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에게는 집요함이 가장 큰 무기

형사사건의 핵심은 운 아닌 집요함
끈질기게 물으면 진실 드러나게 돼

 

사건을 맡다 보면, 단 한 번의 검토로 결론이 나는 일은 거의 없다. 서류 한 장, 문장 한 줄 속에조차 그 사람의 억울함이 숨어 있을 수 있다. 이번 사건이 그랬다. 표면은 ‘거대한 투자사기’였지만, 사건의 실체는 달랐다.

 

의뢰인들은 제조업 관련 투자와 스마트 무인 카페 사업을 병행하며 다수의 투자자와 계약을 맺었다. 시간이 흐르자 일부 투자자들이 “원금과 수익금을 돌려받지 못했다”며 고소했고, 고소인은 수십 명, 피해액은 수억 원대라고 주장했다. 적용 법률은 유사수신규제법 위반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이었다.

 

기록을 처음 받았을 때 의뢰인들은 이미 사기꾼으로 낙인찍혀 있었고, 피해금액과 피해자 수가 크다는 이유로 판단은 유죄로 기울어 있었다. 그러나 필자는 고소장을 첫 줄부터 다시 읽었다. 고소장에 적힌 문장을 ‘사실’이 아니라 ‘주장’으로 놓고, 모든 진술을 원점에서 재검증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고소 내용 상당 부분은 모호했다. 투자금과 개인 대여금이 의도적으로 뒤섞여 있었고, 핵심 쟁점인 ‘원금 보장 약정’의 존재를 뒷받침할 직접 증거가 보이지 않았다. 커피머신의 ‘제조상 결함’ 주장은 요란했으나, 실제 사용 및 관리 기록은 부실했고, 고장 보고의 시점과 정비 이력도 맞지 않았다.

 

검토의 순서를 정리했다. ① 계약서·제안서·안내자료의 문언 해석, ② 금전 흐름(입·출금·정산)의 연월일별 매칭, ③ 대화록·녹취 원본의 진정성 및 편집 여부, ④ 하자 주장 기계의 검수·감정 및 유지관리 이력, ⑤ 고소인별 투자/대여의 구분과 개별 쟁점. 각 항목을 타임라인 표로 묶고, 주장과 자료의 교차점을 빨간 표식으로 표시했다.

 

그 과정에서 모순이 드러났다. “원금 보장”이라던 메시지는 실제로는 ‘목표 수익’ 설명에 불과했고, 설명 직후 이어진 대화에는 손실 가능성 고지가 명시돼 있었다. 스마트 무인 카페와 관련된 사건의 혐의에서는 유사수신 적용의 관문인 ‘불특정 다수 대상 자금의 수취 + 원금 보장 약속’을 입증할 자료가 없었다. 투자설명 자료는 ‘리스크 공지’와 ‘수익 가정의 전제’를 분명히 두고 있었다.

 

무엇보다 고소인들이 주장하는 피해액에는 전혀 성격이 다른 ‘개별 민사 대여금’까지 합산돼 있었다. 형사사건의 프레임을 키우기 위해 민사 채권을 억지로 끼워 넣은 흔적이었다. 커피머신 결함 주장도 자세히 사건을 분석하니 결과가 달라졌다.

 

납품 전 안전 확인 시험 성적과 입고 검수표, 설치 사진, 사용자 매뉴얼 교부 내역을 정리하고, 고장 시점의 전원·필터·세척·환경값 로그를 수집했다. 감정 결과는 ‘제조상 하자 단정 불가, 관리 소홀 및 사용환경 변수 개연’이었다.

 

수사 단계 대응은 변론을 넘어 추적에 가까웠다. 정보공개청구로 고소장 원본과 첨부물 일체를 확보하고, 고소인별 진술서의 패턴을 비교했다. 동일 문장, 동일 오탈자, 동일 오해가 반복되고 있었다. 이건 상호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을 시사했다. 수사기관의 예상 질문지를 역으로 만들었고, 회의실 벽면에는 날짜별로 문서, 고소인들의 주장, 돈의 흐름을 한눈에 보이게 만들어 붙였다.

 

결국 수사기관은 핵심을 확인하고 불송치를 결정했다. 형사사건을 하다 보면 ‘운’이 아니라 ‘집요함’이 결과를 만든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기록은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 끝까지 묻는 사람이 결국 진실을 ‘말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