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범죄 사건에서 합의는 가해자에게는 형사처벌의 향방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가 되고, 피해자에게는 실질적인 회복의 수단이 된다. 그러나 정신적·인격적 침해를 금전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점에서 합의금은 늘 논란과 갈등을 낳는다. “얼마가 적정한가”라는 질문에는 명확한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형사재판에서 합의는 ‘형법’ 제51조의 ‘범행 후 정황’ 가운데 가장 강력한 감경 요소로 평가된다. 특히 처벌불원 의사가 포함된 합의는 양형기준상 특별감경 사유로 작용하여 실형과 집행유예를 가르는 결정적 요소가 되기도 한다(대구고등법원 2018. 9. 20. 선고 2018노242 판결)(서울북부지방법원 2019. 1. 11. 선고 2018고합383 판결).
다만 법원은 합의서만 보고 판단하지 않는다. 합의가 어떤 과정에서 이루어졌는지, 합의금이 범죄의 중대성에 비추어 적절한지, 피해자의 진정한 의사가 반영된 것인지 세심하게 따진다. 미성년자나 장애인처럼 취약한 피해자와의 합의라면 그 진정성을 더욱 엄격히 심사하는 것이 최근 판례의 흐름이다(대구고등법원 2018. 9. 20. 선고 2018노242 판결).
반대로, 겉으로는 합의가 이루어졌더라도 강압적 분위기에서 합의서가 작성되었거나 지나치게 낮은 금액에 그쳤다고 판단되면 법원은 그 감경 효과를 제한하거나 아예 인정하지 않는다(수원지방법원 2023. 8. 17. 선고 2023고합242 판결).
성범죄 피해자는 형사 절차와 별도로 민사상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다(민법 제751조). 이때 형사에서 지급한 합의금은 원칙적으로 위자료의 일부 변제로 간주되고, 민사재판부는 전체 위자료를 복합적으로 산정한 뒤 이미 지급된 합의금을 공제한다(인천지방법원 2024. 10. 15. 선고 2023가단280166 판결). 따라서 형사에서 상당한 금액을 지급한 경우, 민사에서 별도의 위자료가 인정되지 않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피해자의 의사와 동의가 반영된 합의는 법원이 가장 중대하게 평가한다. 반면 피해자가 합의를 거부해 가해자가 공탁을 선택한 경우, 이는 ‘노력’으로서의 의미는 인정되지만 감경 효과는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다. 피해자의 명시적 의사가 담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법원은 합의금·위자료를 어떻게 산정할까? 성범죄 위자료의 법적 근거는 ‘민법’ 제751조다. 하지만 구체적인 액수는 정형화된 공식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건의 특수성과 여러 사정을 종합한 재판부의 재량에 의해 결정된다(창원지방법원 2023. 9. 22. 선고 2022나68340 판결).
판례가 보여주는 주요 고려 요소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범행의 중대성이다. 범행의 종류, 방법, 반복 여부, 잔혹성 등이 가장 기본이 되는 판단 기준이다. 특수강간이나 합동강간처럼 침해 정도가 심각한 범죄일수록 위자료가 높아진다. 실제 판례 중에는 특수강간 피해자에게 1억원을 인정한 사건도 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25. 7. 15. 선고 2024나15130 판결)(서울중앙지방법원 2024. 1. 26. 선고 2023가단5263752 판결).
둘째는 피해자의 특성이다. 미성년자일수록, 신뢰관계에 있는 친족이나 보호자에 의해 이루어진 범죄일수록, 장애 등 취약성을 이용한 범행일수록 위자료는 가중되는 경향이 뚜렷하다(수원지방법원 2023. 8. 17. 선고 2023고합242 판결)(수원지방법원 2025. 10. 20. 선고 2025가단511925 판결). 이는 성적 자기결정권 형성에 미치는 악영향과 배신적 범행 구조를 중시하기 때문이다.
셋째는 가해자의 태도이다. 반성 여부, 2차 가해 유무, 합의 과정의 진정성 등이 중요한 요소가 된다(대구고등법원 2018. 9. 20. 선고 2018노242 판결). 특히 법정에서 피해자를 비난하거나 무고를 주장하는 경우에는 위자료가 오히려 증가한다. 합의가 존재하더라도 강압적 상황에서 체결된 것이라면 법원은 이를 가볍게 평가한다(인천지방법원 2023. 12. 8. 선고 2023고합288, 2023초기5677 판결).
실제 사례를 통해 합의금의 범위를 알아볼 수 있다. 개별 사건의 특수성에 따라 합의금의 범위는 크게 달라질 수 있으나, 다양한 판례를 종합하면 대략적 경향은 다음과 같다. 강제추행은 1000만원~3000만원, 준강간·강간은 약 3000만원 이상, 합동·특수강간은 6000만원~1억원, 아동·청소년 대상 범죄는 3000만원 내외 또는 그 이상이다.
그밖에도 피해자의 부모 등 가족에게도 별도로 위자료가 인정되는 사례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 실례가 이러하다 하더라도 성범죄 사건에서 합의금은 결코 ‘시세’로 판단될 수 없음을 양지하기 바란다. 사건의 특수성, 피해자의 상태, 범행의 중대성, 가해자의 태도, 판례의 흐름 등 모든 요소를 조합해야만 비로소 합의금이 ‘적정한지’ 판단할 수 있다.
합의는 금전적 거래가 아니다. 피해자에게는 회복의 출발점이자 위로가 되어야 하고, 가해자에게는 진정한 반성의 증표가 되어야 한다. 법원이 바라보는 합의의 의미 역시 바로 그 지점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