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년 전, 친구들과 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지
하철에서 어떤 여자 둘이 말을 건네왔다. 모르는 사람들
이었지만,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어찌어찌 이야기
가 오갔다.
내 얼굴에 복이 가득하다던 한 여인이 물었다.
“요즘 집에 안 좋은 일 있죠? 그거 본인만 해결할 수 있어
요.”
건강했던 동생이 갑작스레 아프기 시작한 데다 엄마, 아
빠 일도 제대로 풀리지 않아 풍전등화일 때였다. 솔깃해
진 나는 겁도 없이 그들을 따라갔다. 날이 컴컴해진 지 오
래여서 중간에 주저하는 마음도 생겼지만, 밑져야 본전
이라고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도착한 곳에선 몇몇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나를
반겼다. 나는 곧바로 도인처럼 보이는 남자 앞에 자리를
잡았다. 희미하게 켜진 촛불 몇 개, 책상에 펼쳐진 한자 가
득한 책, 내 문제를 말끔히 해결해 줄 거라는 조상님들 얘
기까지, 모든 것이 내가 잘못된 곳에 왔다는 걸 대변했다.
그제야 빠져나갈 궁리를 했지만 당장은 어려워 보였다.
모두가 나를 지켜보고 있었고, 어떤 이는 이미 제사상이
차려졌다고 말했다. 제사상은 내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여하튼 조상님을 위한 것이며, 나는 가진 돈 전부를 내놓
은 뒤 절을 올리면 된다고 했다.
주머니엔 집에 돌아갈 수 있는 차비 정도만 남아 있었다.
나는 죄인이라도 된 듯한 표정으로 상황을 설명했고, 그
들은 액수는 중요한 게 아니라며 나를 안심시켰다.
한시라도 빨리 나가기 위해 얼른 절을 하고 나오자 도인
같은 남자가 말했다. 조상님들이 내 정성에 아주 흡족해
했으며, 수호신까지 점지해 주셨다고. 그 수호신은 교통
사고와 자연재해로부터 나를 지켜줄 거라고. 나는 서둘
러 나와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나를 데려온 여인이 따라 나오더니, 내가 제물로 낸
액수와 맞먹는 돈을 돌려줬다.
버스에 오르자, 그곳에서 보낸 한 시간이 다른
세계의 일처럼 느껴졌다. 절을 많이 해서인지
다리가 후들거려 이 일이 진짜였음을 실감
했다.
한 달 동안 누구에게도 말하면 안 된다던
내 흑역사는 이틀도 안 돼 입 밖으로 튀어
나왔다. 친구들 사이에서 내 이야기는 설
화처럼 전해졌고, 나는 겨우 버스비만 내
고 수호신을 얻은 사람이 됐다.
결혼해서는 아이가 잠들기 전, 옛날이야
기를 해 달라고 조를 때마다 요긴하게 써
먹었다.
“아빠는 수호신이 네 명이나 생겼어.”
“우와, 아빠 진짜 운 좋다!”
아찔했던 그날의 기억은 이제 재미로 희석돼 운
수 좋은 날이 됐다.
○○○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