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멸시효가 완성된 채무를 채무자가 인정했더라도 그 사실만으로 시효완성의 이익을 포기했다고 볼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채무 존재를 인정하는 행위와 시효이익 포기는 별개의 의사표시라는 점을 분명히 한 판결이다.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A건설사가 B씨를 상대로 제기한 공사대금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단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창원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이번 판단은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올해 7월 기존 판례를 변경하며 제시한 법리를 적용한 사례다.
지난 7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채무자가 소멸시효 완성 후 채무를 승인했더라도 그 사실만으로 시효완성 사실을 알고 시효이익을 포기했다고 추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그동안 대법원은 채무자가 시효완성 이후 채무를 인정하거나 일부 변제를 한 경우 시효완성 사실을 알고 그 이익을 포기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는 입장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전원합의체는 이러한 기존 법리를 변경했다.
재판부는 “소멸시효 중단 사유인 채무 승인과 시효이익 포기는 서로 다른 개념”이라며 “채무 승인은 채무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관념의 통지에 불과하지만 시효이익 포기는 시효가 완성된 사실을 알면서 그 법적 이익을 받지 않겠다는 효과의사를 표시해야 성립한다”고 밝혔다.
또 “시효완성 여부는 시효기간과 기산점, 중단 또는 정지 사유 등 다양한 요소에 따라 판단되는 경우가 많다”며 “단순히 채무를 인정했다는 사정만으로 채무자가 시효완성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일반적으로 추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전원합의체는 “시효완성 후 채무 승인만으로 시효이익 포기를 추정해 온 종전 판례는 타당하지 않다”며 1967년 이후 유지돼 온 기존 판례를 변경했다.
사건은 숙박시설 신축 공사대금을 둘러싼 분쟁에서 시작됐다. A건설사는 2013년 8월 B씨로부터 약 10억1200만원 규모의 숙박시설 신축 공사를 도급받아 같은 해 12월 공사를 완료했다. B씨는 공사대금 중 9억6050만원을 지급했지만 나머지 5150만원은 지급하지 않았다.
A건설사는 미지급 공사대금을 받기 위해 2019년 8월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공사대금 채권에는 상법상 3년의 소멸시효가 적용돼 이미 시효가 완성된 상태였다.
1심과 2심은 B씨에게 미지급 공사대금을 지급할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하급심은 B씨 측이 공사대금 미지급 사실을 인정하고 여러 차례 사과 의사를 밝힌 점 등을 근거로 시효완성의 이익을 포기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소멸시효 중단 사유인 채무 승인과 시효이익 포기는 구별되는 개념”이라며 “채무 승인은 채무 존재를 인정한다는 뜻을 표시하는 관념의 통지에 불과하지만 시효이익 포기는 시효가 완성된 사실을 알면서도 그 법적 이익을 받지 않겠다는 효과의사를 표시해야 성립한다”고 했다.
이어 “피고 대리인이 공사대금 미지급 사실을 인정해 채무를 승인했다는 사정만으로는 시효완성 사실을 알면서 그 이익을 포기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했다고 추정할 수 없다”며 “원고 대표이사에게 공사대금 미지급에 대해 사과한 행위 역시 그 진정한 의도가 시효이익을 포기하겠다는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