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강조해 온 ‘교정행정의 독립과 전문화’가 정작 장관 취임 이후의 정책 기조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정 장관은 국회의원 시절 교정청 신설 법안을 잇따라 대표 발의하며 독립 교정청 신설을 적극 추진했던 입장과 달리 최근 예산 구조조정 과정에서 교정 분야가 대폭 삭감되며 교정현장의 인권·안전 기반이 약화되고 있다는 비판이다.
전문가들은 “교정행정의 병목이 임계점에 도달한 상황에서의 정책 후퇴는 구조적 문제를 고착화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국회의원 시절 누구보다 적극적이던 교정청 신설론자
11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정 장관은 20·21대 국회에서 누구보다 교정행정 개혁에 적극적이었다.
2017년에는 교정공무원의 안전·복지를 위한 ‘교정공무원 보건안전·복지 기본법’을 추진했고, 2020년에는 법무부 소속 교정본부를 외청 ‘교정청’으로 승격하는 내용의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까지 상정시켰다.
당시 정 장관은 “교정본부는 57개 소속기관과 1만6000여 명이 근무하는 거대 조직임에도 정책 자율성이 부족해 전문성 강화가 어렵다”며 “독립 교정청을 통해 재범방지 시스템과 개별 관리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반복된 논의 좌초…“가장 큰 벽은 법무부 반대”
교정청 신설 논의는 1990년대 과밀수용·인권침해 문제가 사회적 쟁점으로 부상하면서 본격화됐다. 법조계는 오랫동안 법무부의 ‘검찰 중심 구조’ 아래에서 교정정책이 후순위로 밀려왔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해 왔다.
재범방지·사회복귀 기능이 미흡했던 이유도 교정행정이 본부 조직 안에 묶여 정책 자율성을 확보하지 못한 구조 때문이라는 비판이 이어졌다.
2005년 국회 귀빈식당에서 열린 ‘교정행정 및 조직 혁신 입법토론회’에서는 교정공무원이 직접 초안을 만든 법안이 공개됐고 법사위 축조심사까지 마친 상태였다.
여당 원내총무였던 정세균 의원과 현·전직 교정공무원들이 참여하며 조직 내부 기대감도 높았다. 그러나 토론회는 허무하게 끝났다. 사회자가 과거 성과를 장시간 소개하는 동안 행정자치부·기획예산처 관계자들은 “중요한 법이라면 본부가 행정입법으로 추진했어야 한다”고 지적했고, 정작 현장 교정공무원이나 전문가들은 발언조차 하지 못했다.
당시 참석한 한 교도관은 “가장 가능성이 높았던 2005년 실패의 원인은 내부 반대였다”며 “교정본부가 독립 의지가 없다는 사실이 확인된 자리였다”고 회고했다.
법무부 정책 결정 라인 반대 역시 논의가 번번이 좌초된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교정본부는 법무부 전체 공무원 정원의 71.6%(약 1만6300명), 전체 예산의 43.8%를 차지하는 초대형 조직이다.
교정본부가 외청으로 분리될 경우 법무부는 “껍데기만 남는다”는 인식이 역대 장관들 사이에서 반복돼 왔고, 이 같은 이해관계는 17대 국회 이후 교정청 법안이 단 한 번도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한 배경으로 지적된다.
교정행정 병목,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수준”
최근 독립 필요성이 다시 제기되는 이유는 교정행정의 병목이 더 이상 방치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2025년 교정본부장 장기 공석 사태, 전국 평균 120%대 과밀률, 인력난과 사고 증가 등은 기존 조직 구조가 정상적으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법원도 여러 판결에서 1인당 2㎡ 미만 수용을 “인간의 존엄을 침해하는 위법한 국가행위”라고 판단했다. 서울중앙지법과 수원지법 등은 예산 부족과 시설 확충의 어려움을 인정하면서도 “국가의 책임은 면할 수 없다”고 지적하며 구조적 문제를 사법적으로 재확인했다.
교정공무원의 법적 지위 문제도 독립 필요성을 뒷받침한다. 폭력·자해 위험군, 마약·정신질환 수용자 등 고위험 대상자를 관리하는 특수직임에도 교정공무원은 특정직이 아닌 일반직으로 분류된다.
순직 시 국립묘지 안장 대상에서도 제외되고, 안전장비·위험보상 체계 역시 경찰·소방보다 열악하다.
2016년 헌법재판소는 “교정직공무원은 법적으로는 일반직이지만 업무 특성과 승진체계가 다른 일반직·경찰공무원과 달라 동일한 비교집단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판시했다.(2016헌마930)
교정직이 일반직으로 분류돼 있으면서도 실제 직무와 위험도는 특정직에 가까운 제도적 괴리를 드러낸 판례다. 이 때문에 국회와 전문가들은 교정청 독립은 ‘교정공무원법’ 제정과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한다.
미국·영국·호주 등 주요 국가가 모두 독립 교정청과 교정직 특별법을 함께 운영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취임 후 예산은 오히려 대폭 삭감…현장 “개혁은 뒷걸음질”
정성호 장관 취임 이후 교정행정은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는 평가가 곳곳에서 나온다.
국회예산정책처가 10월 31일 발표한 2026년도 예산안 분석에 따르면, 법무부 지출 구조조정 감액 1217억 원 중 586억 원이 교정 분야에서 삭감됐다.
수용동 개보수 예산은 278억 원에서 32억 원으로, 보안구역 장비 예산은 87억 원에서 34억 원으로 줄었다. 교정교화시설 개보수·근무환경 개선 예산은 전액 삭제됐다. 노후 생활실·직업훈련장·치료감호 병동 개선 예산도 대폭 축소됐다. 이는 국가인권위원회가 과밀수용 문제를 이유로 시설 개선을 권고한 것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일각에서는 교정청 독립에 대한 신중론도 존재한다. 수용자에게 투표권이 없고, 교정권이 국민의 기본권을 직접 제한하는 강력한 국가권력이라는 점에서 대형 외청이 견제 없이 만들어지면 폐쇄성과 인권침해 우려가 커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현행 구조가 이미 반복적 인권침해를 낳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현 체계를 유지하는 것이 더 큰 위험이라는 평가도 힘을 얻고 있다. 법원은 지속적으로 과밀수용을 “위법한 국가행위”로 판단해 왔고 시설노후·인력난 등 구조적 병목은 개선되지 않은 채 악화되고 있다.
법원 역시 이를 위법한 국가행위로 판단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현행 체계 유지가 더 큰 위험이라는 평가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곽준호 법무법인 청 변호사는 “정 장관은 국회 시절 누구보다 교정청 독립을 강조했던 정치인이지만, 취임 이후 예산 감액 등으로 현장의 체감도는 오히려 악화됐다는 평가가 있다”며 “교정행정의 병목이 누적된 만큼 정책적 보완이 뒤따라야 한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