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죄를 원한다면, 증인의 진술을 흔들어야 한다 [곽준호의 변호사 다이어리]

제보자 법정에 세워 진술 파고들어야
증인신문에 따라 재판부 판단 달라져

빨간 휴지, 파란 휴지 귀신 이야기’는 다들 잘 알 것이다. 재래식 변소에 앉아 있던 아이에게 “빨간 휴지 줄까~ 파란 휴지 줄까~” 라고 물었다는 이야기다. 갑자기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예전에 맡았던 마약 사건의 증인신문 장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증인에게 “검은 봉투였나요, 투명한 봉투였나요?”를 집요하게 질문하여 결국 마약 전달책으로 지목된 피고인의 무죄를 받아냈다.


우리 의뢰인은 마약 전과가 있었고, 이번에 또 마약을 전달했다는 혐의를 받게 되어 구속된 상태에서 재판을 앞두고 있었다. 의뢰인에게 마약을 전달했다는 제보자는 장소, 시간, 정황까지 구체적으로 진술했다.

 

하지만 나는 의뢰인과 여러 차례에 걸쳐 상담하면서, ‘이 사람은 거짓말을 하지 않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법정에서 전면적으로 무죄를 다퉈보기로 했다.


증거기록에는 제보자가 의뢰인에게 전달했다는 마약 사진이 첨부돼 있었다. 투명한 봉지에 마약이 담긴 사진. 그런데 제보자의 진술을 들여다보니 이상한 점이 있었다. 처음 조사에서는 분명 ‘검은 봉투에 포장해서 전달했다’고 진술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투명한 봉투’라고 말을 바꾼 것이다.

 

봉투 색깔을 헷갈렸다는 건 도저히 쉽게 넘길 수 없는 부분이었다. 마약을 직접 포장하고 건넨 사람이라면, 봉투의 색상 정도는 가장 선명하게 기억할 수 있는 부분 아닌가. 나는 이 지점이 사건의 진실을 드러낼 결정적 실마리라고 보고, 증인신문에서 이 부분을 철저히 파고들기로 했다.


그래서 인근 마트를 다 뒤져서 증거기록에 첨부된 사진에 있는 것과 똑같은 투명 봉투를 구하고, 그 외 여러 종류의 봉투를 준비하여 증신에 임했다.

 

먼저 증인에게 봉투를 하나씩 보여주며 각 봉투의 차이를 구별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제보자인 증인뿐 아니라 법정에 있는 재판부, 검사, 방청석까지 모두가 어리둥절한 눈빛을 보냈다. ‘뭘 하려는 거지’라는 기류가 법정 전체를 감쌌던 그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나는 먼저 제보자가 각 봉투의 차이를 확실히 구별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한 다음 본론으로 들어갔다. 왜 처음 조사에서는 검은 봉투라고 진술했나는 질문에 제보자는 당연히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제보자는 계속 횡설수설 했고, 나는 이어서 “진실은, 제보자가 말한 검은 봉투는 실제로 피고인에게 전달되지 않았고, 지금 증거기록에 있는 투명 봉투 사진은 피고인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것 아니냐”고 강하게 밀어붙였다. 그렇게 치열하게 파고든 끝에, 재판부는 이 사건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했다.


이처럼 무죄를 주장하는 사건에서는 반드시 적극적인 입증이 필요하다. 간혹 무죄 주장을 하면서도 정작 고소인은 법정에 세우지 않고 사건을 진행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렇게 해서는 무죄를 절대 받을 수가 없다는 점을 반드시 이해해야 한다.

 

무죄 주장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순간은 단연 고소인, 제보자를 법정에 세우고, 그들을 상대로 어떻게 증인신문을 진행하느냐다. 이 장면에서 사건의 방향이 바뀌고, 재판부의 판단이 뒤집힌다.

 

변호사의 진짜 실력이 드러나는 무대다. 막연한 억울함 호소만으로는 절대 얻을 수 없는 결과. 결국 무죄는 철저한 전략과 날카로운 증인신문으로 이끌어내는 결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