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시사법률>에서 활동을 시작한 이후, 구독자들과 인연을 맺게 되는 경우가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다. 신문을 통해 소통했던 독자들과 직접 만나게 되고 각자의 사연을 듣고 함께 고민하는 과정은 내게도 큰 의미가 되었다. 그리고 얼마 전, 그렇게 맺어진 인연 가운데 하나로 사건을 맡게 되었고 첫 판결이 있었다. 처음 의뢰인을 접견실에서 만났던 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의뢰인은 짧은 답변만을 반복하며 불안한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 어떤 질문을 던져도 쉽게 입을 열지 못했고, 양형에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도 거의 들을 수 없었다. 접견이 끝난 후, 아들을 잘 부탁한다는 아버지의 간절한 전화가 걸려 왔다. 가족들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져왔다. 그렇게 나는 그의 항소심 사건을 맡게 되었다. 판결 선고까지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나는 마음을 다잡고 의뢰인과의 접견을 이어갔다. 약 두 달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다섯 번이 넘는 접견을 했다. 처음에는 무거운 침묵만 흐르던 접견실이었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고 이야기를 이어가려 했다. 어떤 날은 사회 이야기를 꺼내며 굳어 있는 분위기를 풀어보았고, 어떤 날은 부모님의 안부를 전하며 따듯한 위로를 건넸다. 그
경찰이나 검찰 조사를 앞둔 분들과 상담하다 보면 유독 자주 듣게 되는 질문이 있다. “수사관이 그러는데 별것 아니니 변호사 없이 그냥 혼자 가서 조사받아도 된다고 하던데요?”, “변호사 선임하는 것보다 피해자와 합의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하던데요?” 같은 이야기들이다. 단순히 전해 들은 이야기를 꺼내놓는 질문처럼 들리지만, 결국 이 질문의 핵심은 하나로 귀결된다. 바로 “변호사가 정말 필요한가?” 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 처한 분들께 정확하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다. 나중에 피의자의 유죄 여부를 판단하고, 실제로 형량을 정하는 주체는 ‘판사’이지 ‘경찰’이나 ‘검사’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경찰과 검찰은 어디까지나 피의자에게 어떤 혐의가 있는지를 조사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사건을 재판에 넘기는 역할을 수행할 뿐이다. 이들은 재판 결과에 직접적인 권한을 행사하지 못하며, 피의자가 나중에 받을 처벌을 줄이거나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어주는 입장에 있지 않다. 오히려 경찰과 검사는 공정하고 철저한 수사를 통해 범죄를 규명하는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에 수사과정에서 피의자에게 편의를 봐주거나 유리한 처분을 한다거나, 조사과정을 소홀히 했다가는 오히려 ‘부실수사’
아주 먼 옛날, 사람들은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외딴곳에 커다란 동그라미를 그려놓고 죄지은 사람을 동그라미 안에 들어가게 했다고 한다. 그 안에 들어가 몇 시간 혹은 며칠 동안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벌을 주었던 것이다. 처음엔 죄인들이 동그라미 밖을 벗어나지 않아 그 벌이 계속 유지되었지만, 어느 순간 동그라미를 벗어나 엉뚱한 짓을 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동그라미는 벌로써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동그라미 대신 높은 담을 만들어 죄를 지은 사람을 가두었다. 하지만 담을 넘는 사람들이 나타나자 튼튼한 지붕까지 만들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과정들을 겪으며 오늘날의 교도소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동그라미는 우리 개개인의 양심이고 우리 사회의 원칙과 약속이라고도 할 수 있다. 양심의 동그라미를 벗어난 사람들을 눈에 보이는 동그라미 속에 가두어 놓기 시작했고, 동그라미의 원칙과 약속이 깨질수록 또 다른 동그라미가 그려지고 급기야 그 안에 가두고 통제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해 사형이라는 극단적인 처벌까지 만들게 되었다. 수용자 중에는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기보다 자신은 재수가 없어 교도소에 오게 된 것이고, 본인보다 더 나쁜 짓을 하고도
