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회생 후 ‘갚겠다’ 작성한 각서…법원 “효력 없어”

채무면책결정 이후 작성된 각서 무효
法 “자발적·합리적으로 작성돼야 해”

 

개인회생 절차를 마치고 법원으로부터 면책 결정을 받은 채무자가 채권자의 요구로 작성한 ‘채무변제각서(채무재승인약정)’는 효력이 없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전주지법 군산지원 민사1단독(박성구 부장판사)은 최근 채무자 A씨가 채권자 B씨를 상대로 낸 면책확인 소송에서 원고 청구를 받아들이고, B씨의 반소를 각하·기각했다고 21일 밝혔다.

 

A씨는 2015년 10월 B씨에게 빌린 1억3600만원을 갚지 못해 개인회생을 신청했고, 변제계획을 모두 이행한 뒤 2021년 1월 법원으로부터 면책 결정을 받았다.

 

그러나 A씨는 변제계획 이행과는 별개로 2022년까지 8000여만원을 갚았다. B씨에게 잔금과 이자를 포함한 1억원을 갚겠다는 내용의 각서를 작성했다.

 

B씨가 이 각서를 근거로 변제를 요구하자 A씨는 “면책 결정으로 채무 책임이 사라졌으며 각서 약정 또한 무효”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B씨는 반소를 제기해 “A씨가 작성한 각서를 근거로 변제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각서는 면책결정을 받은 뒤 1년 5개월가량 지난 뒤 채권자 B씨의 요청으로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며 “A씨가 면책된 채무를 다시 부담한다는 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자발적으로 작성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이어 “면책 결정이 확정된 차용금 채무는 이미 책임이 면제됐고 각서에 따른 약정을 유효하다고 보기 어렵다”며 “원고의 채무액인 1억원도 A씨의 소득 수준을 고려해볼 때 회생에 지장이 없는 합리적 약정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결했다.

 

법원은 이처럼 면책 이후 채권자 요구에 따라 작성된 채무변제각서(채무재승인약정)에 대한 유효성을 엄격하게 제한해 왔다.

 

대법원은 “면책 제도는 지급불능 상태에 빠진 채무자에게 경제적 재기와 회생의 기회를 부여하기 위한 것”이라며 “채무재승인약정은 채무자가 면책된 채무를 변제한다는 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자발적인 의사로 약정했으며, 그로 인해 과도한 부담이 발생하지 않는 경우에만 효력이 인정된다”고 판시했다.(2020다269794 판결)

 

지난해 4월 4일 수원지법 안양지원도 “원고가 면책 전후 변제 의사를 밝혔더라도 별다른 재산이나 소득이 없다면 채무재승인약정은 유효하지 않다”고 판단했다.(2022가단4814)

 

법률사무소 로유 배희정 변호사는 “이번 판결은 면책 제도의 취지인 ‘성실하거나 불운한 채무자의 경제적 재출발’ 도모라는 원칙을 재확인한 것으로 보인다”며 “채무재승인약정은 채무자가 면책의 의미를 알고 자발적으로 새로운 채무를 부담했는지, 그 약정이 회생에 지장을 주지 않는지를 고려해 제한적인 수준에서만 인정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