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배임죄 폐지 방침에 각계 찬반 ‘격돌’…배임죄가 뭐길래?

민주 “기업 활동 불확실성 해소”
국힘 “이재명 구하기 법안 불과”
경제계·시민사회도 반응 크게 갈려

 

당정이 최근 배임죄 폐지 방침을 발표한 가운데, 야당은 이를 ‘이재명 대통령 구하기 법’이라고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이에 대해 경제계는 환영하는 반면 시민단체들은 반발하고 나서면서 사회 각계 충돌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2일 정치권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은 ‘경제형벌 민사책임 합리화 TF’를 구성하고 배임죄 폐지 법안을 내겠다고 밝힌 상황이다. 김병기 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30일 국회에서 “과도한 경제형벌이 기업과 자영업자 등을 옥죄고 있다”며 “형벌 대신 민사적 책임을 강화해 국민 권익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TF 단장을 맡은 권칠승 민주당 의원도 지난 1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기업활동의 불확실성 제거 및 형벌 만능주의 탈피 차원”에서 배임죄 폐지를 추진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경영상 판단과 관련되는 판례는 2% 내외 정도밖에 안 된다”며 “사익 편취를 위한 분식회계, 횡령 등은 각각 사기·횡령죄로 여전히 처벌된다. 재벌 총수의 불법 행위가 빠져나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는 앞서 지난 7월 이재명 대통령이 경제형벌 합리화 방안을 주문한 것에 당이 호응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 대통령은 경제형벌을 1년 내 30% 정비하겠다며 △배임죄 개선을 포함한 선의의 사업주 보호 △형벌 완화 및 금전적 책임성 강화 △경미한 위반행위의 과태료 전환 등의 형벌 개선 사항을 제시한 바 있다.

 

 

형법 제355조 제2항은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임무에 위배되는 행위로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삼자로 하여금 이익을 얻게 하고 본인에게 손해를 끼쳤을 때 배임죄로 규정한다. 법정형은 5년 이하 징역 또는 1500만 원 이하 벌금으로, 횡령죄와 함께 기업범죄의 양대 축으로 꼽혀왔다.

 

실제 현행법에 따르면 임원이 회사에 손해를 끼치는 불리한 계약을 체결하면 배임죄가 적용된다. 개인사업자가 아니라면 회사 또한 법인이라는 하나의 권리를 가지는 주체로 보고, 이에 대한 신뢰 관계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경제계는 그간 배임죄가 지나치게 광범위하게 적용돼 정상적 경영 판단조차 사후적으로 수사 대상이 되는 문제가 있다고 주장해 왔다. 이에 따라 당정의 방침에 환영의 뜻을 일제히 나타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30일 “당정이 경제형벌 합리화 1차 방안을 발표한 데 대해 환영한다”며 “한국에서는 실제 손해가 발생하지 않아도 손해 발생의 위험만으로 배임죄를 인정하는 경향이 있어 기업의 모험적인 투자가 위축되고 있었다”고 말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도 “현재 배임죄는 적용 범위가 광범위할 뿐만 아니라 처벌 수준도 가혹해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고 있다”며 “배임죄 제도 개선이 조속히 추진되길 희망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여권의 배임죄 폐지 추진에 대해 야권과 시민단체는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특히 국민의힘은 이번 조치가 “이재명 대통령 때문에 하는 것”이라며 정치적 판단으로 형법 폐지를 추진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김도읍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이날 국회에서 “(배임죄 폐지는) 동죄로 재판받는 이재명에 대해 면소 판결을 받게 해주려는 조치로밖에 볼 수 없다”며 “(당정은) 형법상·상법상 배임죄 폐지 중 무엇을 없앨지 구분해야 한다. 형법상 배임죄 폐지는 이재명 구하기에 불과하다”고 역설했다.

 

박성훈 국민의힘 수석대변인도 다음 날 논평을 통해 “(배임죄 폐지가) 기억 혁신에 대한 필요성이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면서도 “최소한의 보완 장치가 정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섣불리 처벌 조항을 걷어내는 것은 이 대통령의 죄를 없애기 위해 입법을 방패막이로 삼겠다는 반헌법적 발상”이라고 역설했다.

 

시민단체들도 부정적이다. 경제정의실천연합은 “배임죄 폐지는 한국 자본시장의 기본 질서를 뒤흔들어 기업 오너와 경영진의 전횡을 사실상 방치하겠다는 선언”이라며 “배임죄 폐지 논의는 주주의 권리와 자본시장 투명성을 훼손하는 어불성설”이라고 비판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도 “배임죄는 ‘경영 실패’가 아닌 ‘신임 위배’를 처벌하는 것이다”라며 “배임죄 폐지론의 주된 근거는 경영자의 과감한 의사결정을 위축시킨다는 것이나 이는 배임죄의 본질을 왜곡 또는 호도함에 불과하다”고 배임죄 폐지를 비판했다. 이어 “배임죄는 기업의 ‘사유화’를 막는 핵심 장치”라고 주장했다.

 

다만 민주당은 대통령을 위한 폐지라는 야당의 비판에는 선을 그었다. 배임죄 폐지는 지난 정권에서도 논의됐던 법안이라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당정은 “처벌 공백이 없도록 별도 입법을 마련하겠다”며 “10월 이후 추가 개선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후속 논의를 예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