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A 씨는 IQ 70 수준의 경계선 지능을 가졌다. 검찰은 반복적인 유도성 질문과 자백 강요 끝에 A 씨로부터 범행을 시인하는 진술을 받아냈다. 그러나 재심 재판 과정에서 이 자백이 언제, 어떤 경위로 시작됐는지조차 명확히 입증되지 않았다. 수사기관이 주장한 자백의 출발점과 형성 과정은 기록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
아버지 백 씨 역시 포승줄에 묶인 채 장기간 조사를 받았다. 그는 일관되게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딸이 모든 것을 털어놨다”는 수사기관의 말에 결국 범행을 인정하는 취지의 진술을 하기에 이르렀다. 한글을 제대로 쓰지 못하던 그는 오탈자 하나 없는 자백서를 제출했다.
조서에는 “청산염을 막걸리에 타기로 한 것은 본인의 생각”이라는 자백 진술이 적혀 있었지만, 실제 조사 과정에서 그는 수차례 “내 생각이 아니다”라고 답한 것으로 드러났다.
강요된 자백은 재판의 핵심 증거가 됐다. 1심은 무죄를 선고했지만 항소심과 상고심은 자백의 임의성을 인정하며 판단을 뒤집었다. 아버지는 무기징역, 딸은 징역 20년을 선고받았다.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살인범으로 낙인찍힌 16년의 시간이 그렇게 시작됐다.
사건의 흐름이 바뀐 것은 재심 전문 변호사 박준영을 만나면서부터였다. 그는 대형 로펌처럼 사건을 나눠 맡기지 않는다. 모든 사건을 혼자 책임진다. “재심 사건은 누구에게 넘길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는 것이 그의 원칙이다.
기록 싸움인 재심에서 그는 복사본을 신뢰하지 않는다. 사건을 맡으면 가장 먼저 검찰청으로 향해 수사 기록 원본을 직접 확인한다. 종이의 질감, 조서의 순서, 필체의 변화, 반복된 질문의 흔적, 빠져 있는 시간대까지 살핀다. 그 속에서 당시 수사의 공기를 읽어낸다.
순천 사건 재심 재판부는 “구체적 경위를 확인할 수 없는 수사관 면담 이후 자백이 이뤄졌다”며 자백의 신빙성을 부정했다. 청산염으로 범행을 했다는 과학적 증거도, 명확한 범행 동기도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결국 상고를 포기했고 사건은 16년 만에 무죄로 확정됐다.
현재의 형사사법 구조에서 자백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여전히 블랙박스에 가깝다. 전면적인 영상 녹화가 의무화돼 있지 않은 조사, 조사 종료 후 작성되는 조서 중심의 기록 방식, 수사 단계에서 형식화된 방어권 보장은 2009년과 본질적으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경계선 지능인이나 문해력이 낮은 피의자에게는 여전히 치명적인 구조다.
이 같은 구조적 문제는 최근 재심이 진행 중인 다른 사건에서도 반복적으로 지적되고 있다. 경남 창원에서 발생한 택시 강도살인 사건의 피고인 아크말 씨 역시 재심을 청구하며 수사와 재판 과정 전반의 절차적 문제를 제기했다. 아크말 씨 측은 당시 수사가 피고인의 사건과 직접 관련 없는 진술에 의존했고, 조사와 재판 과정에서 통·번역이 충분히 제공되지 않아 방어권이 온전히 보장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어 사용 능력이 제한된 외국인 피고인에게 필요한 통역 절차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자백이 확보되고 기소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문제는 재심이 ‘사후적 구제’에 그친다는 점이다. 억울함을 바로잡는 데 10년, 20년이 걸리고 그 사이 개인의 삶은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붕괴된다. 국가 책임을 묻는 절차 역시 제한적이다.
박준영 변호사가 무죄를 끌어낸 사건은 삼례 나라슈퍼 강도치사 사건,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 낙동강변 살인사건, 김신혜 존속살해 사건 등 한국 사회를 뒤흔든 굵직한 오판 사건들이다. 그는 재산범죄는 맡지 않는다. 대신 아무도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 사람, 언어와 제도 앞에서 가장 취약한 사람을 선택한다.
박 변호사에게 재심은 단순히 판결을 바꾸는 절차가 아니다. 국가 권력이 한 개인의 삶을 어떻게 파괴할 수 있는지를 드러내는 과정이다.
“끝났다는 말은 국가가 한 것이지, 진실이 한 말은 아니다.” 확정판결 앞에서도 멈추지 않는 그의 신념이다. 현재 진행 중인 재심 사건만 10여 건에 이른다. 박준영 변호사의 싸움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기록이 말해주듯, 또 하나의 사건이 뒤집힐 가능성 역시 결코 낮지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