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건수사·강압수사에 제동… ‘진술 신빙성’ 다시 본 법원

별건수사로 얻은 진술, 증거능력 인정 안 돼
강도 높은 별건수사로 얻은 자백…법원 제동

 

주가조작 혐의로 기소된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법원은 “별건수사가 진실을 왜곡했다”며 검찰의 수사 방식에 대해 제동을 걸었다.

 

서울남부지방법원 형사15부(재판장 양환승 부장판사)는 지난 21일 SM엔터테인먼트 인수 과정에서의 시세조종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의 핵심 증거는 본건(시세조종 혐의)과 직접 관련 없는 별건수사를 통해 확보된 진술에 기반하고 있다”며 “별건 수사를 통해 얻은 진술은 신빙성이 부족해 유죄의 증거로 삼을 수 없다”고 밝혔다.

 

27일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해 수사기관이 청구한 구속영장은 2만7948건으로 최근 5년 사이 가장 많았던 반면, 발부율은 76.9%로 5년 사이 가장 낮았다.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 재판은 이러한 흐름 속에서, 검찰 수사에 대한 법원의 통제 기조가 강화되고 있음을 단적으로 드러낸 판결로 풀이된다.

 

또한 특검 등 주요 사건이 집중되는 서울중앙지법의 압수수색영장 기각률도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이 법원행정처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1~6월 서울중앙지법에는 1만9280건의 압수수색영장이 청구됐고 이 중 3.43%(662건)이 기각됐다. 최근 5년 중 가장 높은 수치다.

 

법원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부당합병·분식회계 사건,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돈봉투 의혹’ 사건 등에서도 압수수색으로 확보된 증거라 하더라도 별건수사 등의 이유로 절차상 위법했다면 판단 근거에서 배제하는 판결을 잇달아 내리고 있다.

 

이번 김범수 사건의 핵심은 단순한 ‘무죄’가 아니라 법원이 수사 절차의 적법성을 기준으로 별건수사의 증거능력을 전면 배제했다는 점에 있다. 재판부는 “수사 주체가 어디든 강도 높은 별건수사로 피의자의 진술을 이끌어내는 행위는 진실을 왜곡할 수 있다”며 검찰의 수사 방식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또 “이준호 전 카카오엔터테인먼트 투자전략부문장의 진술이 없었다면 피고인들이 법정에 서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별건수사’란 수사기관이 본래 수사 대상 사건(본건)에서 구속요건이나 증거 확보가 어려울 때, 별개의 경미한 사건을 빌미로 피의자를 압박해 진술이나 자백을 유도하는 수사 방식을 말한다.

 

형사소송법 제198조 제4항은 “수사기관은 합리적 근거 없이 별개의 사건을 부당하게 수사하거나 이를 통해 확보한 자료로 무관한 사건의 자백이나 진술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또한 같은 법 제308조의2는 “적법한 절차에 따르지 아니하고 수집한 증거는 증거로 할 수 없다”고 명시해 위법수집증거의 배제 원칙을 명확히 하고 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도 SNS를 통해 “판결의 당부를 떠나 법원의 검찰 수사에 대한 직접적 비판은 매우 이례적”이라며 “별건수사를 일종의 수사 공식처럼 남발해 온 검찰뿐 아니라 앞으로 수사를 담당할 모든 기관이 엄중히 새겨들어야 할 지적”이라고 밝혔다.

 

이어 “내년 출범할 새로운 형사사법체계에서 수사기관은 국민 인권을 최우선으로 하는 조직으로 출발해야 하며, 부당한 별건수사로 기본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제도적 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덧붙였다.

 

배희정 법률사무소 로유 변호사는 “현행법상 압수수색 과정에서 영장 범위를 벗어나 별건의 증거를 수집하는 행위는 증거능력이 무효화될 수 있다”며 “김건희 특검을 비롯해 강압 수사 논란이 제기된 사건들에서 이번 판결의 영향이 미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또 “별건이라는 개념 자체가 흑백논리로 나누기 어렵고 수사 현실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다”면서도 “법원의 엄격한 판단 기조가 이어질 경우 특검과 검찰 모두 수사 방식의 재정비가 불가피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