흔들린다는 사실을 수없이 경험해 왔다. 서면은 결국 말의 예행연습이자, 판결을 향한 가장 첫 번째 설득이기 때문이다. 내가 쓰는 서면은 종류가 달라도 기본 구조는 같다. 소장이든 준비서면이든, 변호인 의견서나 항소이유서든 결국 같은 질문으로 돌아온다. 이 사건에서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평가인가. 무엇이 다툼 없는 사실이고, 무엇
사무실로 찾아온 의뢰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종종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아… 조금만 더 빨리 오셨더라면 좋았을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그것이다. 막연히 ‘빨리 맡았으면 잘 풀렸을 사건’이라면서 의뢰인들에게 위로를 전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고, ‘왜 더 빨리 오시지 않았느냐’며 뒤늦게 오신 것에 대한 책임을 묻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그보다는 이미 지나가 버린 시간을 되돌릴 수 없음을 한스러워하는 것에 가깝다. 동명의 의학 드라마를 통해 많이 다뤄진 의학계 용어가 있다. ‘골든 타임(정확히는 ‘골든 아워’)’이라고 하는데, 환자가 중상을 입은 후 생사를 결정지을 수 있는 시간을 일컫는 말이다. 실제로 이 시간 내에 적절한 응급 치료가 이루어지면 중상을 입었더라도 생존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반면 이 시간을 놓치게 되면 생존 가능성도 급감한다. 법조계에도 이런 ‘골든 타임’이 있다. 사건이 발생한 뒤 사건이 의뢰인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흐르게 도와드릴 수 있는 최적의 시간. 나는 그것이 ‘이르면 이를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특히 오랫동안 끙끙 앓고 계시다가 뒤늦게 사무실을 방문한 의뢰인의 경우, 사건이 이를테면 많이 ‘망가져’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 이런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지난해 8월 교정시설 과밀수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석방 인원을 30% 정도 확대하도록 지시했고, 9월 가석방 출소 인원은 1218명으로 지난 5~8월 월평균 가석방 인원(936명) 대비 약 30% 증가했다. 법무부는 지난 11월 ‘2026년 가석방 확대안’을 통해 월평균 가석방 허가 인원을 2025년 1032명에서, 2026년에는 약 1340명으로 전년 대비 30% 확대하여 재범 위험성이 낮은 수형자가 사회에 복귀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가석방에 관련된 규정으로는 형법(제72조~제76조),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제119조~제122조), 같은 법 시행규칙(제236조~제263조), 가석방 업무지침 등이 있다. 형법 제72조에서 정한 가석방의 허가요건은 징역‧금고의 집행 중인 자가 최종 형기 종료일 기준으로 형기의 3분의 1이 지나고, 행상이 양호하며 뉘우치는 빛이 뚜렷한 경우다. 형법 제37조 후단의 경합범 등으로 인해 1개의 판결로 수 개의 형이 확정된 경우에도 ‘각 형의 형기를 합산한 형기’나 ‘최종적으로 집행되는 형의 형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각 형의 형기’를 의미한다. 즉, 수 개
성범죄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은 기소도, 재판도, 선고도 아니다. 대부분의 사건은 그보다 훨씬 앞선 시점, 처음 조사실에 들어서는 순간 이미 방향이 정해진다. 첫 질문을 받았을 때 그 질문에 어떤 태도로, 어떤 말로 응답했는지 기억나는가? 바로 그 짧은 시간 동안 사건의 ‘인식’이 형성된다. 이때 형성되는 것은 단순한 첫인상이 아니다. 수사기관이 사건을 바라보는 기준점이며, 이후 모든 판단의 출발점이다. 성범죄 사건에서는 종종 ‘무슨 일이 있었는가’보다 ‘처음 어떻게 말했는가’가 사건의 성격을 규정한다. 같은 사실관계라도 초기 진술이 어떤 구조를 갖고 있었는지에 따라 사건은 전혀 다르게 기록된다. 필자는 같은 상황이 어떤 사건에서는 계획적 범행으로, 또 다른 사건에서는 우발적 상황으로 해석되는 과정을 수없이 보아왔다. 그 차이는 사실관계가 아니라 초기 진술의 구성 방식에서 비롯된다. 처음부터 정리되지 않은 진술은 사건을 설명하기보다, 사건의 방향을 고정해 버린다. 문제는 이렇게 형성된 인식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점이다. 초기에 잘못 정리된 진술은 이후 아무리 보완해도 ‘사후적인 주장’으로 취급되기 쉽다. 당시에는 혼란스러웠고 충분히 설명할 여유가 없었다
