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노동자가 “심신미약 상태에서 제출한 사직서를 수리한 것은 부당해고”라며 소송을 냈으나 패소했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 9월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부장판사 강재원)는 A씨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부당해고 구제재심판정 취소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사직서가 당일 수리됐고 철회 의사표시가 확인되지 않은 점, 심신미약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가 부족한 점 등을 근거로 A씨가 자진해서 사직한 것으로 판단했다.
앞서 A씨는 2024년 1월 23일 전보 발령을 받은 뒤 건강 문제를 이유로 출근하지 않다가, 첫 출근일인 2월 13일 ‘개인 사정’을 이유로 자필 사직서를 제출했다. 사직서는 그날 당일 바로 수리가 됐고, 다음 날 결재를 거쳐 3일 만에 당사자에게 퇴직처리 사실을 알려줬다.
이에 대해 A씨는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해 부당 전보를 당했고, 극심한 스트레스로 새벽에 응급실 치료를 받을 정도로 건강이 악화돼 휴직을 신청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러한 상황에서 지점장이 출근을 독촉해 극심한 불안 상태, 심신미약 상태에서 사직서를 제출했다”며 “제출 3시간 뒤 사직 의사를 철회했는데도 회사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부당해고를 주장했다.
재판부는 “사직 의사가 사용자에게 도달해 당일 수리된 이상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노동자가 일방적으로 철회할 수 없다”며 부당해고가 아니라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인사 담당자와의 통화나 메신저 대화에서 철회 의사표시는 확인되지 않았고 진단서 및 실업급여에 관한 문의만 있었을 뿐”이라며 사직 철회에 대한 증거가 없다고 보았다.
법원은 A씨가 주장한 심신미약을 이유로 한 ‘비진의 의사표시’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비진의 의사표시를 주장하는 자가 증명책임이 있다”며 “응급실 진료기록이나 정신과 진단이 있더라도 사직서 작성 당시 판단능력 상실을 입증하기에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유정화 법무법인 민 변호사는 “2021년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근로자가 제출한 사직 의사는 사용자에게 도달하기 전까지는 철회할 수 있다”며 “이 사건의 경우 사직서가 당일 즉시 수리됐고 철회의 의사표시도 확인되지 않아 부당해고로 인정받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비진의 의사표시에 대한 입증책임은 이를 주장하는 측에 있기 때문에 A씨가 사직 당시 의사결정 능력을 완전히 상실했다는 점을 의학적·객관적 자료로 증명하지 못한다면 해당 주장은 받아들여지기 어렵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