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폭행 의심해 항의한 학부모, ‘정서적 학대 아냐’…2심도 무죄

학부모 항의 어디까지 처벌 가능할까
정서적 학대 판단 기준 둘러싼 법적 쟁점

 

자녀를 때렸다고 의심해 다른 학생과 학부모를 찾아가 강하게 항의한 행동이 아동복지법상 ‘정서적 학대’에 해당할까.

 

자신의 딸을 때렸다고 의심해 같은 학교 학생과 학부모를 찾아가 항의한 30대 학부모가 아동학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지만 항소심에서도 무죄가 유지됐다. 법원은 해당 행동이 부적절할 수는 있으나 형사처벌 대상인 정서적 학대에 해당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31일 법조계에 따르면 춘천지방법원 제2형사부(재판장 김성래 부장판사)는 아동복지법 위반(아동학대) 혐의로 기소된 A씨(39·여)에 대해 검사가 제기한 항소를 기각하고 1심과 동일하게 무죄를 선고했다.이번 사건의 핵심 쟁점은 아동복지법상 ‘정서적 학대’의 판단 기준이었다.

 

아동복지법 제17조는 누구든지 아동의 정신건강 및 발달에 해를 끼치는 정서적 학대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단순히 큰소리를 치거나 불쾌감을 주는 정도만으로 곧바로 정서적 학대가 성립한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 법원의 입장이다.

 

대법원도 정서적 학대 여부를 판단할 때 다양한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행위자와 아동의 관계 ▲행위 당시의 태도 ▲아동의 연령과 발달 상태 ▲행위 이후 아동의 반응과 상태 변화 ▲행위의 정도와 경위 ▲반복성이나 지속 기간 ▲정상적 발달에 미치는 영향 등이 그 판단 요소로 제시된다.

 

실제로 2020년 대법원은 어린이집 보육교사가 4세 아동을 약 78㎝ 높이의 교구장 위에 올려둔 채 흔드는 등 약 40분 동안 앉혀 둔 사건에서 공포감과 정신적 고통을 유발했다는 이유로 정서적 학대를 인정했다.(대법원 선고 2017도5769).

 

반면 일회적 언행이거나 아동의 정신건강이나 발달에 실질적 위험이 발생했다고 보기 어려운 경우에는 무죄가 선고된 사례도 적지 않다. 법원은 정서적 학대 개념을 지나치게 넓게 해석할 경우 일상적인 지도나 훈육까지 형사처벌 대상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점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이 사건은 자녀 간 폭행 여부를 둘러싼 항의 과정에서 발생했다.

 

A씨는 지난해 4월 11일 자신의 딸(9)이 학교에서 맞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같은 학교에 다니는 B군(11)과 그의 어머니를 찾아갔다. A씨는 “너 때렸어 안 때렸어. 맞은 사람만 있고 때린 사람은 없냐”라고 말하며 약 10분 동안 큰소리로 항의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A씨의 언행이 피해 아동의 정신건강이나 발달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정서적 학대에 해당한다고 보고 기소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당시 상황이 담긴 영상을 검토한 결과 A씨의 발언 대부분이 B군이 아니라 보호자인 어머니를 향해 이뤄졌다고 판단했다. B군에게 직접 말을 건 장면은 제한적이었다는 점도 고려됐다.

 

또 사건 당시 상황이 폭행 여부를 확인하는 과정이었고 표현 역시 사회통념상 현저히 벗어난 수준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봤다.

 

1심 재판부는 “공소사실에 적시된 정서적 학대 행위는 영상 내용과 배치되는 부분이 있으며 이를 뒤집을 만한 객관적이고 신빙성 있는 증거도 부족하다”며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범죄사실이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검사는 사실관계 판단을 잘못했고 법리를 오해했다며 항소했지만 항소심 재판부 역시 원심 판단을 유지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의 언행이 감정적으로 보일 수는 있으나 이를 아동의 정신적 발달에 해를 끼치는 정서적 학대 행위로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법률사무소 로유 배희정 변호사는 “학부모가 감정적으로 항의하거나 강하게 문제를 제기했다고 해서 곧바로 형사처벌 대상인 아동학대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며 “정서적 학대가 인정되려면 단순한 불쾌감이나 일회적 언행을 넘어 아동의 정신적 발달에 중대한 악영향이 발생했거나 그에 준하는 위험이 명확히 드러나야 한다는 점을 법원이 다시 확인한 판결”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