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변호사님, 안녕하세요. 수용 생활 중 재판을 준비하는 분들 사이에서, “자유심증주의라는 게 있어서 판사가 증거를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따라 무죄가 나올 수도 있다”라는 이야기를 자주 듣습니다. 특히 마약 사건이나 성범죄 사건에서 이런 말이 많이 돌고 있는데요, 정작 자유심증주의가 정확히 무엇인지, 이 원칙이 실제 재판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아는 분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자유심증주의란 정확히 어떤 것이고 법정증거주의와는 어떻게 다른지, 자유심증주의에도 한계와 제약이 있는지가 궁금합니다. 또 마약이나 성범죄 사건에서 자유심증주의가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작용해서 실제로 무죄로 선고된 판례 등이 있는지도 알고 싶습니다. A. 안녕하세요. 법무법인 태강 조은 변호사입니다. 먼저, 자유심증주의란 무엇인지 말씀드리겠습니다. 1. 자유심증주의란 무엇인가? ‘법의 사슬’에서 ‘이성의 자유’로 우리 형사소송법 제308조는 “증거의 증명력은 법관의 자유판단에 의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자유심증주의(自由心證主義)입니다. 이에 대립하는 개념으로 ‘법정증거주의’라는 것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증인 두 명의 증언이 있으면 유죄로 인정해야 한다”거나 “자백이
“변호사님, 저는 회사를 살리려고 한 일입니다. 제 주머니로 들어온 돈은 한 푼도 없습니다.” 접견실에서 마주하는 기업인이나 자금 담당 피고인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다. 회사가 무너질 위기에서 급하게 결정을 내렸고, 그 과정에서 결과적으로 문제가 되었을 뿐이라는 항변이다. 피고인들은 하나같이 억울함을 호소한다. 그러나 그들의 절박한 심정과 달리, 검찰의 공소장에는 ‘업무상 횡령’ 혹은 ‘업무상 배임’이라는 무거운 죄명이 선명하게 적혀있다. 그리고 그 한 줄의 죄명은 1심 법정에서 실형이라는 결과로 이어지고, 결국 구치소의 차가운 공기 속으로 사람을 밀어 넣는다.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난 뒤 피고인들이 가장 먼저 하는 질문 역시 비슷하다. “이제 끝난 건가요?” 그러나 이들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체념이 아니라 사건을 처음부터 다시 바라보는 냉정한 시선이다. 감정이 아니라 구조를, 억울함이 아니라 논리를 준비해야 할 시점이다. 재산 범죄 사건에서 가장 먼저 넘어야 할 벽은 ‘불법영득의사’라는 보이지 않는 마음의 문제다. 횡령과 배임을 가르는 핵심은 단순하지 않다. 나를 위해 돈을 썼는지, 회사의 이익을 위한다는 명목이었는지, 회사에 손해가 발생할 것을
최근 보이스피싱 범죄는 단순한 전화를 넘어 메신저 피싱, 딥페이크 기술을 활용한 지인 사칭 등 그 수법이 날로 고도화되고 있다. 범죄 조직은 갈수록 지능화되어 점조직 형태로 운영되며, 정작 몸통인 ‘총책’은 해외에 숨어 검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결국 수사기관의 레이더망에 걸려드는 이들은 대개 국내에서 실무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이른바 ‘장집(통장 공급자)’, ‘현금인출책’, ‘현금수거책(전달책)’들이다. 최근 변호사로서 관련 사건 상담을 진행하다 보면, 피고인들에게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가 바로 공소장에 기재된 죄명에 관한 것이다. 같이 잡힌 친구는 죄명이 ‘통신사기피해환급법’ 위반인데 본인은 왜 형량이 더 높고 무거운 ‘사기죄’인지, 피해자를 직접 속인 적도 없는데 억울하다는 호소다. 겉보기엔 비슷한 가담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왜 누구는 사기죄로, 누구는 통신사기피해환급법 위반으로 기소되는 것일까. 이 두 가지 죄명을 가르는 핵심 잣대는 결국 기망책(총책 등)과의 ‘공모 여부’다. 더 구체적으로는 ‘사기 방조의 고의’ 내지 ‘미필적 인식’이 있었는지가 관건이다. 판례의 경향을 보면 본인의 행위가 단순한 심부름을 넘어 보이스피싱 피해자로부터 편취한 금원을
