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재판부 요청 따른 입주자카드 제출, 정당행위”

주민 동의 없이 제출된 개인정보…
대법 "사회상규 위배 아냐"

 

개인정보를 제3자에게 제공하는 행위는 원칙적으로 엄격히 제한된다. 정보주체의 동의 없이 개인정보를 외부에 전달할 경우 형사처벌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재판 과정에서의 증거 제출과 같이 불가피한 상황에서는 예외가 인정될 수 있는지가 쟁점이 된다.

 

5일 현행 개인정보보호법은 정보주체의 동의가 있거나 법률상 근거가 있는 경우에만 개인정보를 제3자에게 제공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다.

 

또 업무상 알게 된 개인정보를 누설하거나 권한 없이 이용하도록 하는 행위 역시 금지된다. 이를 위반할 경우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이 같은 원칙과 예외의 경계가 문제된 사건에서 대법원이 중요한 판단 기준을 제시했다.

 

최근 대법원 제1부는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 사건에서 유죄를 인정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대전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사건은 2020년 대전 서구 한 아파트에서 발생한 입주자대표회의 해산 분쟁에서 비롯됐다. 당시 일부 주민들은 관리비 절감과 관리 운영 개선 등을 이유로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했고 관리규약을 근거로 입주자대표회의 해산 결의가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비대위 측은 전체 940세대 가운데 606세대의 서면 동의를 확보했다며 기존 입주자대표회의 회장과 동대표들을 상대로 직무집행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이에 대해 동대표 측은 무효이거나 철회된 동의서를 제외하면 과반수 요건이 충족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가처분 사건을 심리하던 법원은 서면 동의자의 실제 거주 여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세대주와 세대구성원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 제출을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당시 동대표 회장이었던 A씨는 관리소장과 함께 관리사무소에 보관돼 있던 입주자 카드 584장을 재판부에 제출했다.

 

해당 자료에는 세대주 생년월일, 직업, 차량번호, 가족사항, 세대원 생년월일, 전화번호, 주소 등 개인정보가 포함돼 있었다. 주민등록번호 뒷자리는 삭제된 상태였지만 입주민 개별 동의를 받지 않은 채 제출된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검찰은 이를 개인정보의 제3자 제공 및 누설에 해당한다고 보고 A씨를 기소했다. 1심과 항소심도 재판부의 자료 제출 요구가 있었더라도 입주민 동의 없이 개인정보를 제출한 행위는 위법하다고 판단해 유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판단을 달리했다. 대법원은 “재판 과정에서 소송상 필요한 주장의 증명이나 방어권 행사를 위해 개인정보가 포함된 자료를 법원이나 수사기관에 제출하는 경우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다면 형법 제20조에 따른 정당행위로 위법성이 조각될 수 있다”고 밝혔다.

 

즉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여부를 형식적으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 해당 행위가 재판 절차에서 불가피한 범위였는지를 함께 살펴야 한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정당행위 여부 판단 기준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개인정보를 수집·보유하게 된 경위 ▲제출 목적과 상대방 ▲목적 달성에 필요한 최소 범위인지 여부 ▲비실명화 등 보호조치 여부 ▲정보의 성격과 양 ▲정보주체에게 미치는 침해 정도 ▲대체 수단의 존재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봤다.

 

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가처분 사건의 본질적 쟁점도 함께 짚었다.

 

대법원은 “이 사건 가처분 사건의 주된 쟁점은 입주자대표회의 해산 결의에 필요한 정족수가 충족됐는지 여부”라며 “입주자카드는 서면 동의서를 작성한 사람이 실제 거주자인지를 확인하기 위한 자료로서 소송상 주장 입증을 위한 자료이자 재판부가 제출을 요구한 자료의 성격을 가진다”고 판시했다.

 

또 현실적인 상황도 고려했다. 대법원은 “이 사건 아파트의 세대수 등에 비춰볼 때 2주일 내에 모든 입주자로부터 개별 동의를 받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주민등록번호 뒷자리를 삭제한 점을 들어 일정한 보호조치가 이뤄졌다고 판단했다.

 

이어 “입주자 카드에 기재된 정보는 세대주나 세대원의 특정에 필요한 범위에 불과하고 사상·신념이나 건강정보 등 민감정보는 포함돼 있지 않다”며 “자료를 제공받은 주체가 사건을 심리하는 법원이라는 점까지 고려하면 사회통념상 용인할 수 없는 피해가 발생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했다.

 

아파트 관리라는 공익적 측면도 강조됐다. 대법원은 “입주자대표회의 해산 여부는 아파트 운영과 관리에 직접적으로 관련되는 사안으로 다수 주민에게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며 “최소한의 개인정보 활용조차 허용되지 않는다면 해산 결의 효력 판단이 어려워져 사회적·경제적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대법원은 원심이 정당행위에 관한 법리를 오해했다고 보고 판결을 파기했다. 사건은 다시 대전지방법원에서 심리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