구치소 안에서의 생활은 누구에게나 힘들고 어렵다. 건강이 좋지 않은 분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고생하며 건강상태가 더욱 악화하기 쉽고, 밖에서 사업을 하던 분들은 사업체 관리가 어려워지면서 사업이 망가져 가는 것을 지켜만 보게 된다. 가족 중 경제활동을 유일하게 하던 분이라면 구속되면서 바깥에 있는 가족들이 고통을 겪게 되기도 한다. 이런저런 어려움 때문에 누구나 한 번쯤은 ‘보석’을 생각해 보게 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보석은 쉬운 것이 아니고, 이는 바깥에 나가서 합의하겠다거나 건강이 좋지 않다는 이유가 있을 때도 마찬가지다. 실무에서는 정말로 건강이 좋지 않은 분들도 ‘병보석’이 아닌 구속집행정지 결정으로 처리가 되고, 구속 기간이 만기가 되어 나가는 ‘만기보석’ 외에는 보석 신청이 인용되는 경우가 무척 드물다. 요즘 재판부에서 병보석을 꺼리게 된 이유로는, 병보석이 황제 보석이라고 지적되며 여론의 비판을 호되게 받은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는 주로 기간이 짧은 구속집행정지(형이 확정된 분의 경우엔 형집행정지) 제도를 이용해 수술 등 급한 치료가 필요할 때만 잠시 밖에 있을 수 있게 하고, 필요에 따라서 구속집행정지 기간을 그때그때 늘려주는 형식
판사 생활을 하다가 변호사가 되니 달라진 것이 많지만, 가장 다른 것 중 하나가 판결 선고일에 느끼는 감정이다. 판사 때는 판결 선고일이 시험 답안지를 제출해야 하는 마감 시간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변호사가 되니 선고일이 시험 당락 발표일 같다. 붙느냐 떨어지느냐에 따라 희비가 크게 좌우되는 중요한 입시나 취직 시험 결과의 발표일 말이다. 선고일이 가까워질수록 신경이 쓰인다. 선고 결과가 유죄일지, 무죄일지, 실형일지, 집행유예일지 생각하게 되고 마음이 천국과 지옥을 오간다. 변호사도 이러니 당사자는 오죽할까. 그래서 의뢰인들은 선고일이 가까워지면 특별히 알릴 소식이 없어도 불안한 마음을 달래려고 괜히 내게 전화하곤 한다. 의뢰인들 중에는 변호사에게 별다른 일이 없이 전화하기가 미안해 참고 있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선고 전날에는 내가 먼저 의뢰인에게 연락을 드리는데, 모두 좋아하신다. 그런 날의 통화에서는 이미 서로가 수없이 이야기했던 말들이 오가지만 그러면서 서로 불안한 마음이 진정된다. 판사일 때는 판결을 선고한 직후부터 후련했다. 그 순간부터 그 사건에 대한 고민의 의무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다. 결과에 따라 판사의 기분이 달라질 것은 없다. 유죄 판결
변호사로 일하며 접견을 자주 가다 보니 이런 질문을 종종 받는다. “접견을 그렇게 자주 가야 하나요?” “한두 번 만나면 충분한 거 아닌가요?” 실제로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 구치소에 여러 차례 접견을 가는 변호사는 많지 않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사건을 제대로 이해하고, 의뢰인에게 진짜 중요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라면 자주 가야 한다. 자주 만나야만 들을 수 있는 말들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몇 년 전, 항소심 사건을 진행하면서 겪은 일이 있다. 당시 사건 기록만 봤을 때는 사건의 사실관계가 충분히 정리되어 있었고, 1심 변호인도 여러 가지 양형자료를 법원에 제출한 상태였다. 겉보기에는 더 준비할 것이 많지 않아 보였지만, 나는 의뢰인의 이야기를 처음부터 들어보기로 했고 그 선택 덕분에 결과를 바꿀 수 있었다. 처음에는 의뢰인이 매우 긴장한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불안감과 경계심이 컸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구치소에 찾아가 대화하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의뢰인은 본인의 이야기를 조금씩 꺼내며 자신의 삶에 대해 편하게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의뢰인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변호사님, 이 이야기를 해도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그가 들려준
형사 사건에서 중요한 양형 자료 중 하나가 바로 ‘탄원서’다. 많은 의뢰인 가족들이 이 탄원서를 준비하기 위해 주변 지인들에게 서명 등을 부탁하지만, 정작 어떤 내용으로 써야 효과적인지 몰라 막막해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얼마 전에도 의뢰인 어머니와 상담을 하던 중 “탄원서를 부탁해야 하는데 어떻게 써달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걱정하셨던 기억이 있다. 흔히 탄원서라고 하면, “이 사람은 좋은 사람입니다”라는 식으로 단순하게 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실제 법정에서 양형에 효과를 보려면 좀 더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내용이 필요하다. 