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에서 무죄를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때, 항소심에선 어떻게 해야 할까. 억울한 마음에 무죄 주장을 그대로 밀고 가고 싶은 게 사람 심정이다. “나는 정말 결백한데, 1심 재판부가 왜 그 증거들을 제대로 보지 않았을까?”, “유리한 양형 사유는 하나도 고려하지 않고, 왜 이렇게 일방적인 판단을 했을까?” 이런 답답함은 항소를 결심하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동기 중 하나다.
결국 ‘내가 얼마나 억울한지’를 기준으로 항소심 변론 방향을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여기서 한 번쯤 멈춰서 냉정하게 질문해 볼 필요가 있다. ‘2심에서는 무죄 주장이 통할 수 있을까?’. 1심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은 주장을 2심에서 반복하면 그 결과는 반드시 ‘항소 기각’이다.
항소심 재판부가 새롭게 보는 건 사실관계 자체라기보다, 1심의 판단에 명백한 잘못이 있었는지여부다. 즉, 같은 이야기로는 다른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무죄에 부합하는 증거를 냈는데 재판부가 판결문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주지 않았다면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재판부가 증거를 아예 안 보고 누락한 게 아닐까?’, ‘항소심 재판부는 다시 봐주지 않을까?’. 그러나 냉정하게 말씀드리면, 재판부는 증거를 ‘모른 채’ 한 것이 아니라 애초에 유죄라는 결론을 정한 뒤 그 결론에 맞춰 증거들을 취사선택하고 그에 부합하지 않는 증거들을 선택적으로 외면했을 가능성이 크다. 어떤 증거를 믿고 안 믿을지는 재판부가 판단할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무죄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무죄 주장을 끝까지 이어간 피고인에게는 어김없이 따라붙는 한마디가 있다. “반성하지 않는다” 이른바 ‘괘씸죄’라는 이름의 비공식 양형 원칙이다.
또한 재판부는 ‘왜 유죄인지’를 중심으로 판결문을 작성하게 된다. 자연스럽게 피고인에게 유리한 양형 사유들은 서술조차 되지 않고 빠져버리기 쉽다. 그렇게 되면 결과적으로 형량에서도 큰 손해를 입게 된다.
따라서 항소심에서 무죄 주장을 계속 이어갈 것인지 여부는, 단순히 ‘억울함의 정도’로 결정해서는 안 된다. 더 중요한 판단 기준은 ‘1심에서는 주장하지 못했던 새로운 법리가 있는가?’, ‘1심에 제출하지 못한 추가 증거가 확보되었는가?’가 되어야 한다.
이 질문들에 ‘그렇다’라고 답할 수 없다면, 아무리 억울하더라도 같은 말을 반복해서는 결과를 바꿀 수 없다. 항소심 재판부가 기적처럼 마음을 돌리는 일은 없다. 같은 주장을 두 번, 세 번 반복한다고 해서 무죄 판결이 나오는 건 아니라는 말이다.
가끔은 이런 질문도 받는다. “1심에서는 끝까지 무죄를 주장했는데, 갑자기 인정한다고 하면 오히려 재판부가 이상하게 보지 않을까요?”. 충분히 이해되는 우려다. 그러나 그때마다 나는 분명히 말씀드린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항소심은 지금 이 시점에서 피고인이 어떤 태도를 보이고 있는지를 중요하게 여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억울함’이 아니라 ‘가능성’이다. 판결이 아쉬운 건 당연하다. 그러나 항소심은 감정의 무대가 아니라 전략의 전장이기에 싸울 수 있는 새로운 무기를 갖추지 못했다면 애초에 싸움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 옳은지 냉정히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만약 더 꺼낼 카드가 없다면, 그때는 용기를 내어 방향을 바꾸는 것도 전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