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법무부 “교정시설 과밀수용 통계 없다”…비공개 입장 견지

소송 이어져도 ‘1인당 면적 자료 없다’ 고수
법무부 "수용인원 플라스틱 판에 수기로 작성"
法 “민사소송 입증책임은 원고” 원칙에
“증거 불충분” 기각多…제도 개선 시급

 

전국 교정시설의 수용률이 129%에 달하는 ‘초과밀’ 상태에도 불구하고, 법무부가 1인당 수용면적 관련 통계를 비공개로 유지하고 과밀수용 손해배상 소송에서 자료 제출을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로 인해 다수의 소송이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기각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법무부가 의도적으로 법적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법원 “2㎡ 미만 수용은 위법”…수용률이 129%에도 자료는 ‘없다’


2017년 8월 부산고등법원 민사6부(재판장 윤강열)는 1심을 뒤집고 “1인당 수용 면적이 기본 욕구조차 충족하기 어렵게 좁으면 헌법상 인간의 존엄을 침해한다”며 국가가 원고들에게 각각 300만 원, 15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수형자 1인당 면적이 2㎡ 미만인 거실 수용을 위법으로 판단한 것이다. 이어 2022년 7월 대법원 제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도 상고를 기각하며 국가배상 책임을 확정했다.

 

이후 법무부는  과밀수용 소송에서 “1인당 면적 통계는 통계로 관리하지 않는다”며 자료 제출을 거부하고 있다.

 

21일 법무부가 <더시사법률>의 질의에 회신한 내용에 따르면, 올해 10월 기준 전국 54개 교정시설의 정원은 5만 230명, 실제 수용 인원은 6만 4789명으로 수용률이 129%에 달한다. 그러나 법무부는 “여성 수용자나 환자 등 개별 처우 인원이 많아 통계로 관리하지 않는다”며 1인당 면적 자료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

 


입증책임은 ‘원고 몫’…자료 없으면 줄줄이 패소


이 같은 방침 탓에 수형자들이 “1인당 면적이 2㎡ 미만”이라며 과밀수용의 위법성을 주장하더라도 이를 입증하기 어렵다.

 

민사소송법 제288조에 따라 입증책임이 원고에게 있는 만큼, 자료를 확보하지 못하면 손해배상 청구는 기각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대전지법 2021.10.15. 선고 2020나125854 판결에서 법무부는 “특정 기간 특정 거실의 수용인원 정보를 보유·관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고,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여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전주지법 2023.6.28. 선고 2022나6143 사건에서도 원고가 점호 기록을 근거로 자료 존재를 주장했으나, 법무부는 “수용현황표를 플라스틱 판에 사인펜으로 기재해 하루에도 여러 차례 수정하며 별도 보관하지 않는다”고 항변했다. 재판부는 “문서를 보유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원고의 주장을 배척했다.

 

이에 대해 한 전직 교도관은 “20년대에도 ‘1980년대식 보드판 관리’를 운운하는 건 현실과 동떨어진 답변”이라고 비판했다.

 

대전지방법원 재판부는 “피고(법무부)가 그 동안 과밀수용을 억제, 방지하기 위한 기초적 업무인 수용인원 현황파악 및 관리조차 제대로 수행하지 않은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든다”고 지적했다.


법무부 “입증책임 없다”…“개인정보라서 비공개”


법무부는 <더시사법률>에 “민사소송에서 입증책임은 원고에게 있으므로 국가가 먼저 자료를 제출할 의무는 없다”고 반박했다. 또한 “민사소송법 제344조 제2항에 따라 공무원이 직무상 보관하는 문서는 제출 의무 예외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며 거실별 수용인원 자료 제출을 거부하고 있다.

 

또한 “매일 인원점검을 실시하지만 보고 형식과 관리 방식은 시설별로 다르고 별도 규정이 없다”며 소송 지연 의혹도 부인했다. 개인정보 침해를 이유로 “거실 이력은 열람할 수 있으나, 같은 거실에 몇 명이 있었는지는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도 유지하고 있다.

 

예컨대 특정 수용자가 자신이 ‘1번거실’에 있었다는 사실은 열람할 수 있지만, 해당 거실의 총 수용 인원은 확인할 수 없다.

 

법무부는 “거실 지정 자료는 정보공개법 제9조 제1항 제4호에 따라 비공개 대상”이라며 “다만 청구인 본인의 거실 지정 내역은 공개된다”고 설명했다.

 

이를 달리 해석하면, 현재처럼 재소자들이 개별적으로 소송을 제기하거나 서로 다른 교정시설에서 소송을 진행할 경우 ‘어느 방에 있었는지’ 정도만 알 수 있을 뿐, 실제 거실당 수용 인원은 파악할 수 없다.

 

반면 같은 거실에 수용됐던 인원들이 집단으로 소송을 제기할 경우, 각자의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개별 수용 이력을 취합함으로써 실제 몇 명이 한 거실에 있었는지를 사실상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 소송 현장에서는 이마저도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지적이다. 한 과밀수용 소송 전문 변호사는 “집단소송 시 전국 각지에 있는 수용자를 10명만 모으는 것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며 “같은 거실에 있던 사람들을 찾아내는 일은 더 어렵다‘고 전했다.

 

법조계는 과밀수용 문제의 본질이 “법무부 구조적 책임 회피”에 있다고 지적한다. 출소 시점 결정이나 수용 인원 통제 권한은 법무부가 쥐고 있지만, 현장의 교정본부는 인권침해와 행정 부담만 떠안고 있다는 것이다.

 

법무법인 청 곽준호 변호사는 “거실 면적과 수용 인원 자료는 교정시설 운영의 기본 지표”라며 “공공기관이 이를 ‘비공개’로 일관하는 것은 투명성 결여의 전형적인 사례”라고 비판했다. 이어 “국가가 스스로 보유한 데이터를 근거로 책임을 부정하는 것은 법적 책임 회피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이어 “과밀수용 문제가 사법 판단을 통해 반복적으로 지적되고 있는 만큼, 이제는 ‘법리적으로 정당하다’는 입장에 머무르지 말고 정책적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