최근 내란 관련 재판이 변론 종결을 향해 가고 있다. 그런데 당초 변론 종결일로 예정되어 있던 1월 10일 기일이 김용현 피고인 등의 변론이 길어지면서 1월 13일로 속행됐다. 이를 두고 일부 언론은 ‘침대 변론’이라는 표현까지 사용하며 변호인들의 변론 방식과 재판장의 재판 지휘를 비판하고 있다. 우선 필자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행위가 포고령을 통해 국회의원의 행동의 자유를 제한했고, 실제로 국회에 특별한 비상 상황이 없음에도 경찰과 군이 출동하는 혼란을 초래함으로써 국회의원의 의결권을 침해한 헌법 위반의 소지가 있다고 본다. 실제로 국회 일대의 평온을 해쳤다는 점에서도 이 사건은 유죄가 선고될 가능성이 크다고 조심스럽게 예상하는 입장이다. 다만 이러한 견해와는 별개로 지금 ‘재판이 늦어진다’는 이유로 피고인의 변호인들 및 재판부를 향해 쏟아지는 비판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애당초 이 사건은 내란 특검법에 따라 특별검사가 수사와 기소를 했는데, 해당 법률에 의하면 1심은 공소 제기일로부터 6개월 이내에 선고하도록 규정되어 있다(윤석열 전 대통령 등에 의한 내란‧외환 행위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 제11조). 그러나 사건의
편지를 통해 기결수인 분들로부터 민사나 가사 사건에 대한 문의를 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혼, 양육비, 재산분할, 손해배상과 같은 문제는 형사 사건과는 별개로 진행되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동안 구속 상태에 있는 의뢰인들의 민사·가사 사건까지 함께 진행해 온 경험이 많아, 처음에는 기결수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로 사건을 진행해 보면, 사건의 내용이나 절차 자체보다도 ‘시작 단계’가 훨씬 어렵다는 점을 실감하게 된다. 기결수는 이미 형이 확정된 상태로 수형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이다. 이 단계에서는 더 이상 미결수처럼 방어권을 행사하는 절차에 있지 않고, 형이 집행되는 단계에 놓이게 된다. 그에 따라 교정·수형 질서가 우선적으로 고려되고, 변호인 접견의 법적 성격 역시 미결수 단계와는 달라진다. 이러한 이유로 형이 확정된 이후의 변호인 접견은 자동적으로 보장되는 권리로 취급되지 않는다. 재심이나 비상상고, 형 집행정지 신청, 새로운 형사사건의 대응, 이미 진행 중인 민사·가사·행정 사건에 대한 실질적인 법률 대응 등과 같이 구체적인 법률 절차와 직접 연결된 필요성이 있어야 한다. 때문에 단순 상담이나 안부 목적의 접
얼마 전, 어떤 수용자의 어머님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떨리는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입을 뗀 그녀의 이야기는 이러했다. 아들이 성범죄로 징역 5년을 선고받은 뒤 교도소에서 복역 중인데, 수용자 가족 커뮤니티에서 ‘가석 방’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이다. “혹시… 가능성이 있을까요?” 말끝을 흐리며 묻는 질문 속에는 죄를 덮어달라는 요구도, 억울함을 호소하는 항변도 없었다. 그저 시간이 흐른 뒤라도 아들을 다시 품에 안을 수 있다면, 그 방법이 무엇 인지 알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아무리 못난 자식이라도 끝내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 부모 마음인지라 어머니는 조심스럽게, 그러나 간절하게 ‘가석방’이라는 단어를 꺼냈다. 가석방이라는 문은 과연 어떻게 열리는 것일까? 가석방이란 형법 제72조에 따라 자유형의 집행을 받고 있는 자가 ‘행상이 양호하여 뉘우침이 뚜렷한 때’ 일정한 조건 아래 형기 만료 전에 석방하는 행정 처분을 말한다. 동법 제76조에는 가석방 이후 조건 위 반으로 취소되거나 실효되는 일이 없다면 가석방 기간 이후 형의 집행을 종료한 것으로 간주된다고 명시되어 있다. 즉 수용자가 충분한 반성을 보이고 있으며, 형기 만료 이전에 사회로 복귀하더라도
