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미제 영월 간사 살인사건…항소심서 무죄 선고

 

장기 미제사건으로 남아 있던 ‘2004년 강원 영월 영농조합 간사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돼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60대 A씨가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서울고법 춘천재판부 제1형사부(이은혜 부장판사)는 16일 열린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살인 혐의로 기소된 A씨에 대해 “범행 현장에서 발견된 샌들 족적 감정 결과만으로 피고인을 범인으로 특정하기 어렵다”며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5번 진행된 족적 감정 가운데 2번의 감정결과가 동일성을 인정할 만한 개별 특징점이 없다”며 “감정인의 숙련도나 방식에 차이가 있더라도 일관된 결과가 도출됐다고 보긴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사람의 체중, 발의 크기, 신발을 신고 서 있는 자세 등에 따라 족적 형태가 달라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지문이나 DNA 등 보강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족적 감정만으로 유죄를 인정하기에는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범행 현장에서 피고인의 지문, 머리카락, DNA 등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고 오로지 족적 동일성 여부에 관한 감정결과만 있다”며 “신발 족적 동일성 여부에 관한 감정 결과만으로는 A씨가 이 사건 범행 현장에 있었던 범인으로 특정해 식별하기에 부족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수사기관이 제출한 간접 증거들도 공소사실을 뒷받침하는 데 부족하고 압도적 증명력을 갖췄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은혜 부장판사는 “재판부가 상당히 오랜 기간 이 사건을 검토했지만 실체적 진실은 확신할 수 없다. 아마도 그건 피고인 본인만 알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기록을 면밀히 검토해 심사숙고 끝에 판결을 내렸지만, 그 결과가 실체적 진실에 부합하는지는 알 수 없다”면서도 “형사소송법이 정한 증명 법칙과 사실인정 권한을 최대한 발휘해 누구의 권리도 침해되지 않는 방향으로 판결했다”고 강조했다.

A씨는 2004년 8월 영월읍 영농조합 사무실에서 간사 B씨를 흉기로 십수 차례 찔러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경찰은 결정적 증거를 확보하지 못해 사건은 장기 미제로 분류됐다. 그러나 강원경찰청 미제사건팀이 2020년 국과수 족적 감정에서 99.9% 일치 결과를 확보하고 치정 관계를 범행 동기로 특정해 사건을 송치했다. 검찰은 3년 7개월간 보완수사를 거쳐 A씨를 재판에 넘겼고, 1심 재판부는 현장 족적과 혈흔 위치 등을 종합해 A씨를 범인으로 인정,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항소심에서는 판단이 달라졌다. 변호인 측은 “A씨는 사건 당시 가족과 계곡에서 휴가 중이었고 범행 현장에 간 사실이 없다”며 “사건 시간대에 촬영한 사진도 있다. 검찰의 수사는 짜맞추기식”이라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수 없다고 보고 무죄를 선고했다.

 

무죄 선고 직후 A씨는 아들이 가져온 옷으로 갈아입고 법정을 빠져나와 가족들과 포옹하며 눈물을 보였다. 그는 “이런 일이 다시는 없어야 한다”며 “사건 초기부터 수사에 협조했지만 1심에서 살인자로 몰렸다”고 토로했다. 이어 “대법원으로 가게 되면 진실을 끝까지 이야기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