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류된 채권도 소송 가능…대법, 25년 만에 판례 변경

20년 이후 유지된 ‘소송자격 상실’ 판례 폐기

 

압류되거나 추심명령이 내려진 채권에 대해서도 채무자가 직접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단이 나왔다.

 

소송자격이 없다는 25년간의 입장을 변경한 것으로, 이해관계자 간 권리 관계를 조정하면서 분쟁의 일회적 해결을 도모할 수 있다는 취지다.

 

23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A씨 등이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 상고심에서 상고를 기각하고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A씨 등은 피고를 상대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과 부당이득반환을 청구해 일부 승소했으나, 이후 채권자와 세무당국이 해당 채권에 대해 각각 추심명령과 압류를 내렸다.

 

이에 원고는 “압류된 채권에 대한 이행을 구할 자격이 없다”는 기존 판례에 따라 소송 수행이 불가능하다는 문제에 부딪혔고, 법원의 판단을 다시 구했다.

 

쟁점은 압류나 추심명령이 내려진 채권에 대해 채무자가 여전히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지 여부였다. 대법원은 다수의견(12명)으로 “채무자가 피압류채권에 대한 소송을 제기하더라도 추심명령에 위반되지 않으며, 단지 추심명령이 내려졌다는 이유만으로 소송 자격을 상실한다고 볼 근거가 없다”고 밝혔다.

 

또 “이 경우 추심채권자에게 부당한 결과가 발생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당사자 적격을 제한하면 분쟁의 일회적 해결과 소송경제에 반하고, 채권자의 이익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반면 노태악 대법관은 “추심채권자가 채무자보다 우선적으로 만족을 얻을 지위에 있는 만큼, 기존 판례를 변경할 필요성이 없다”며 유일하게 반대 의견을 냈다.

 

대법원이 2000년 4월 이후 유지해온 기존 입장을 25년 만에 뒤집은 것이다. 그동안은 압류 또는 추심명령이 내려진 채권의 경우, 원래의 채권자가 해당 채권에 대한 이행소송을 제기할 당사자 적격을 상실한 것으로 봤다.

 

2018년 대법원은 “채권에 대한 압류 및 추심명령이 있으면 제3채무자에 대한 이행소송은 추심채권자만 제기할 수 있고, 채무자는 피압류채권에 대한 이행소송을 제기할 자격을 잃는다”고 판시한 바 있다(2017다264034 판결).

 

기존 해석은 민사집행법 제227조(금전채권의 압류) 및 제232조(추심명령의 효과) 조항에 근거했다. 과거에는 금전채권이 압류되면 법원이 제3채무자에게 지급을 금지하고, 채무자에게 채권의 처분·영수를 금지하는 점을 들어 소송 제기도 ‘처분행위’로 간주했다.

 

또 추심명령이 내려지면 압류채권자가 채무자를 대신해 채권을 회수할 권능을 가지므로, 채무자는 관리처분권을 상실한다고 보아왔다.

 

그러나 이번 전원합의체는 이러한 해석을 정면으로 뒤집었다. 대법원은 “채무자의 소송 제기가 추심명령의 효력에 반하지 않으며, 권리행사 자체가 금지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추심채권자, 채무자, 제3채무자 간 이해관계를 합리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해석”이라고 밝혔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판결에 대해 “추심채권자, 채무자, 제3채무자에게 부당한 결과를 초래하지 않으면서도 분쟁의 일회적 해결과 소송경제를 도모할 수 있고, 추심채권자의 의사에도 부합하는 추심명령 관련 실무의 방향을 제시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