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호소를 ‘반성 부족’으로 단정 안돼”…대법, 지적장애 소년 사건 파기환송

“‘정신장애 주장’ 이유로 형 가중은 위법”
소년·장애인 사건서 재판권 보장 기준 강조

 

지적장애가 있는 소년이 형사재판 과정에서 자신의 정신적 장애를 주장했다는 이유만으로 ‘반성하지 않는다’고 판단해 형량을 높인 항소심 판결이 대법원에서 파기됐다.

 

대법원은 장애인이 재판에서 자신의 장애나 치료 필요성을 주장하는 행위를 곧바로 반성 부족으로 평가해 양형에 불리하게 반영하는 것은 허용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는 살인미수 혐의로 기소된 A씨(18)에게 징역 장기 9년·단기 6년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수원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사건 기록에 따르면 A씨는 2024년 8월 자신을 만나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같은 학교 여학생을 살해하려다 미수에 그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A씨는 범행 전 망치와 흉기 등을 준비해 피해자를 기다렸다가 공격한 것으로 조사됐다.

 

A씨는 1심 재판에서 범행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자신의 정신적 장애가 범행에 영향을 미쳤다며 심신미약을 주장했다. 1심 재판부는 심신미약 주장을 받아들이지는 않았지만 피고인이 소년이고 정신적 어려움이 범행 동기에 일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며 징역 장기 8년·단기 5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항소심의 판단은 달랐다. 수원고등법원은 제1회 공판기일에서 변론을 종결한 뒤 검사의 항소를 받아들여 1심 판결을 파기하고 형량을 장기 9년·단기 6년으로 높였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자신의 정신의학적 병력을 핑계로 책임을 경감하려는 모습만 보이고 있어 자신의 잘못을 진지하게 반성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판단했다.

 

대법원 심리의 쟁점은 피고인이 재판 과정에서 자신의 정신적 장애를 주장한 행위를 ‘반성하지 않는다’는 사정으로 평가해 형을 가중할 수 있는지 여부였다.

 

대법원은 이러한 판단이 원칙적으로 허용될 수 없다고 봤다.

 

대법원은 “장애인인 피고인은 형사사법절차에서 자신의 장애를 밝히고 관련 법령에 근거한 조력을 받아 충분한 방어행위를 할 권리가 있다”며 “정신적 장애를 밝히거나 이를 이유로 심신장애 또는 치료 필요성을 주장하는 행위를 ‘죄를 반성하지 않는다’는 인격적 비난 요소로 삼아 가중적 양형 조건으로 평가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허용될 수 없다”고 밝혔다.

 

또 다른 쟁점은 소년이자 장애인인 피고인 사건에서 법원이 어느 정도 충실한 심리를 해야 하는지였다.

 

대법원은 “정신적 장애가 있는 소년의 형사사건을 심리하는 법원으로서는 장애의 내용과 정도, 범행에 미친 영향, 재범 위험성 및 치료 필요성 등에 관해 조사나 감정을 실시하는 등 구체적 사정을 충분히 심리할 필요가 있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항소심이 이러한 절차를 충분히 거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항소심이 단 한 차례 공판기일 후 변론을 종결한 뒤 피고인의 정신적 장애 관련 주장을 양형 가중 사유로 삼아 형을 높인 것은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잘못이라는 것이다.

 

대법원은 “원심은 피고인의 장애 내용과 정도, 치료 필요성 등에 대한 충분한 심리 없이 형을 가중했다”며 “이는 장애인인 소년에 대한 형사사건 심리 방법과 양형 판단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판결은 형사재판에서 피고인의 반성 여부가 양형 판단 요소가 될 수 있더라도, 장애인이 자신의 장애나 치료 필요성을 주장하는 행위 자체를 곧바로 반성 부족으로 평가해 형을 가중하는 것은 허용되기 어렵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법조계에서는 특히 항소심이 사실상 한 차례 공판만 진행한 뒤 형량을 높인 점도 이번 파기 판결의 배경 중 하나로 보고 있다.

 

법률사무소 로유의 배희정 변호사는 “장애가 있는 소년 사건에서는 재범 위험성이나 치료 필요성 등에 대한 조사와 감정이 중요하다”며 “이러한 절차 없이 형을 가중한 점이 문제로 지적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 판결은 장애인의 방어권과 절차적 권리 보장을 강조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