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과 배임 사이, 재산 범죄의 ‘한 끗’을 찾아서

감정적 호소로는 재판부 설득 어려워
‘불법영득의사’가 없었음을 증명해야

방대한 숫자 속에 사건의 진실 있어
항소심에선 전략적인 대응이 필수적

 

“변호사님, 저는 회사를 살리려고 한 일입니다. 제 주머니로 들어온 돈은 한 푼도 없습니다.”
접견실에서 마주하는 기업인이나 자금 담당 피고인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다. 회사가 무너질 위기에서 급하게 결정을 내렸고, 그 과정에서 결과적으로 문제가 되었을 뿐이라는 항변이다.

 

피고인들은 하나같이 억울함을 호소한다. 그러나 그들의 절박한 심정과 달리, 검찰의 공소장에는 ‘업무상 횡령’ 혹은 ‘업무상 배임’이라는 무거운 죄명이 선명하게 적혀있다. 그리고 그 한 줄의 죄명은 1심 법정에서 실형이라는 결과로 이어지고, 결국 구치소의 차가운 공기 속으로 사람을 밀어 넣는다.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난 뒤 피고인들이 가장 먼저 하는 질문 역시 비슷하다. “이제 끝난 건가요?” 그러나 이들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체념이 아니라 사건을 처음부터 다시 바라보는 냉정한 시선이다. 감정이 아니라 구조를, 억울함이 아니라 논리를 준비해야 할 시점이다.

 

재산 범죄 사건에서 가장 먼저 넘어야 할 벽은 ‘불법영득의사’라는 보이지 않는 마음의 문제다. 횡령과 배임을 가르는 핵심은 단순하지 않다. 나를 위해 돈을 썼는지, 회사의 이익을 위한다는 명목이었는지, 회사에 손해가 발생할 것을 알면서도 위험한 결정을 강행했는지와 같은 주관적 요소가 판단의 중심에 놓인다.

 

하지만 수사기관은 결과론적인 숫자로만 피고인을 심판하려 한다. 기록은 수사기관의 관점에서 ‘만들어진’ 텍스트이기 때문이다. 변호인으로서 내가 찾는 ‘1%의 진실’은 바로 이 숫자의 이면에 있다.

 

자금이 움직이던 당시 회사가 처한 경영상 위기, 선택 가능한 대안이 있었는지 여부, 피고인이 어떤 정보를 가지고 어떤 판단을 내렸는지가 핵심이다.

 

단순히 “억울하다”, “사적인 유용은 없었다”는 감정적인 호소만으로는 재판부를 설득할 수 없다. 그래서 재산 범죄 사건에서는 사건의 전체 지도를 다시 그리는 작업이 필요하다.

 

수천 페이지에 달하는 금융 거래 내역을 시간순으로 정리하고, 이사회 회의록과 내부 보고서, 당시 오갔던 메시지와 이메일을 하나씩 대조한다. 특정 거래 하나만 떼어놓고 보면 의심스러워 보일 수 있지만, 전체 흐름 속에 놓았을 때 비로소 그 성격이 드러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법조계에는 “사건의 정답은 기록에 있다”는 말이 있다. 나는 그 말이 절반만 맞다고 생각한다. 기록은 분명 중요하다. 기록은 배신하지 않는다. 그러나 기록만으로는 부족하다. 기록에는 늘 공백이 있고, 그 빈자리를 메우는 것은 오직 피고인 본인의 생생한 설명과 당시의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재현이다.

 

내가 매주 월요일마다 구치소를 찾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접견실에서 마주 앉아 눈을 맞추고, 같은 이야기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듣는다. 처음에는 감정으로 가득 찬 진술이지만, 시간을 두고 정리하다 보면 그 안에서 중요한 단서가 드러난다.

 

수사기록에는 없지만 실제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쳤던 요소들, 당시에는 당연하다고 여겼지만 지금에 와서야 설명이 필요한 사정들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낸다. 과거 내가 맡았던 한 조세 및 재산 범죄 사건에서도 1심은 파편적인 자료에 의존해 피고인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항소심에서 우리는 접근 방식을 완전히 바꿨다. 2년치 계좌 내역을 전수 조사하고, 모든 현금 흐름을 표로 정리해 자금의 출처와 사용처를 일일이 연결했다. 이를 통해 ‘사적 유용이 없었음’을 치밀하게 입증했고 그때 비로소 재판부의 공기가 달라졌다.

 

이곳은 패배를 받아들이는 공간이 아니라 반격의 지도를 그려야 하는 출발점이다. 재산 범죄는 감정 싸움이 아니라 복잡한 법리와 방대한 숫자, 그리고 인내의 싸움이다. 안 된다고 포기하기보다는 기록 속에 숨겨진 단 하나의 증거를 찾기 위해 서류를 다시 들춰 봐야 한다.

 

이 과정에서는 변호사와 함께 범죄 가담 경위, 의사결정 구조, 실질적인 피해 회복 가능성까지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전략 없이 대응하는 항소는 의미가 없지만, 전략적으로 준비된 항소는 판결의 방향을 바꿀 수 있다.


오늘도 나는 누군가의 영혼을 대리한다는 마음으로 밤을 지새운다. 피고인의 절실한 목소리를 법의 언어로 번역하는 일이 내 역할이기 때문이다. 진실은 결코 스스로 드러나지 않는다. 오직 포기하지 않는 자의 손길에 의해, 그리고 치밀한 준비를 통해서만 증명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