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일이다. 좁은 골목 벽돌담에 켜켜이 쌓인 누런 연탄재와 ‘개 조심’ 문구, 골목 끝 초록색 양철 대문 오른편에 네 식구가 세 들어 사는 문간방이 우리 집이었다. 크리스마스 이브, 누나와 나는 이불을 뒤집어 쓰고 군밤을 까먹고 있었다. “산타 할아버지가 올까?” 당시 여섯 살인 나는 기대에 부풀어 말했다. “이제 세상에 산타는 없어.” 누나가 찬물을끼얹듯 말했다. “혹시 모르니 양말 걸어 두자.” 그렇게 양말 두 짝을 못에 걸고 잠들었다. 다음날 나를 흔들어 깨운 누나가 눈앞에 양말을 들이밀며 간밤에 산타가 다녀갔다고 말했다. 묵직한 양말을 보고 화들짝 잠에서 깬 나는 선물을 확인하고 또 한 번 놀랐다. 양말 안에는 빨간 사과 두 개가 들어있었다. 눈사람이 연상되는 모습에 웃음이 절로 났다. 누나와 나는 TV 앞에 둘러앉아 사과를 먹었다. 주먹만 한 사과를 한 입 크게 깨물자 아삭 소리와 함께 과즙이 입안에 가득 찼다. 아랫목에선 따뜻한 온기가 피어오르고 창문으로 들어온 무지개 빛은 가슴속을 유영했다. 어두운 밤길 산타는 문 닫는 점포에 들러 꼬깃꼬깃 접어둔 비상금으로 선물을 샀을 것이다. 그리고 행복해 할 남매를 상상하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겠지.
어느날 우리집에 찾아 온 뾰족 뾰족 고슴도치 넌 누구니? 뭐가 무서워 가시를 세웠니? 손으로 주어들자 발라당 핑크색 배를 보이는 이것은 뾰족 뾰족 고슴도치 아니 뾰족한 가시가 수없이 박힌 당신의 심장 아주 뾰족하고 날카로운 가시는 당신의 심장에 박혀있는데 내 손 다칠까 거꾸로 누워 더욱 깊이 박혀가는 가시 처음으로 마주한 당신의 심장은 뾰족 뾰족 고슴도치 이제 핑크색 부분이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다시 한번 가시를 찔러 넣는다. 어느날, 내 손에서 자기의 심장을 본 당신은 재빨리 낚아채 다시 집어 넣고 뾰족 뾰족 가시에 찔리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척 나를 보고 웃는다. ○○○교
처음으로 이곳에 들어왔다. 들어와 일주일 동안 나와 같은 교린이(첫 징역) 처지인 사람들과 신입 방에서 생활했다. 그곳에서 매일 밤마다 우는 아저씨가 말했다. “여긴 신입 방이어서 곧 본방으로 갈 거야. 거긴 흉악범들밖에 없을 거야….” 그 말을 듣고 속으로 생각했다. ‘얼굴은 아저씨가 제일 흉악범인데….’ 일주일 내내 새벽마다 아저씨는 흐느꼈고, 난 잠에서 깰 때마다 흐느끼는 아저씨 얼굴을 보며 흐느꼈다. ‘이런 아저씨랑 같이 살아야… 해? 정말 내 인생…’ 절망의 일주일이 지나고 아저씨와 서로 다른 본방에 배치받았다. 절망핑 아저씨는 나와 헤어진다고 다시 한번 흐느꼈다. “흑… 흑… 근데 소시지는 내가 가져가도 돼? 내가 소시지 없으면 밥을 못 먹어서….” 정말 어이가 없었다. 단 하나도 사지 않았으면서… 눈물에 호소하는 무자본 M&A라니…나는 모든 먹을 것들을 절망핑 아저씨에게 주고, 식판과 모포만 챙겨 본방으로 갔다. 처음 들어간 본방은 답답한 느낌이었다. 신입 방에 비해, 짐들이나 생필품이 곳곳에 가득 차 있었다. 방문이 닫히고 50대 정도로 보이는 아저씨가 내게 말을 걸었다. (A 아저씨라 칭하겠습니다.) “우리 조카, 자기소개 한 번 해볼
