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안팍] 의뢰인을 신뢰하는 것이 결과로 나타난다

데이팅 앱에서 시작된 만남으로
하루아침에 ‘성범죄자’로 지목돼
변호인에 숨김없이 사정 털어놓고
고소인의 모순 찾아 ‘불송치’ 결과

 

“변호사님, 저 좀 제발 살려주세요. 저 진짜로 강제로 한 적 없어요.”

 

필자를 찾아온 의뢰인의 첫 마디였다.

 

아직도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사색이 된 얼굴로 상담실에 앉아있던 의뢰인은 30대 초반의 성실한 사업가였다. 젊은 나이에 안정적인 소득을 올리며 지내왔던 사람이었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런 사정이 있었다.

 

데이팅 앱을 통해 알게 된 여성과 술을 마시게 됐고, 호감을 느껴 자연스럽게 하룻밤을 함께했다고 한다. 이후에도 연락을 주고받으며 몇 번 더 만남을 이어가던 중에 예상치 못한 전화를 받게 된다. 여성청소년수사팀으로부터 ‘만취한 피해자를 간음한 혐의’로 조사를 받아야 한다는 통보였다.

 

순식간에 성범죄자가 될 상황에 놓인 의뢰인은 얼굴이 사색이 될 정도로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본인의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고 돌아오는 것은 차가운 시선뿐이었다. 하루아침에 자신이 쌓아온 사회적 신뢰와 명예, 그리고 지금까지 일궈온 삶이 송두리째 무너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의뢰인의 두려움은 클 수밖에 없었다.

 

필자는 의뢰인의 진술을 처음부터 끝까지 빠짐없이 청취했다. 그 과정에서 고소인의 주장과 실제 정황이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드러났다. 고소인은 “만취 상태에서 저항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지만, 당시 상황은 전혀 달랐다. 사건 직후 이어진 대화에서는 의사소통이 충분히 이루어졌고, 합의적 분위기가 분명히 나타나 있었다. 또한 고소 이후에도 의뢰인을 만나 식사까지 했다는 사실은 고소장에 적힌 주장과는 명백히 어긋나는 대목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여전히 증거였다. 성범죄 사건에서는 고소인의 진술이 일관되고 구체적이면 그 자체만으로 유죄 판단의 근거가 되곤 한다. 물증이 부족한 상황에서 의뢰인의 주장은 자칫 ‘변명’으로만 비칠 위험이 있었기 때문에 필자는 직접적인 대질신문을 통해 모순점을 드러내고자 했다. 만약 고소인이 대질신문을 거부한다면 준비한 질문을 수사관이 대신 던져 고소인의 모순을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필자가 준비한 질문지는 단순한 참고자료가 아니었다. 우선 의뢰인과 고소인이 주고받은 대화 내용을 시간대별로 정리하고, 그 안에서 고소인의 주장과 충돌하는 지점을 항목별로 뽑아냈다. 이어서 그 모순을 드러낼 수 있도록 질문 하나하나를 설계했다. 사건 직후 의사소통이 가능했다는 정황이나 이후에도 다시 만남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도록 집중적으로 구성한 것이다.

 

이 자료를 근거로 수사기관에 대질신문을 요청하며 고소인의 진술에 내재한 모순을 명확히 짚어냈다. 수사관 역시 필자의 설명과 자료를 검토한 끝에 고소인의 진술을 그대로 믿기 어렵다고 판단했고, 추가 조사를 진행하게 했다.

 

필자는 이 질문지를 수사기관에 제출하면서 단순히 ‘의뢰인의 주장이 맞다’는 차원을 넘어 고소인의 진술 신빙성 자체를 검증해 달라고 요청했다. 만약 고소인이 대질신문에 응하지 않더라도 수사관이 이 질문들을 활용해 사실관계를 재차 확인한다면 모순을 피할 수 없도록 설계한 것이다.

 

수사관은 자료를 면밀히 검토한 뒤 고소인의 진술이 일관되지 않음을 인식하게 되었고 실제로 필자가 제시한 질문들을 토대로 고소인을 재조사했다. 그 결과 고소인이 주장한 ‘심신상실 상태’는 당시 정황과 맞지 않는다는 점이 드러났다.

 

결국 경찰은 사실관계 검토 끝에 의뢰인이 ‘만취 상태를 이용해 간음했다’는 혐의를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불송치 결정이었다. 이번 결과는 단순히 억울함을 호소한 끝에 얻어진 행운이 아니다. 처음 수사 단계에서부터 고소인의 진술에 있는 모순을 구체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질문지와 구조적인 전략으로 대응한 적극적인 조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성범죄 사건은 억울하게 연루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억울함을 주장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중요한 것은 사건의 사실관계를 어떻게 드러내고 모순을 어떻게 부각시킬 수 있는지에 있다. 이를 위해선 의뢰인과 변호사 사이의 견고한 신뢰가 필요하다.

 

의뢰인이 처음부터 변호인에게 모든 사실을 숨김없이 털어놓고, 변호사가 이를 바탕으로 전략을 세운다면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이번 사건 역시 마찬가지였다. 억울함을 입증할 수 있는 정황을 의뢰인 본인과 변호인이 함께 찾아낸 덕분에 최선의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