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정치권을 중심으로 독립몰수제 도입을 둘러싼 논의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독립몰수제란 유죄 판결 여부와 무관하게 특정 재산이 범죄 수익으로 확인될 경우, 별도의 절차를 통해 이를 몰수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쉽게 말해 노태우·전두환 전 대통령의 비자금 환수와 같이 극히 예외적인 사안에서 논의되던 방식을 일반 형사사건 전반으로 확대하자는 구상이다. 범인의 사망이나 도피로 공소 유지가 어려운 경우에도 범죄 수익은 반드시 환수해 야 한다는 논리가 그 바탕에 깔려있다.
필자는 최근 여러 언론을 통해 독립몰수제가 지닌 위헌 성과 구조적 부작용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한 바 있다. 얼핏 보면 이 제도는 장기간의 수사와 재판 절차 속에서 고통받는 피해자들 에게 즉각적인 해결책이 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형사 사법 체계 전반에 적지 않은 혼란 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우선 범죄 수익이 제3자에게 귀속된 경우, 국가가 그의 악의를 입증해야만 해당 범죄 수익을 환수할 수 있다는 점은 이미 확립된 법리다.
만약 독립몰수제를 이유로 제3자가 선의임에도 국가가 재산을 환수할 수 있도록 하는 예외를 신설한다면, 이는 민사법 질서의 근간을 흔드는 중대한 문제로 이어질 수 있으며, 재산권 보호라는 헌법적 가치 역시 심각하게 침해될 우려가 있다.
범인이 사망했거나 특정되지 못했을 경우에만 재산 몰수를 허용 하자는 주장 또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독립몰수제는 애초 위헌성 논란으로 인해 극히 특수한 상황에서만 제한적으로 검토되던 제도였다.
그럼에도 최근에는 일반 범죄로까지 적용 범위를 넓히려는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한번 예외를 인정하면 또 다른 예외를 낳기 쉽다는 점에서 제도의 확대 적용은 더욱 엄격한 기준과 논증이 요구된다. 해외 사례를 근거로 드는 주장 역시 충분한 설득력을 갖추었다고 보기 어렵다.
독립몰수제를 채택하지 않은 국가 또한 적지 않은 만큼, 단순히 “해외에서 시행하니 우리도 도입해야 한다”는 논리를 세울 경우 쉽게 반박당할 수 있다. 더구나 중대 범죄의 경우 수사 초기 단계에서 이미 재산에 대한 보전 조치가 이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어서, 범죄 수익을 제 3자에게 이전하는 행위는 구조적으로 제한 된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독립몰수제가 도입되더라도 범죄자가 현금화하거나 가상자산으로 은닉할 경우, 몰수의 실효성이 획기적으로 개선되기는 어렵다는 점이 간과 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피해자를 위한 보다 실질적인 구제책은 피해 변제가 이루어질 경우 명확하고 예측 가능한 감형이 가능하도록 입법적으로 정비하고, 법원 역시 피해 회복의 의미를 적극적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피고인의 피해 변제가 자발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유인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공탁이나 피해 변제에 대한 감형 효과가 지나치게 제한적으로 인정 되고 있다. 이로 인해 피고인들로 하여금 ‘어차피 실익이 없다면 일단 버티면서 재판부에 연줄이 닿는 변호사를 찾는 것이 낫다’는 잘못된 판단을 하게 만든다.
연나라 소왕에게 신하 곽외가 들려준 고사(故事)가 있다. 옛날에 어느 왕이 천리마를 갖고 싶어 신하에게 구해 오도록 지시하자 신하는 죽은 천 리마의 뼈를 큰돈을 주고 사 왔다.
왕이 그 연유를 묻자 “죽은 말의 뼈도 대우한다는 소문이 퍼 져야 천리마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나타날 것”이라 했고, 결국 왕은 천리마를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피해자에 대한 신속하고 실질적인 피해 회복을 이루기 위해서는 여론에 기대어 엄벌주의 논리를 반복할 것이 아니라, 피해 변제 시 감형 효과를 분명히 하여 피고인 스스로 변제에 나설 유인을 제공해야 한다.
‘공탁 하면 감형된다’는 예측 가능성이 제도적으로 확보될 때, 비로소 피해 회복의 실질성이 담보될 수 있다. 필자와 같은 견해에 대해 “죄를 짓고 돈으로 감형을 받으려 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엄벌주의적 여론이 과연 피해자의 실질적인 회복에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피해 변제를 해도 감형을 인정하지 말라는 여론이 팽배해지고, 법원마저 피해 회복의 의미를 외면한다면 현실적인 피해자 구제는 요원해질 것이다.
입법자와 재판부가 이 점을 깊이 헤아려 형벌의 엄정함과 함께 실질적인 피해 회복이 조화를 이루 는 방향을 선택하길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