탄원서를 읽는 판사가 피고인을 선처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도록 써야 한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피고인의 성품을 언급해야 한다면 단순히 “착한 사람”이나 “성실한 사람”이라는 추상적인 표현을 쓰기보다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야 한다. “평소 봉사활동을 꾸준히 해왔고, 주변 사람이 어려운 일을 겪을 때면 항상 먼저 나서서 돕던 사람이다”라는 식으로 말이다. 또한 가족들이 처한 어려운 사정을 강조하고 싶다면, 이 역시 구체적이고 명확한 서술이 필요하다. 피고인의 수입이 가족의 생계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거나, 구금으
‘미결구금일수’라는 것은 판결이 선고되기 전날까지 구속되어 있는 기간을 뜻한다. 미결구금은 피고인의 자유를 박탈한다는 점에서 결국 자유형과 유사하기 때문에 형법 제57조가 인권보호의 관점에서 미결구금일수의 전부를 본형에 산입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우리는 의뢰인들께 이 미결구금을 어떻게 보내는지에 따라 재판 결과가 참 많이 달라질 수 있다고 말씀드린다. 피해자가 한 명인 단순 인정 사건에서 합의가 완료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형사 재판에서 이 속칭 ‘밑동’이라고 불리는 미결구금 기간을 최대한 길게 가지고 가는 것이 최종적으로 보다 좋은 결과를 받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형사 재판을 받는다는 것은 정말 극도의 스트레스, 불안감을 동반하는 일이다. 이러한 불안감은 ‘언제,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르는 상황에 계속 놓여 있다는 점, 그리고 ‘그 결과’로 인해서 재판받는 사람의 인생이 바뀌게 되는 형사 재판 제도의 본질적인 특성에 기인한 것으로, 특히나 구속 상태에서 진행이 되면 몸과 마음이 고되고 불안감은 더 커지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구속 상태에서 처음 재판을 받는 많은 분들은 이 미결구금 기간을 최대한 줄이고 싶어 한다. 빨리 재판을 끝내고 싶
‘친족간 강제추행’ 사건은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직접적인 혈연관계 또는 사실상 친족과 다름없는 관계에서 발생하는 성범죄는 그 특성상 피해자가 받는 충격이 상당하고, 가해자에 대한 법원의 시선 역시 매우 엄정하다. 그러다 보니 1심에서 징역형이 선고되고 피해자와 합의가 어려운 상황이라면 항소심에서 감형이나 집행유예를 노리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고인은 현실적인 방어 전략을 세울 수밖에 없다. 1심에서 실형을 받았을 때 항소심에서 확인해 봐야 하는 주요 포인트는 무엇일까? ① 사실관계 재검토 항소심은 1심만큼 폭넓게 사실관계를 재심리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특정한 요건이 충족되거나 1심에서 충분히 다루지 못했던 주요 증거가 새롭게 제출된다면, 사인이나 법리오해를 주장할 여지는 남아 있어, 항소심에서 반드시 증거 채택 가능성을 검토해야 한다. ② 양형부당 주장 1심에서 사실관계와 법정 적용이 인정된 이후에는, 2심에서는 주로 양형부당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이때 법원에 “피고인이 진정으로 반성하며, 재범 위험이 낮고, 피해 회복에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 일반적인 전략이다. 피해자와 합의하거나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
과거의 교도소는 단순히 격리와 구금만을 위한 공간이었다. 범죄자를 사회로부터 격리하여 사회 안전을 이루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치료정책을 통해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고 위험성을 제거함으로써 사회 안전에 힘쓰고 있다. 안전한 사회를 구현한다는 목표에 다가가는 방식이 격리로 할 것인지, 아니면 위험성을 제거하는 치료로 할 것인지는 접근방법이 정반대다. 치료정책의 시작은 1961년 명칭 변경부터 시작되었다. 과거에 교도소는 형무소로, 교도관을 형무관으로 불렀는데, 형무소의 ‘형무’는 죄지은 사람에게 벌을 주는 것을 말하지만 교도소의 ‘교도’는 바로잡아 이끄는 것을 뜻한다. 범죄자를 사회로부터 밀어내야 할 짐이 아니라 범죄성을 치료해 선량한 이웃으로 받아들이려는 치료정책이 힘을 얻고 있다. 법무부의 치료정책은 2006년 중독성범죄자 교화정책부터 시작되었다. 법제화가 이뤄지지 않아 제대로 시행되지 못했다가 2010년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후 19세 미만의 미성년자에게 성범죄를 저지르면 300시간의 범위에서 치료과정 이수를 부과할 수 있도록 하였다. 즉, 치료과정 참여를 강제하고 이를 어길 시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을 신설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