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6년 4월, 강도 혐의로 체포된 정남규의 전과를 조회하던 경찰은 여죄를 의심하고 프로파일러를 투입했다. 이후 이어진 조사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2004년부터 2년 넘게 이어지던 서울 서남부지역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이 본인이라고 자백한 것이다. 정남규가 살해한 사람은 13명, 중태에 빠진 사람은 20명에 달했다.
정남규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아버지의 가정폭력을 겪으며 성장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이웃집 남성에 붙잡혀 변태적인 성폭행을 당했고, 학창 시절과 군 복무 시절에도 집단적인 따돌림과 구타, 성폭행당하기를 반복했다.
어릴 때부터 겪어온 불운이 화근일까. 정남규는 사회생활을 시작하기도 전에 범죄의 길로 접어들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989년에 특수강도 혐의로 징역 2년 6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1996년에는 강도와 강간미수죄, 1999년에는 절도, 강간 혐의로 수감 생활을 했다.
2004년, 인천에 살던 정남규는 또다시 피해자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애초 범행 대상은 ‘여성’이었지만 그때 그의 눈에 들어온 건 부천에 살던 초등학생 2명이었다. 정남규는 아이들을 인근 산으로 유인해 성추행하고 결국 살해하기에 이른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정남규의 범행은 점점 더 악질적으로 진화해 갔다. 피해자를 흉기로 살해할 때 그는 등 뒤가 아닌 배와 가슴 등의 정면을 공격했다. 피해자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려는 목적이었다.
대부분의 피해자는 여성이었지만 살인에 중독된 정남규는 서울 서남부 일대를 돌아다니며 피해자의 나이와 성별을 가리지 않고 살인을 저질렀다. 주로 거리에서 마주치는 대상을 상대로 했던 범행 패턴도 가정집 안으로 침입해 복수의 피해자를 만드는 것으로 변했다. 정남규의 범행으로 3명의 남매가 한꺼번에 목숨을 잃은 사건도 생겼다.
정남규는 2004년부터 2년 5개월간 연쇄적으로 살인을 저지르다 2006년 4월 22일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에서 피해자 김 모 씨와의 격투 끝에 경찰에 체포됐다. 이로써 그가 벌인 광란의 살인극도 끝났다.

정남규는 강도 살인, 방화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정남규가 재판부에 “피해자에게 미안하지 않다”, “살인이 즐거웠다”, “담배는 끊어도 살인은 못 끊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사회적 공분을 사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정남규의 범행에 대해 범행의 목적이 돈이나 성폭행이 아닌 살인 그 자체였던 ‘비정상 범행’으로 진단했다. 살인에 쾌감을 느끼는 정남규의 엽기적인 성향은 범죄 심리 전문가들에게도 큰 충격이었다.
2007년 4월 사형이 확정된 정남규는 서울 구치소 독방에 수감되었다. 수감 중에도 그는 살인 충동을 억제하지 못해 괴로워했다. 정남규는 결국 마지막 살인을 저지르기로 마음먹는다. 그 대상은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2009년 11월, 정남규는 구치소 독방에서 극단적인 선택으로 생을 마감한다.
살인을 멈출 수 없어 결국 자기 자신까지 살해한 희대의 살인마는 범죄 심리학계에 많은 과제를 남겼다. 연구자들은 그의 반사회적 성향이 선천적 성향인지, 불우한 환경으로 인해 후천적으로 만들어진 것인지를 두고 다양한 논문을 쏟아냈다.
각 논문의 연구 방향은 달랐지만 결론은 비슷했다. 몇몇 전문가들의 노력만으로는 제2의 정남규가 탄생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누가 범죄자가 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사회의 집단적 고민과 대응이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