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때로, 가장 안전해 보이는 얼굴에 속는다. 말끔한 옷차림, 넉살 좋은 말투에 경계심을 무너뜨리고 그 틈으로 폭력이 파고들었다.
연쇄살인마로 알려진 그는 흉측한 괴물의 얼굴이 아니라 흔히 “호감형”이라 불리는 인상으로 피해자들에게 다가갔다.
2005년 10월 30일 새벽, 경기도 안산의 한 다세대주택 반지하에 화재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대가 불길을 잡았지만 안방에서는 노모와 딸이 숨진 채 발견됐다. 작은방에서 어린 아들과 함께 자고 있던 남편 강호순은 연기에 눈을 떠 방범창을 뜯고 탈출했다.
이상한 점은 안방은 크게 탔지만 강씨가 있던 방은 비교적 온전했고 부상도 크지 않았다. 무엇보다 아내와 장모가 있던 방을 향해 ‘사람이 있다’는 외침이나 구조 시도가 뚜렷하지 않았다.
검찰은 강호순이 과거에도 보험금을 둘러싼 화재 사고가 반복됐다는 정황을 확인했고 사망보험을 집중적으로 가입한 시점과 방식도 들여다봤다. 장례 직후 보험사에 전화를 걸어 사망보험금 규모를 확인하는 녹취까지 확보됐다.
불길 속에서 숨진 두 사람의 죽음이 ‘사고’가 아니라 ‘방화’였다는 결론으로 사건은 흘러갔다. 그리고 그 이름은 훗날 경기 서남부를 공포로 몰아넣은 연쇄살인범 강호순이었다.
2006년 무렵, 경기도 남부 일대에서는 여성 실종 사건이 잇따라 발생했다. 버스정류장 인근이나 귀가 동선에서 흔적 없이 사라졌고 휴대전화는 배터리가 분리된 채 발견되거나 아예 꺼진 상태였다. 범행을 입증할 직접 증거는 없었지만 실종 장소와 방식이 반복되면서 언론은 이를 ‘연쇄 실종’이라 불렀다.
그리고 그 일곱 번째 사건이 군포에서 발생했다. 여대생 한 명이 귀가 중 사라졌고, 이후 피해자의 카드가 사용된 정황이 포착됐다.
카드를 사용한 이는 강호순이었다. 그는 여대생을 살해한 뒤 현금을 인출하려다 CCTV에 모습이 찍혔고 이를 경찰이 눈치채자 증거를 없애겠다며 자신과 모친 명의의 차량을 잇따라 불태웠다.
그러나 이 행동은 오히려 수사선상에 그를 선명하게 드러냈다. 차량 동선과 범죄 패턴을 분석하던 경찰은 그를 유력 용의자로 특정했고, 결국 강호순은 체포됐다. 처음 붙잡힐 당시 그는 얼굴을 가린 채 모습을 숨겼지만 사건의 중대성과 여론의 흐름 속에서 신상은 곧 공개됐다.
이 사건은 이후 강력범죄 피의자의 신상 공개 제도가 논의·정비되는 계기 중 하나가 됐다.
강호순은 체포 이후에도 “증거를 가져오라”며 범행을 부인했다. 그러나 은행 CCTV에 남은 모습과 피해자에게서 검출된 DNA가 차례로 제시되면서 더는 부정할 수 없게 됐다.
그 과정에서 수면 아래에 있던 그의 과거 행적과 범죄들이 하나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는 외모만 놓고 보면 ‘위험해 보이는 사람’과는 거리가 있었다. 여러 차례 결혼했고 주변에서는 말수가 적당하고 싹싹한 인상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실제로 한 피해자는 여섯 시간 넘게 차량에 감금됐다가 살아나 “첫인상은 순박한 축산업자 같았다”고 증언했다. 동석했던 자리에서 눈에 띄게 잘생긴 사람으로 기억됐다는 말도 나왔다.
그러나 주변 지인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그는 여성 관계에 있어서는 전혀 다른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멀쩡하게 일하며 사는 건 힘들고, 여자를 속이는 게 제일 쉽다”는 말을 공공연히 했다는 이야기와 결혼한 상태에서도 소개팅을 요구하며 여러 여성을 만났다는 증언이 이어졌다.
