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뢰인 상황을 이해하는 것이 변호의 시작

형법 제22조 긴급피난 해당된 사건
음주 운전으로 처벌될 뻔한 것 막아
행동 너머 의도에 집중한 변호 펼처
변론 위해 기록 너머 상황을 살펴야

 

<더시사법률>을 구독해 주시는 분들의 편지를 읽다 보면, 유난히 자주 마주하게 되는 문장이 있다. “변호사님, 제 사건도 제대로 봐주셨다면 결과가 달라졌을까요?”라는 질문이다. 여기에는 ‘혹시 내가 놓친 것이 있었을까’, ‘그때 누군가 내 상황을 더 깊이 이해해 줬다면 어땠을까’ 하는 기대와 아쉬움이 녹아있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변호도 시작된다. 사건을 단순한 기록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현실과 맥락 속에서 들여다보는 일, 그것이야말로 변호인의 첫 번째 역할이기 때문이다.

 

최근 마주한 사건은 겉으로 보기엔 흔한 음주 운전 사건이었다. 사건 발생 당시 의뢰인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097%였다. 법정 기준을 넘긴 알코올 수치에 이미 기소까지 이뤄진 상태였다. 여기까지만 보면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전형적인 유죄 사례다.

 

그러나 사건의 면면을 자세히 파헤쳐 보니, 이 사건은 보통의 음주 운전 사건과는 결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다. 처음 의뢰인은 술을 마신 후 집에 돌아가기 위해 평소처럼 대리기사를 호출해 운전대를 맡겼다. 대리기사가 있었음에도 종내엔 주취자 본인이 음주 운전을 하게 된 것이다.

 

왜 그렇게 된 것일까? 문제는 차량이 도로 위를 달리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발생했다. 의뢰인과 대리기사 사이에 경로 문제로 언쟁이 생긴 것이다. 화가 난 대리기사는 돌연 도로 한복판에 차를 정차시키고 그대로 떠나버렸다.

 

차가 멈춘 곳은 양방향 교차가 불가능한 편도 1차선 도로 위로, 차량 한 대만 지나가도 꽉 차는 좁은 도로였다. 곧이어 뒤쪽에서 승용차 한 대가 진입을 시도했지만, 의뢰인의 차 때문에 길이 막혀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 빚어졌다.

 

블랙박스 영상에는 의뢰인이 조수석에서 내려 뒤의 차를 향해 손짓하며 “우회해서 가라”고 유도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그러나 통행 공간 자체가 너무 협소해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 순간 의뢰인의 머릿속에는 ‘이대로 두면 곧 사고가 나겠다’는 생각만 있었다고 한다.

 

깊은 밤, 좁은 도로 한복판을 가로막고 정차된 차량은 위험 요소 그 자체였다. 앞서 의뢰인의 차량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돌아간 차량까지 있었으니 상황을 빠르게 해결해야 한다는 압박감도 컸을 것이다.

 

결국 의뢰인은 망설이다가 운전석에 올랐다. 그가 차를 움직인 거리는 3m, 후행하는 차가 빠져나갈 만큼만이었다. 그런데 자리를 떠난 줄 알았던 대리기사가 근처에 숨어 이 장면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의뢰인을 음주 운전 혐의로 신고한 것이다. 

 

법은 원칙적으로 냉정해야 하지만, 상황에 대한 고려 없이 일률적으로 적용되지는 않는다. 기록은 단순했다. ‘술을 마신 상태에서 운전을 했으니 음주 운전이다’, 이 논리대로만 본다면 유죄가 명백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형사사건에는 언제나 기록에 담기지 않은 ‘현실의 층위’가 있다.

 

형법 제22조 긴급피난 조항에 따르면,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위난을 피하기 위해서 한 행위는 벌하지 않는다. 대리기사의 유기로 차량이 도로 한복판에 갑작스럽게 방치된 사정, 좁은 차로에서 발생할 수 있는 추돌 위험 등 사건의 요소를 고려하면 의뢰인의 행위는 긴급피난에 해당할 여지가 충분했다.

 

필자는 의뢰인 차량에 부착된 블랙박스를 3초 단위로 쪼개 분석했다. 의뢰인이 수신호, 우회 유도, 후방 확인 등 차량을 직접 움직이기 전에 할 수 있는 모든 행동을 먼저 시도했다는 정황이 블랙박스에 그대로 남아있었다.

 

필자는 해당 영상을 증거 자료로 법원에 제출했다. 또한 유사 사건에서 무죄가 선고된 하급심 판례들을 모두 찾아, 왜 이 사건이 형법상 긴급피난에 해당하는지 논리적으로 설명했다. 법원은 모든 사정을 종합해 의뢰인의 행위를 음주 운전이 아닌 ‘위험 회피’로 판단했고, 결국 무죄가 선고되었다. 수용자분들이 보내는 편지에는 종종 이런 문장이 적혀있다.

 

“변호사님, 제 행동만 보면 저는 나쁜 사람이 맞습니다. 하지만 그 상황을 설명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런 편지를 읽을 때마다 필자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답한다. ‘당신의 행동과 당신의 사람됨은 다를 수 있습니다. 그 차이를 설명하는 것이 바로 변호인의 역할입니다’.

 

음주 운전 사건에서 무죄가 나오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법원은 ‘그 순간, 그 사람이 어떤 상황에 놓여있었는가’를 중요하게 고려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