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밀수용, 책임만 있고 권한은 없는 한국 교정

정원 초과가 일상화된 국내 교정시설
인권 침해 유발하는 과밀화의 문제점
교정 관련 제반 권한 가진 유럽 사례
입구와 출구 열쇠, 당사자가 가져가야

 

우리나라 교도소는 늘 정원을 넘어선다. 정원 100명에 125명을 수용하는 일이 일상화되어 있다. 수용동마다 좁은 공간에 수십 명이 밀집해 생활하고, 바닥에 돗자리를 펴고 잠을 자는 장면도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일부 교정시설은 법정 수용 인원의 150%를 넘어서는 경우도 적지 않다.1)


과밀수용은 단순히 불편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수용자의 인간다운 생활을 침해하고, 최소한의 인권 보장조차 어렵게 만든다. 나아가 교육·상담·재활 프로그램 운영이 사실상 불가능해지면서 교정·교화 기능마저 무력화되는 구조를 고착시킨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은 ‘교도소 공간이 좁다’가 아니다. 입구와 출구의 열쇠가 모두 검찰과 법원, 법무부 등 교정시설 밖의 기관에 쥐어져 있다는 점이 핵심이다.

 

누가 언제 들어오는지, 언제 나갈 수 있는지를 교정 당국은 결정할 수 없다. 오직 ‘받아서 관리하는 일’만을 맡고 있을 뿐인데 그 과정에서 책임만 떠안는다. 권한 없는 책임 구조가 과밀수용을 낳는 근본적인 이유다.


해외 사례는 이를 분명히 보여준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오랫동안 교도소 과밀 문제로 악명이 높았다. 결국 연방대법원은 Brown v. Plata(2011) 판결에서, “과밀수용이 의료·정신건강 서비스 제공을 가로막아 헌법이 보장하는 인간다운 처우를 침해한다”고 판시했다. 이 판결은 교정행정 전반에 대전환을 불러왔다.


이후 도입된 Public Safety Realignment 제도는 교정청 주도로 비폭력·비성범죄자를 주 교도소 대신 카운티 보호관찰이나 지역사회 처우로 이관하는 내용을 담았다.2) 그 결과 교정 당국이 수용률 관리에 실질적으로 관여할 수 있게 되었고, 캘리포니아의 극심한 과밀 문제는 점차 완화됐다.


유럽의 북유럽 국가들은 한층 더 진일보한 방식을 택했다. 노르웨이, 핀란드, 스웨덴 등에서는 교정기관이 단순한 ‘수용 관리인’이 아니다. 이들 국가에서 교정국은 형 집행 전 과정을 주도하며, 수용·석방·감독의 모든 단계를 책임진다.

 

수용률 관리 역시 교정국의 역할이다. 정원이 부족할 경우 무리한 수용 대신 가석방, 전자감독, 사회봉사 같은 대체 형벌을 직접 결정하고 집행한다.3) 이 같은 구조 덕분에 이들 국가는 OECD 평균보다 훨씬 낮은 수용률을 유지한다. 특히 노르웨이의 경우 2년 내 재범률이 약 20% 수준으로, OECD 국가 중 최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4)


핵심은 교정기관 당사자가 ‘책임 주체’로 기능한다는 점이다. 형 집행과 수용 관리, 석방 결정과 재범 예방까지 통합적으로 조율할 수 있는 권한을 갖추었기에 가능한 성과다.


반면 한국의 교정청은 입구도, 출구도 통제하지 못한다. 누가 들어올지는 검찰과 법원이 정하고, 언제 나갈지는 법무부 장관과 가석방위원회가 결정한다. 교정청은 단지 수용자를 받아 관리하는 역할에 머물며, 수용률을 조정할 권한은 전혀 없다. 결국 현장은 늘 포화 상태를 감내하면서도 모든 책임을 떠안는다.


과밀수용 문제를 해결하려면, 교정청이 적어도 출구에 대한 권한을 가져야 한다. 가석방·보호관찰 등 형 집행의 마지막 단계를 교정청이 주도적으로 관리할 때 비로소 입구와 출구를 유기적으로 조율할 수 있다. 미국의 Realignment 제도, 북유럽의 교정 주도형 구조는 이를 입증하는 선례다.

 

교도소 과밀 문제는 결코 단순한 ‘공간 부족’의 문제가 아니다. 권한과 책임이 분리된 구조의 문제이며, 이를 바로잡지 않는 한 문제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입구와 출구의 열쇠를 교정기관에 나눠줄 때, 우리는 과밀의 악순환을 끊고 교정의 본래 목적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