어릴 적 우리 가족은 아빠의 갑작스러운 발령으로 중국에 가게 됐다. 중국에서의 가장 큰 변화는 가정부 아주머니가 생겼다는것이다. 우리는 그분을 중국어로 아주머니라는 뜻의 ‘아이’라고불렀다. 나는 아이를 싫어했다. 알아듣지도 못하는 중국어로 자꾸 말을 걸고 입에 맞지 않는 음식을 계속 권했기 때문이다. 하루는 스쿨버스에서 깜빡 잠들어 내리지 못하고 다시 학교로 돌아가게 됐다. 마중 나왔던 아이는 내가 오지 않아 중국어를 못하는 엄마를 대신해 사방팔방으로 나를 찾아다녔다. 우여곡절 끝에 집에 갈 수 있었는데 그때 아이는 나를 챙기지 못한 기사님께 불같이 화를 냈다. 무슨 뜻인지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그녀가 나를 걱정하고 아낀다는 사실만은 알 수 있었다. 그때부터 아이가 좋아졌다. 나이와 국격을 넘은 우정이 싹트기 시작했다. 아이는 정이 많았다. 그녀는 모든 게 낯선 우리 가족을 진짜 가족처럼 대했다. 엄마와 아이는 사전으로 단어를 찾아가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는 항상 엄마를 시장에 데려가 함께 장을 봤다. 새해에는 중국의 풍습에 맞춰 밤12시가 되자마자 집으로 전화를 걸어 우리 가족을 모두 깨운 적도 있다. 이사한 날에는 나쁜 기운을 내쫓고 복을 불러들여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고(故) 김문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1처장 및 백현동 개발사업과 관련한 발언으로 기소된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서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무죄 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이 후보의 발언 중 고(故)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 1처장과의 골프 발언과 백현동 발언 등 일부가 허위사실 공표에 해당한다고 봤다. 앞서 이 후보는 대장동 개발사업 의혹이 불거진 2021년 대선 국면에서 김문기 처장을 모른다고 말하고, 백현동 부지 용도 변경 배경을 ‘국토교통부의 협박’이라 주장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 재판부는 일부 발언이 유권자 판단에 중대한 영향을 줄 수 있는 허위사실이라며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항소심은 “정치적 의견 표명”에 해당한다며 무죄를 선고했고, 대법원은 이를 뒤집었다. 박영재 대법관이 주심을 맡은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심은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끼쳤다”며 “이 후보의 발언은 단순한 의견이 아닌 유권자의 판단을 흐릴 수 있는 허위사실 공표”라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특히 “김문기 골프 발언과 백현동 발언은 공직 적격성에 중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안으로, 표현의
어느덧 또 한 해가 지나갔다. 수감된 지도 2년이 다 되어 가는 봄날, 이제야 슬슬 온기가 느껴지고 서먹서먹했던 지난 날들의 혹독스러운 계절마다 차가웠던 마음 한구석에 스며시 비집고 들어온다. 나도 모르는 사이. ‘억울했던 세월’은 동면하듯 깊숙이 가라앉는다. 매번마다 끝맺음에 “아빠, 빨리 와.” 당부하는 막내딸의 소환. 조금만 더 있으면 가족들과 상봉할 수 있다는 서로의 간절한 눈빛에 차분함과 따스함이 얼었던 내 마음을 녹여 준다. 여러모로 다사다난했던 지난 세월, 이젠 잊혀져야 하고 더 아플 여유가 없는 시간은 소중하기만 하다. 창 밑에 지대 앉아 창틈새로 들어오는 봄바람이 내 등에 따스히 맞닿는다. 방에는 한 톨의 먼지에도 부딪히지 않고 가당치도 않는 거리를 꿰뚫고 위로를 전달하듯, 희망을 안겨 주는 듯. 아낌없는 봄빛이 다정스레 쏟아진다.정말로 따뜻하구나! 이것도.
