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자발찌 부착 명령을 받은 성범죄자가 형벌과 별도로 부과받은 추가 준수사항을 어겼더라도 준수사항의 기간이 명확히 정해지지 않았다면 위법하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마용주 대법관)는 도로교통법 위반(음주운전) 및 전자장치부착등에관한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돼 징역 8개월을 선고받은 A씨 사건에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의정부지법으로 환송했다.
A씨는 2014년 6월 강간죄로 징역 4년 및 위치추적 전자장치 7년 부착 명령을 선고받고 2017년 12월 출소했다. 출소 후 A씨에게는 ‘혈중알코올농도 0.03% 이상 음주 금지’ 및 ‘보호관찰관의 정당한 음주측정 요구에 응할 것’이라는 추가 준수사항이 부과됐다.
그러나 지난해 4월, A씨는 한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마친 후 차량을 운전해 귀가했고, 이를 인지한 보호관찰관들이 음주측정을 요구하자 여러 차례 거부하다 측정을 받았고 혈중알코올농도는 0.107%로 나타났다.
검찰은 이를 근거로 A씨를 음주운전과 전자장치 부착명령 준수사항 위반 혐의로 기소했고, 1심과 2심은 모두 징역 8개월을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A씨에게 부과된 추가 준수사항이 전자장치부착법 제9조 제1항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해당 조항은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명령을 선고하는 경우, 부착기간의 범위에서 준수기간을 정해 준수사항을 부과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법원은 "준수기간을 정하지 않은 이 사건 추가 준수사항은 전자장치부착법을 위반하므로 전자장치부착법을 적용해 처벌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전자장치부착법 제9조 1항은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명령을 선고하는 경우 부착기간의 범위에서 준수기간을 정해 준수사항을 부과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는데, 준수기간을 정하지 않아 위법하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법적 효력이 없는 준수사항을 근거로 보호관찰관이 음주측정을 요구하는 것도 정당하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러한 요구에 따라 수집된 음주측정 결과는 적법한 절차에 따른 증거가 아니므로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법률사무소 로유 배희정 변호사는 “적용된 음주운전 혐의도 위법한 준수사항을 전제로 한 것이므로 무죄 취지로 판단된 것”이라며 “이 판결은 전자장치 부착자에게 부과되는 준수사항은 반드시 기간을 명시하는 등 법률상 요건을 엄격히 충족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처벌뿐만 아니라 보호관찰관의 감독 권한 행사도 정당성을 인정받기 어려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