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빈 상자라도 마약으로 알고 수거하면 소지죄 성립”

 

대법원이 실제 마약이 들어있지 않은 상자를 마약이 들어있는 것으로 잘못 알고 수거한 이른바 ‘드라퍼’에게도 마약 소지죄가 성립한다고 판단했다.

 

피고인은 “실제 마약이 없는 빈 상자를 수거해갔다면 마약 소지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주장했지만 대법원은 실제 마약이 없던 상자이더라도 마약으로 알고 수거 했다면 처벌 대상이 된다고 보았다.

 

25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이숙연 대법관)는 마약 운반 역할을 담당하는 속칭 '드라퍼' 정 모 씨(22)에게 징역 3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마약류 불법거래 방지에 관한 특례법 제10조는 마약 범죄를 저지를 목적으로 실제로는 마약이 아닌 물건을 마약으로 인식하고 양도·양수·소지한 경우에도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하 벌금으로 처벌하도록 규정한다.

 

정 씨는 국제우편물 상자가 외관상 마약으로 오인될 수 없으므로 법이 규정한 ‘약물이나 그 밖의 물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또한 상자를 열어 내부에 마약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이상 소지 행위가 성립할 수 없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1, 2심 모두 정 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징역 3년을 선고했다. 대법원도 판단도 마찬가지였다.

 

대법원은 특례법이 처벌 대상을 ‘약물이나 그 밖의 물품’으로 정하고 있을 뿐, 형상·외관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마약 거래가 대부분 상자나 포장물 내부에 은밀히 숨겨진 상태로 이뤄지는 현실을 고려하면, 외관만으로 범죄 성립 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상자를 자신의 지배 영역에 둔 순간 이미 ‘소지’가 성립한다”며 “이후 상자를 열어 마약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사정은 이미 성립한 범죄를 뒤집을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실제 마약이 존재하지 않더라도 ‘마약이 있다고 믿고 수거한 행위’ 자체가 범행 가담에 해당한다”며 “이를 제재하지 않을 경우 마약 유통 차단을 위한 사전적 대응이 사실상 불가능해진다”고 강조했다.

 

박민규 법무법인 안팍 변호사는 “유죄가 인정된 이유는 특례법이 결과 발생 여부와 관계없이 ‘마약으로 인식한 채 범행을 시도한 행위’를 독립된 범죄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실제 마약을 손에 넣지 못했더라도 마약 유통 구조에 가담한 행위의 위험성을 중점적으로 평가한 판결”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