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 수술 한 아버지에 증여 강요”…법원 “반사회적 계약, 무효”

심장 수술을 받고 요양 중이던 아버지에게 재산 증여를 강요해 계약서를 작성하게 한 자녀들의 행위는 사회질서에 반하는 것으로, 해당 계약은 '무효'라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수원지방법원 민사14부(문현호 부장판사)는 A씨 등 세 남매가 부친 B씨를 상대로 제기한 29억 원 상당의 ‘증여계약에 따른 금전 청구’ 소송을 최근 기각했다.

 

자녀들은 아버지와 작성한 증여계약서를 근거로, 아파트 매각 대금 전액을 지급하라고 주장했다. 계약서에는 아파트를 매도해 자녀들에게 즉시 양도하고, 차명계좌나 해외계좌 등 숨겨진 재산이 있을 경우 일주일 이내에 전부 증여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판결문에 따르면, B씨는 2023년 4월 심장 수술을 받고 퇴원한 당일 저녁, 자택에서 자녀들로부터 “내연녀와 함께 살 거면 집을 넘기라”는 요구를 받았다. 가사도우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녀들은 B씨의 회사 컴퓨터를 무단으로 가져와 재산 내역을 조회했고, 증여계약서 작성을 반복적으로 요구했다.

 

B씨는 약 12시간에 걸친 압박 끝에 다음 날 새벽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고, 이 장면은 가족 중 한 명이 동영상으로 촬영했다.

 

이후 B씨는 아파트를 매각해 29억 원을 수령했으며, 이 가운데 18억 원으로 오피스텔을 구입해 유언대용신탁을 설정하고 손주들을 사후 수익자로 지정했다. 이에 자녀들은 “계약대로 29억 원을 지급하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반면 B씨는 “수술 직후 절대적인 안정이 필요한 시기에 자녀들이 집요하게 증여를 요구해 계약을 체결하게 됐다”며, “당시는 의사능력이 부족했던 상태로 계약은 무효”라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수술 직후 안정이 필요한 부친에게 자녀들이 비정상적이고 집요한 방식으로 계약을 요구한 점에 비춰볼 때, 이는 사회질서에 반하는 행위”라며 “날인 장면을 촬영하고 부모의 재산을 임의로 조사한 방식은 정상적인 가족관계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러한 행위가 B씨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이며, 해당 계약은 선량한 풍속 및 사회질서에 반하는 것으로 무효”라고 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