1심에서 패소한 의뢰인들이 새로운 변호사를 찾아와 처음 내뱉는 말들은 대개 비슷하다. “상대방 주장만 일방적으로 수용된 것 같다”, “판사가 내 억울함에는 관심이 없다”… 심지어 전임 변호사가 사건을 사실상 방치했다는 식의 성토가 이어지기도 한다. 유명 인사들이 불리한 판결 앞에서 사법부를 향해 거친 비판을 쏟아내는 장면이 연일 뉴스를 장식하는 시대이다 보니, 패소의 원인을 외부로 돌리고 싶은 심정은 어찌 보면 지극히 인지상정(人之常情)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냉정하게 판결문을 뜯어보면 사정은 사뭇 다르다. 대다수의 판결문에는 쟁점 하나하나에 대한 재판부의 깊은 고뇌와 치밀한 법리 검토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대한민국 사법 시스템에서 판사 한 명이 감당해야 하는 사건의 양과 무게를 고려하면, 그들이 내놓는 결론은 대개 그 시점에서 도출할 수 있는 최선의 판단인 경우가 많다. 결과가 불리하다고 해서 곧바로 ‘부당한 판결’이라 단정할 수 없는 이유다. 그럼에도 변호사로서 사건기록을 면밀히 검토하다 보면, 가끔 가슴이 뛰는 순간이 찾아온다. ‘어라, 이 지점은 판단이 빠져있네’, ‘이 증거가 왜 이렇게 해석됐을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바로 그 순간, 즉 ‘1
Q. 안녕하세요. 제가 촉법소년이던 시기에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이하 아청물)을 소지·유포·제작한 적이 있습니다. 이 건에 대해 현재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고 친구에게서 연락을 받았습니다. 저는 현재 성인이고, 다른 사건으로 인해 수감되어 있습니다. 촉법소년이던 당시에는 제가 하는 행동이 죄가 된다는 것을 명확히 인식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촉법 연령이 경과한 시점에도 제 휴대전화에 영상이 남아있었지만 저는 인지하지도 못했고, 확인해서 삭제를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이처럼 촉법소년 시절에 저지른 죄가 촉법 연령이 초과한 후에 발각되었으며, 문제가 될 수 있는 영상이 아직도 단말기에 저장되어 있는 상황이라면 제가 해당 사건으로 인한 형사처벌을 받아야 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또 해당 건으로 인해 만약 경찰 조사를 받게 된다면, 제가 “휴대전화에 어떤 영상물이 저장되어 있었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고, 영상을 소지하고 있었다는 인식이 없었다”는 주장을 할 경우 수사기관과 재판부가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일지도 궁금합니다. 그리고 저는 추가로 사기죄, 정보통신망 침해죄로 고소를 당한 상태입니다. 두 범죄 모두 혐의가 인정되어 처벌 대상이 되는 경우 형벌은 어떻게
재판이나 촬영 등 특별한 일정이 없다면, 나의 월요일 오전은 언제나 같은 장소에서 시작된다. 바로 구치소다. 구치소로 향하는 차창 밖으로 흐르는 월요일 아침의 일상은 활기차지만, 나의 목적지는 세상의 활기가 무색할 만큼 정적이며 무거운 공기가 흐르는 곳이다. 월요일을 구치소 접견으로 시작하는 이 루틴은, 내가 어쏘(Associate) 변호사였던 시절 곁에서 지켜보았던 한 성실한 파트너 변호사님의 루틴을 그대로 본뜬 것이다. 변호사 생활 11년 차에 접어든 지금까지도 나는 이 월요일의 루틴을 고집스럽게 지켜오고 있다. 물론 갑작스러운 재판 일정으로 요일을 변경할 때도 있지만, 월요일 아침에 피고인을 마주하지 않으면 한 주를 제대로 시작하지 못한 듯한 기분이 든다. 매주 월요일마다 구치소에서 피고인들과 마주 앉는다. 접견실에서 나누는 대화는 단순한 면담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간은 사건의 쟁점과 본질을 파악하고, 수사 기록 뒤에 숨겨진 피고인의 내밀한 사정을 듣는 시간이다. 나는 이 대화의 편린들을 한데 모아 법정에서 피고인의 입장을 가장 충실하게 대변할 언어를 고른다. 나는 변호사로서 수사기관의 과잉 기소에는 ‘법리에 맞는 합당한 형량’을
“조은 변호사, 이 사건 당사자가 너무 억울하다고 하는데, 구치소 가서 이야기 한번 들어보겠나?” 로펌에서 어쏘 변호사로 지내던 어느 여름날, 파트너 변호사의 권유로 사건 하나를 맡게 되었다. 사건 자체는 간단했다. 컴퓨터 수리기사가 고객의 집에 가서 컴퓨터를 수리했는데, 그 과정에서 고객에게 ‘위계에 의한 간음’을 했다는 것이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피고인은 1심에서 법정 구속이 되었고(피고인은 스스로는 너무나도 떳떳했기 때문에 이를 별도로 회사나 가족 등에 알리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억울한 마음에 자신의 목소리를 제대로 대변해 줄 변호사를 찾아 나선것이었다. 우선 판결문을 확인했다. 그런데 얼추 봐서는 피고인의 잘못으로 해석될 여지가 너무 많았다. 동료 변호사들과 논의를 해봤지만 우리가 2심에서 특별히 할 수 있는 게 없을 것 같았다. 이미 1심에서 피해자에 대한 증인신문도 진행했고, 그 피해자의 진술 역시 일관적이었다. ‘이를 어쩐다….’ 심란한 마음을 품고 의뢰인을 만나러 구치소로 향했다. 피고인은 역시나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했다. 그런데 자세히 들어보니 피고인의 말에 사건을 뒤집을 만한 요소가 보이기 시작했다. 피고인의 진술에는 신빙성이 있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