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청] 최후 진술 순서와 피고인의 방어권

피고인 최후 진술 후의 피해자 발언
피고인 방어권 보장을 위협할 수도

 

형사 절차의 첫 단계인 수사 단계에서는 경찰, 검찰이 전면에 나서 피의자의 혐의를 조사한다. 물론 이 단계에서도 피의자는 변호인을 선임하여 방어할 권리가 있지만, 실무에서는 말처럼 쉽게 보장받지 못할 때가 많다.


특히 구속 상태에서 조사가 이뤄지면 피의자가 무엇 하나 제대로 따질 틈도 없이 빠르게 절차가 진행되기에 방어할 기회를 거의 갖지 못한 채 기소로 이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구치소에 수감된 이후에는 통보 없이 갑자기 검사실로 불려 가게 되니,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것이다.


이렇듯 수사 단계에서는 현실적으로 피의자가 수사기관과 대등한 수준에서 대응하기 어려운데, 그렇기에 공정한 형사 절차가 되기 위해서는 재판 단계만큼 더더욱 피고인의 방어권을 최우선으로 하여 진행되어야 한다.

 

형사사법의 역사를 돌이켜봐도, 피고인과 검사가 대등한 위치에서 서로의 주장과 입증을 한다는 ‘무기대등(武器對等)’의 원칙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 고민하며 제도를 발전시켜 온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피고인의 방어권이 온전히 보장되는 재판’이야말로, 공정한 형사 절차의 핵심인 것이다.


사실 이와 같은 이야기는 새삼스러운 건 아니다. 특별할 것 없이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이렇게 길게 말씀드리는 이유는 최근 법정에서 재판부가 피해자에게 발언 기회를 주는 사례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타이밍’이다. 발언의 순서가 언제냐에 따라서 피고인의 방어권이 심각하게 훼손될 수 있기에 이 점은 결코 가볍게 볼 수가 없다.


원칙적으로 재판 진행 절차는 정해져있다. 변론 종결일에는 재판장이 결심을 선언한 뒤, 검사가 구형 의견을 밝히고 이어 변호인이 최후 변론을 하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피고인이 직접 최후 진술을 하고 나면 선고 기일이 지정되면서 재판은 종결되는 것이다.

 

피고인의 최후진술은 피고인이 판사에게 직접 말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시간이라고 보아도 무방한데, 이를 마지막 순서로 하는 이유는 피고인 방어권 보장의 일환으로써 피고인에게 마지막으로 자신의 입장을 재판부에 직접 호소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일부 재판부에서는, 피고인의 최후 진술이 끝난 뒤 법정에 출석한 피해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보시라”고 발언 기회를 주는 경우가 있다. 이때 피해자(고소인)는 그동안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던 이야기나 사실 확인이 되지 않은 주장을 갑작스럽게 쏟아내는 일이 적지 않다.


재판부 입장에서는 “피해자도 마지막으로 한마디 할 기회를 주는 것” 정도로 생각하며 이 절차를 운영하는 듯하다. 그러나 피고인의 방어권을 온전히 보장하기 위해서는 피해자의 발언은 최소한 피고인의 최후 진술 이전에 이뤄져야 마땅하다.

 

특히 이전까지 한 번도 다뤄지지 않았던 새로운 주장을 불쑥 꺼내는 것은 재판부가 이를 자제시키는 것이 맞다.


물론 “어차피 단순 참고일 뿐이고 실질적으로 판결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반론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판결에 반영되지 않을 진술이라면 굳이 피고인의 최후 진술 이후에 발언 기회를 주는 것은 보여주기식 절차에 불과하다.

 

반면, 그 자리에 앉아 있는 피고인에게는 예상치 못한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큰 불안과 압박을 주게 된다. 이는 재판의 순서가 정해져 있는 본래 취지, 즉 피고인의 방어권을 보장하려는 목적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형사 사건의 피해자는 당연히 보호받아야 하며, 본인이 겪은 어려움을 직접 진술할 권리도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에는 필자도 공감한다.

 

다만 재판이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공정성을 유지하려면, 재판부도 원칙을 지키는 절차 진행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피해자의 권리와 함께 피고인의 방어권도 균형 있게 보장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