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무죄, 그 희망의 증거를 찾아서

피해자 진술의 모순과 의례적 반응
객관적 증거 속 사건 진실 찾아내
사소한 순간이 ‘무죄’를 입증하기도
억울하다면 포기하지 말고 대응해야

 

어둠이 짙게 깔린 새벽, 술기운이 섞인 대화와 웃음소리가 오가던 거리의 벤치. 바로 그곳에서 A씨의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기 시작했다. 술에 취해 옆자리에 앉은 여성과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다 여성의 다리에 붙은 이물질을 발견하고 무심코 손을 뻗어 털어주던 아주 짧은 순간, A씨의 행동은 ‘강제추행’이라는 주홍글씨가 되어 돌아왔다.

 

이 사건을 처음 맡았을 때의 막막함이 아직도 생생하다. 의뢰인은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성범죄 사건에서 ‘피해자의 진술’이 갖는 무게는 실로 거대하다. 수사기관은 피해자의 진술을 근거로 그를 성범죄자로 낙인찍었고 검찰은 그에게 유죄의 굴레를 씌우려 했다.

 

모든 것이 불리해 보였다. 자칫하면 한순간의 오해로 전과자가 될 위기였다. 하지만 형사재판의 대원칙은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이다. 검사가 제시하는 증거가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만큼 명백하지 않다면 유죄를 선고할 수 없다.

 

이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피고인의 권리이자 우리 변호인들이 기댈 수 있는 마지막 보루다. 우리는 이 원칙에 희망을 걸고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무너뜨리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하기로 했다.

 

우리가 가장 먼저 파고든 것은 피해자 진술의 ‘모순’이었다. 피해자는 처음 경찰조사에서는 “종아리에서 허벅지 사이를 더듬었다”라고 했다가 이후에는 “발목부터 무릎 위 허벅지까지 훑었다”고 하는 등 접촉 부위에 대한 진술을 계속 바꿨다.

 

심지어 법정에서는 추행당한 다리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바뀌기도 했다. 범죄의 핵심을 이루는 ‘추행 부위’에 대한 진술이 이렇게 오락가락한다는 것은 그 기억이 명확하지 않거나 과장되었을 가능성을 강력하게 시사하는 지점이었다.

 

다음으로 우리는 ‘객관적 증거’와의 불일치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피해자는 접촉 시간이 ‘4~5초’에 달했다고 주장했지만 우리가 확보한 CCTV 영상에서 피고인의 신체 접촉 시간은 불과 ‘2초’ 남짓이었다. 이 짧은 시간은 성적인 의도를 갖고 음미하듯 훑었다기보다 무언가를 ‘툭’ 털어내는 행위에 가깝다는 우리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증거가 되었다.

 

피해자의 ‘의례적인 반응’ 역시 중요한 단서였다. 피해자는 성추행을 당한 직후라고 보기 어려울 만큼 침착했다. 피고인에게 즉시 항의하거나 자리를 피하지 않았고 오히려 짧게 인사를 나누는 듯한 모습까지 보인 뒤에야 일어났다.

 

성적 수치심과 혐오감을 느꼈다면 보였을 통상적인 반응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는 피고인의 행위가 불쾌감을 주었을지는 몰라도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추행’에 이르지 않았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사건 전후의 ‘정황’을 꼼꼼하게 재구성했다. 피고인은 범행 후 도주하지 않고 바로 옆 공원에서 일행을 기다렸다. 심야라도 유동인구가 있는 공개된 장소와 일행이 바로 근처에 있는 상황에서 성범죄를 저지른다는 것은 상식과 경험칙에 반하는 일이었다.

 

우리는 이 모든 조각을 모아 법정에서 치열하게 다투었다. 그리고 마침내 재판부는 우리의 손을 들어주었다. 판결문에는 우리가 주장했던 내용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피해자 진술의 일관성 부족’, ‘객관적 증거와의 배치’, ‘행위 시간 및 태양에 비추어 추행의 고의를 인정하기 어려움’ 등. 재판부는 검사의 증거만으로는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범죄가 증명되지 않았다고 명시하며 의뢰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피고인은 무죄”라는 주문이 울려 퍼지던 그 순간의 벅참은 변호사로서 느낀 가장 큰 보람이었다. 이 사건은 우리에게 분 명한 메시지를 준다. 억울하다면,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자신의 사건 기록 속에 진실의 파편이 숨어 있을 수 있다. 고소인의 진술에 모순은 없는지, 나의 주장과 일치하는 객관적 증거는 없는지, 사소하다고 여겼던 모든 순간을 다시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그 안에 당신의 무죄를 입증할 결정적 열쇠가 있을지 모른다. 희망은 가장 절망적인 순간에 피어나는 꽃과 같다. 모두가 등을 돌릴 때 나는 의뢰인의 손을 잡고 캄캄한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을 찾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