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도소 수용자가 자신에게 불리한 내용이 담긴 징벌 보고서에 손도장(무인)을 찍기를 거부했다는 이유만으로는 징벌할 수 있을까.
29일 수용자 A씨는 본지에 “날씨가 더워 옷을 갈아입는 과정에서 교도관이 옷을 벗고 있다며 해명도 듣지 않고 규율위반으로 몰아 손도장을 강요했다”며 “억울한 상황에서 손도장을 찍는 것이 맞느냐”고 호소했다.
법조계에 따르면 법원은 징벌대상 행위가 기재된 ‘적발 보고서’에 무인을 요구하는 것은 단순한 행정 확인 절차가 아니라, 사실상 위반 사실을 인정하라는 의미를 가진다고 설명한다.
실제 2022년 대구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B씨는 다른 수용자와 말다툼을 벌이며 소란을 일으킨 뒤, 교도관으로부터 적발 보고서에 손도장을 찍으라는 요구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나는 잘못이 없다. 생활하다 보면 말다툼할 수도 있는데 왜 무인을 찍느냐”며 거부했고, 교도관이 재차 지시하자 “일이나 똑바로 하라”며 반발했다. 이에 교도소는 징벌위원회 의결을 거쳐 금치 20일 처분을 내렸고, B씨는 대구교도소장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1심 재판부는 소란 행위 자체는 인정했지만, 손도장 거부를 징벌 사유로 삼을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적발 보고서에 무인을 요구하는 것은 위반 사실을 사실상 인정하라는 것과 같다”며 “헌법 제12조 제2항은 형사절차뿐 아니라 행정절차에서도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받지 않을 권리를 보장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수용자가 규율위반 사실을 부인하며 무인을 거부한 것은 헌법상 권리 행사”라며 “이를 이유로 징벌하는 것은 자기부죄 금지원칙에 반한다”고 판시했다. 항소심과 대법원도 같은 결론을 내렸다.
법무법인 민 유정화 변호사는 “해당 판결은 자기부죄를 강요받지 않을 권리를 확장한 것”이라며 “헌법 제12조 제2항은 누구든지 형사상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않을 권리를 규정하고 있는데, 법원이 이를 교정 행정 절차에도 적용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해당 판결이 모든 손도장 거부를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영치금품 수령이나 소송 서류 확인, 물품 수령 등 단순 행정 확인 절차에서 정당한 사유 없이 무인을 거부하면 직무상 지시 불이행으로 징벌 사유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교도관직무규칙」 제14조도 “수용자가 작성한 문서로서 날인이 필요한 것은 오른손 엄지손가락으로 손도장을 찍게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유 변호사는 “수용자의 기본권 보장은 교정 행정의 신뢰를 높이는 첫걸음”이라며 “헌법과 판례에 부합하는 절차 개선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