변호사 일을 하다 보면, 가끔은 사건 그 자체보다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던 사람들의 얼굴이 더 생생하게 떠오를 때가 있다. 사건이 잘 풀린 사람들은 얼굴 표정이 밝지만, ‘왜 그때 그런 선택을 했을까’ 하는 후회를 가득 안고 들어서는 사람들의 표정은 밝지가 않다. 그들은 보통 재판이 어느 정도 진행된 뒤, 혹은 재판 결과가 이미 나온 뒤에야 우리 사무실 문을 두드린 사람들이다. 자리에 앉고, 입을 열면 듣게 되는 첫마디도 대개 비슷하다. “급해서 아무나 선임했습니다”, “다들 괜찮은 변호사라길래 믿고 맡겼습니다”, “예산을 줄이기 위해 조금 더 수임료가 저렴한 변호사를 찾아 맡겼습니다” 물론 그 선택들이 무조건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형사 사건에서 변호사를 찾는 순간은 대부분 급박하다. 갑작스러운 체포와 조사 통보, 구속, 기소 등을 겪으며 마음은 이미 무너져 있고, 무엇부터 보아야 할지 냉정하게 판단할 여유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보통 가장 눈에 띄는 것에 손을 뻗는다. 유명하다는 글귀, 승소 사례 숫자, 화려한 문구는 시선을 잡아 끌기에 무리가 없다. 문제는 형사 사건이 단기간에 끝나는 일은 아니라는 점이다. 조사부터 재판까지
형사사건에서 ‘자백’과 ‘부인’은 일견 단순한 선택처럼 보인다. 자백은 자신의 혐의를 인정하는 것이고, 부인은 혐의를 부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수사와 재판의 현장에서 이 두 선택은 결코 단순한 진실 고백이나 부정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자백과 부인은 각 사건이 가진 증거의 구조와 성격에 따라 선택되어야 할 전략적 판단에 가깝다. 사건 당사자 입장에서 자백과 부인은 재판에 임하는 태도의 문제가 아니라, 결과를 좌우할 수 있는 이익과 불이익의 문제다. 수사기관과 재판부는 피고인의 ‘범죄사실에 대한 자백’을 흔히 ‘진지한 반성의 태도’로 평가한다. 실제로 양형 단계에서 자백 여부는 중요한 고려 요소가 된다. 다만 자신의 혐의를 전면 부인하면서 반성을 주장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성립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 선택은 언제나 신중해야 한다. 최근 형사사건의 상당수는 CCTV, 블랙박스, 위치정보 등 명백한 물적 증거를 중심으로 판단된다. 특히 교통사고, 폭행, 성범죄 사건에서는 행위 자체가 영상으로 특정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사건에서 수사 초기 단계에 어떤 영상과 기록이 존재하는지를 파악하지 않은 채 무작정 부인을 선택하는 것은, 설령 억울한 사정이 있더라도 스스로를
1심 선고 이후 피고인이 마주하는 항소심의 무게는 실로 무겁다. 특히 형사 재판 1심에서 유죄 판결과 함께 법정 구속된 피고인이 감당해야 할 심리적 충격은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렵다. 억울함과 절망이 교차하는 상태에서 항소심을 준비하게 되지만, 담장 안이라는 물리적 제약은 방어권 행사를 더욱 가혹하게 제한한다. 그럼에도 항소심은 1심 판결에 내재한 사실 오인과 법리적 오류를 바로잡을 수 있는 실질적인 마지막 기회라는 점에서, 감정이 아닌 냉철한 전략이 요구된다.경찰 수사 현장 최일선에서 수사 실무를 담당하며 직접 목격해 온 현실은 결코 이상적이지 않았다. 수사기관의 예단이나 고소인의 일방적 진술이 판결의 결정적 근거로 작용하는 사례가 결코 드물지 않았다. 특히 객관적 물증이 부족한 사건일수록 피고인은 이미 ‘가해자’로 규정된 상태에서 방어를 시작하게 되는 구조적 불균형에 놓인다. 이러한 왜곡된 출발선은 항소심에서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핵심 과제다. 항소심은 1심 판단을 기초로 심리하는 사후심적 성격이 강하다. 따라서 단순한 억울함의 호소는 아무런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항소심에서 요구되는 것은 감정이 아닌 논리다. 첫째, 진술의 일관성과 신빙성에 대한 정밀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