길거리에서 차를 세워 모르는 여성을 태우는 일도 잦았고 이를 성공담처럼 떠벌렸다는 말까지 나왔다.
이런 행태는 그가 사람을 ‘관계의 대상’이 아니라 ‘소유하고 통제할 대상’으로 인식했음을 보여준다. 범죄심리학자들이 말하는 사이코패스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그는 호감형 외모와 말솜씨를 무기로 상대의 경계를 무너뜨렸고, 그 뒤에 폭력을 숨겼다.
강호순의 범행은 이미 2005년부터 시작돼 있었다. 그는 네 번째 아내와 장모 앞으로 거액의 생명보험을 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들을 방화로 살해해 약 4억 원의 보험금을 챙겼다.
이후 유흥업소를 전전하고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전국을 떠돌았는데, 이 시기가 연쇄살인의 전조였다는 분석이 뒤따랐다. 그가 스스로 자백한 공식적인 첫 살인은 2006년 9월 강원도 정선에서 발생했다.
출근길이던 군청 여직원을 차량으로 유인해 성폭행한 뒤 살해하고, 시신을 계곡에 유기했다. 이 사건은 뒤늦게 수사선상에서 드러났고, 이후 벌어진 연쇄 범행의 출발점이었다.
그 뒤 범행은 점점 빈번해졌다. 2006년 말부터 2007년 초까지 불과 한 달 남짓한 기간 동안, 군포·수원·화성·안양 일대에서 여성들이 연달아 사라졌다. 노래방 도우미, 회사원, 주부, 대학생 등 피해자의 직업과 나이는 달랐지만, 범행 방식은 놀라울 만큼 닮아 있었다.
추운 겨울, 버스가 뜸한 정류장에서 접근해 “태워주겠다”며 차량에 태운 뒤, 성폭행하고 목을 졸라 살해했다. 이후 시신은 야산이나 공터에 암매장됐다.
강호순은 범행 과정에서도 치밀함을 보였다. 자신의 혈흔이 남지 않도록 피해자의 손톱을 잘랐고, 범행에 사용한 차량은 아예 불태웠다. 차량 앞좌석에는 개와 함께 찍은 사진을 두어 ‘선량한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연출했다. 이런 수법은 해외의 성적 연쇄살인범들과도 유사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의 신상이 공개되자 강호순은 “내 얼굴이 공개되면 자식들은 어쩌느냐”고 항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수사 과정과 주변 증언을 종합하면, 실제로 그는 가족에게 큰 관심을 두지 않았던 인물로 보인다. 용돈만 주고 각자 알아서 지내게 했고 조사 중에도 가족에게 연락할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음에도 이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다만 프로파일러 권일용은 “강호순에게 아들은 심리적 약점이었다”고 분석했고, 실제로 아들과의 면회 이후 추가 자백이 나왔다는 점에서 그의 가족 관련 발언이 어디까지 진심이었는지는 여전히 논쟁의 여지가 있다.
현재까지 확인된 강호순의 희생자는 방화 사건을 제외하고도 최소 8명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의 범행 도구로 지목된 곡괭이에서는 이미 밝혀진 피해자들과 당시 실종자 데이터베이스와도 일치하지 않는 여성 DNA 두 개가 검출됐다. 상당수 실종자의 DNA가 확보되지 않았던 탓에 대조는 실패했고 그 피해자의 정체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특히 일부 피해자가 노래방 도우미 등 사회적 연결망이 취약한 직업군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공식 기록에 남지 않은 범행이 더 있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강호순은 증거가 제시될 때만 범행을 인정하는 태도를 일관되게 보였다. 사형이 확정된 이후에도 곡괭이 DNA와 관련된 여죄에 대해서는 끝까지 침묵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그가 끝까지 숨기려 한 피해자가, 자신의 범행 패턴과 다르거나 사회적 파장이 더 큰 대상일 가능성도 제기한다. 그러나 그 진실은 지금도 강호순 본인만 알고 있다.
연쇄살인은 법정 판결로 끝나지만, 실종과 미제의 공백은 남는다. 이름 없이 사라진 피해자가 있다면, 그 사건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강호순 사건이 지금까지도 반복해서 언급되는 이유는 밝혀진 잔혹함보다 밝혀지지 않은 여백이 더 크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