더 시사법률 신문에 수용자 편익을 위해 원고를 제공해 주신 사장님과 직원분께 감사를 표합니다.타인능해(他人能解), 누구나 다 열 수 있다는 사자성어입니다. 올 봄에는 우리 모두의 마음이 타인을 향해 활짝 열렸으면 좋겠고, 그렇게 빛이 나아가길 바람입니다.자식을 둔 부모들은 어쩌다 먹음직스러운 주전부리가 생기면 친구들과 사이좋게 나눠 먹으라는 말로 함께 더불어 사는 법을 가르쳐 주었고, 그렇게 부모들은 교육을 통해 우리의 몸속에 흐르는 나눔의 DNA를 자녀들에게 전수했습니다.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난 미국의 사업가 척 피니는 지독한 구두쇠였습니다.면세점을 운영하던 그는 재벌이었지만 인색하기로 소문이 난 인물이었습니다.신발은 오래 신어 구두굽이 닳았고, 소맷귀 역시 헤졌지만 개의치 않았습니다.언제나 버스를 타고 다녔고, 만오천 원짜리 시계를 찼으며 비행기도 일반석을 이용했습니다.사람들은 그를 수전노라고 조롱하며 비난했습니다. 정말 그의 얼굴은 스크루지 영감이 떠오를 만큼 심술궂어 보였습니다.하지만 그는 자신의 수입 99%를 자선사업에 기부했고, 그가 기부한 돈은 대학교와 아프리카 아이들의 교육은 물론 전염병 예방에 쓰였다고 합니다.그는 자신의 기부 사실을 사람들에
두 달에 한 번 돌봄 접견을 하러 파주에서 이곳 강릉까지 애들 데리고 와주는 당신께 고맙고 미안해. 애들 입학식도 혼자서 준비 다 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사진 보내주고,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어도 혼자 묵묵히 이겨낸 당신. 연락 못 해서 미안했다고 내 걱정 먼저 해주는 당신. 웃고 있어도 그 웃음 속에 숨어 있는 고통과 슬픔, 아픔을 나는 알면서도 모른 척할 수밖에 없었어. 힘들지 않아? 물어보면 “괜찮아^^” 하면서 항상 내 기분 맞춰주는 당신. 정말 사랑해. 딸, 사랑해. 아들, 사랑해. “우리 가족, 정말 사랑합니다.”
그대에게 프로포즈 하기로 마음먹은 날 당신은 다가오는 배 한 척에 몸을 싣고 말 한마디 없이 다른 섬으로 떠났습니다 왜 말하지 않았나요 외롭다고 슬프다고 힘들다고 떠나버린 배에 작살을 던져보지만 뱃고동 소리 울리며 더 멀리 나아가기만 합니다 침묵은 당신에게도 나에게도 가시같은 존재였습니다. 안녕하세요. THE 시사법률 담당자님! 프로포즈를 2일 남기고 경찰에 체포되어 떠난 그녀를 생각하며 쓴 시입니다. 그녀도 제가 쓴 시를 볼 수 있을까요? ○○○교
코로나가 한창일 때 구속되어 독방에 갇혔던 때가 기억나요. 그 기분 아세요? 인생 첫 구속의 기분이요. 소중한 사람들과의 단절이 특히 괴로웠어요. 생각은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나는 것이라 하던데, 진짜 그래요. 죄인은 괴로운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났다가 이어서, 얼룩은 닦여야 하듯 나도 사라져야 하는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났어요. 방안을 둘러보니, 옷걸이봉은 잘 부러지는 플라스틱 이고요. 화장실 문고리는 아무것도 걸 수 없는 모양이에요. 수납장엔… 이게 뭐죠? 컵라면이 있네요? 그 위에 쪽지가 있어요. 읽어 보니, 정신 없고 입맛도 없으실 텐데 이거라도 드시라고 적혀 있어요. 너무 비현실적이라 한참동안 쪽지랑 라면을 만지작거리며 봤던 기억이 나요. 여긴 감옥인데 어떻게 이런 일이 하면서요. 이 자리를 빌어 그분에게 감사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코로나가 한창일 때 서울구치소의 격리방에 라면과 쪽지를 남겨두신 그 따뜻한 마음 참 감사했습니다. 제가 느낀 감동이 이어지길 바라며 저도 남겨두었는데 지금도 어디선가 이어지고 있다면 좋겠습니다. To. THE 시사법률 품 36.5 담당자님 덕분에 좋은 기억 다시 꺼내봐서 좋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에서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