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로서 특히 마음 쓰이는 의뢰인들이 있다. 보이스피싱 조직에 현금 수거책으로 이용당해 하루아침에 사기범으로 수사선상에 오른 이들이다. 실제로 이들을 만나보면 우리네 평범한 이웃들이다. 이들이 사기 범행임으로 알고 현금을 나르는 경우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당장 정규직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서, 군대 가기 전에 소액이라도 벌어보고자, 아이들 돌보며 형편에 도움 되고자, 퇴직 후 소일거리로, 일견 멀쩡해 보이는 구인 공고에 지원했다가 덫에 걸려드는 것이다.
게다가 최근 보이스 피싱 범행은 적용되는 법률도 통신사기피해환급법으로 바뀌는 등 더욱 중죄로 간주돼 말단 수거책이라도 실형 선고를 받는 추세다. 돈 좀 벌려던 것뿐이었는데 갑작스레 가정과 사회에서 격리돼 철장 신세를 지는 것이다. 수거책 피의자들이 느끼는 고통과 충격, 회한과 죄책감은 차마 형언할 수 없다. 만약 보이스피싱 수거책으로 연루되어 조사를 앞두고 있거나 구속까지 당했다면, 다음과 같은 점을 고려하여 방도를 세우길 권한다.
첫째, 혐의를 인정할 것인지, 무죄를 주장할 것인지부터 검토해야 한다. 피의자가 범죄임으로 몰랐다 하더라도, 전달 횟수나 금액이 많고 가담 기간이 길면 기본적으로 수사기관과 재판부는 ‘미필적 고의’를 추단한다. ‘해당 행위가 불법이라는 점을 충분히 알 수 있었음에도 애써 외면한 채 계속했다’고 보는 것이다. 그렇기에 유죄가 인정되는 기준을 정확히 이해하고 변론 방향을 결정해야 한다. 만약 미필적 고의가 인정될 만한 사건에서 무리하게 무죄를 고집할 경우, 소위 ‘괘씸죄’를 적용받을 수 있으니 주의를 요한다. ‘반성의 여지가 없다’며 높은 형량이 나오는 것이다.
둘째, 혐의를 인정하기로 했다면 피해자들과 최대한 합의해야 한다. 보이스피싱 수거책 사건에서는 합의 여부가 형량을 좌우한다. 보통 피고인들은 합의를 생략하고 싶어한다. 당초 형편이 어려워 아르바이트를 한 데다 모르고 저지른 일이며, 현금을 나르고 받은 수고비도 미미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피해자는 많고 피해 금액은 지대해 이를 합의금으로 변제하자니 눈앞이 아득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합의 없이는 앞서 말한 ‘괘씸죄’를 적용받을 위험이 있다. 마련 가능한 금액 안에서 조금씩만 주고 합의해도 형을 줄이는 데 분명한 도움이 된다.
셋째, 추가 기소를 대비해야 한다. 전달 횟수가 여러 번이라면, 여러 수사기관에서 건별로 사건을 수사해 기소가 여러 번 이뤄질 수 있다. 이런 경우 재판을 따로 받게 되면 건별로 형이 선고돼 총 형량이 매우 많아질 수 있다. 그러므로 여러 사건을 한데 묶는 ‘병합’을 추진해야 한다. 보통 기소가 여러 건이면 피의자들은 한 건씩 각개격파하고 싶어 한다. 현재 걸린 재판부터 무죄 혹은 집행유예를 받아내 구속에서 풀려난 후, 나머지 건들을 하나씩 처리하겠다는 심산이다. 그러나 실무적으로 봤을 때 현실성이 없다. 오히려 재판을 천천히 진행하면서 나머지 사건들을 병합해 한 번에 형을 선고받는 것이 양형에 유리하다.
요새 보이스피싱은 어찌나 지능적이고 사악한지, 누구나 그에 낚여 범죄자가 될 수 있다. 이 범죄 특유의 높은 초범 비율이 이를 시사한다. 다행히 최소한의 법적 묘안은 있다. ▲혐의 인정 여부 결정 ▲합의 추진 ▲추가 기소 대비 등 세 가지를 통해 수거책으로 연루된 피의자들이 인생의 난관에서 벗어나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