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 속에 숨겨진 1%의 진실을 찾아서

‘실질과세 원칙’ 증명하기 위한 싸움
감정적 호소 아닌 치밀한 정리 준비
1심 결과 뒤집고 ‘항소 인용’ 결정 나
항소심에 더욱 만전 기하는 계기 돼

 

1심에서 패소한 의뢰인들이 새로운 변호사를 찾아와 처음 내뱉는 말들은 대개 비슷하다. “상대방 주장만 일방적으로 수용된 것 같다”, “판사가 내 억울함에는 관심이 없다”… 심지어 전임 변호사가 사건을 사실상 방치했다는 식의 성토가 이어지기도 한다.

 

유명 인사들이 불리한 판결 앞에서 사법부를 향해 거친 비판을 쏟아내는 장면이 연일 뉴스를 장식하는 시대이다 보니, 패소의 원인을 외부로 돌리고 싶은 심정은 어찌 보면 지극히 인지상정(人之常情)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냉정하게 판결문을 뜯어보면 사정은 사뭇 다르다.

 

대다수의 판결문에는 쟁점 하나하나에 대한 재판부의 깊은 고뇌와 치밀한 법리 검토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대한민국 사법 시스템에서 판사 한 명이 감당해야 하는 사건의 양과 무게를 고려하면, 그들이 내놓는 결론은 대개 그 시점에서 도출할 수 있는 최선의 판단인 경우가 많다.

 

결과가 불리하다고 해서 곧바로 ‘부당한 판결’이라 단정할 수 없는 이유다. 그럼에도 변호사로서 사건기록을 면밀히 검토하다 보면, 가끔 가슴이 뛰는 순간이 찾아온다. ‘어라, 이 지점은 판단이 빠져있네’, ‘이 증거가 왜 이렇게 해석됐을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바로 그 순간, 즉 ‘1심의 오류’를 바로잡을 수 있는 실마리를 발견했을 때다. 그런 순간은 흔하지 않지만, 그렇기에 더욱 치열하게 기록을 들여다볼 수밖에 없다.

 

과거 필자가 맡았던 소송 가운데 바로 그런 사례가 하나 있었다. 해당 사건은 부가가치세 부과처분 취소 소송이었다. 1심에서 패소한 의뢰인은 자신이 소위 ‘바지 사장’일 뿐이며 실제 사업주는 따로 있다고 필자를 찾아와 절규했다. 조세법의 대원칙 중 하나인 ‘실질과세의 원칙’이 자신의 사례에도 적용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것이 의뢰인의 간절한 요구였다.

 

1심 기록을 보니 그에 관련한 주장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으나, 재판부를 설득하기에는 증거의 구체성이 턱없이 부족해 보였다.이에 항소심을 맡은 필자는 1심 패인의 본질을 ‘부족한 디테일’로 규정했다.

 

그날부터 약 2년에 걸친 계좌 내역과 당사자들 사이에 오간 방대한 메시지를 하나하나 입수해 분석하기 시작했다. 수천 페이지에 달하는 금융 거래 내역과 메시지를 일일이 대조하는 작업은 그야말로 ‘눈알이 빠질 듯한’ 고통을 수반했다. 모든 현금 흐름을 표로 정리했고, 각 이체 시점마다 오간 메시지를 특정하여 인과관계를 증명해 나갔다.

 

1심이 파편적인 자료에 의존했다면, 우리는 사건의 전체 궤적을 하나의 완벽한 지도로 그려낸 것이다. ‘우리 쪽은 떳떳하므로 거래 내역이든 메시지든 숨길 것이 없다’는 자신감이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항소심 재판 현장에서 재판부의 반응은 분명했다.

 

수십 일에 걸쳐 집대성한 방대한 자료를 살펴본 판사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 채 “이 많은 내역을 이렇게까지 정리하셨느냐”고 물었다. 이어 국세청 측 대변인에게 우리 주장의 타당성에 대해 직접 질문을 던졌다. 결국 완강하던 국세청조차 사실관계를 인정하며, 실제 사업주에게 세금을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한발 물러섰다. 

 

그리고 받아든 결과는 ‘항소 인용’이었다. 1심 판결을 뒤집고 의뢰인의 청구가 인용되는 순간이었다. 의뢰인의 절실한 목소리가 법의 언어로 번역되어 재판부의 마음을 움직인 순간이자, 변호사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받은 순간이었다. 승소 소식을 듣고 연신 고개를 숙이며 감사 인사를 전하는 의뢰인을 보며 필자 역시 가슴 한편이 뜨거워졌다.

 

다만 필자는 의뢰인에게 승소의 기쁨과 함께 냉정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항소심에서 결과가 뒤집히는 것은 변호사의 역량, 재판부의 성향, 새로운 자료의 확보 등 다양한 ‘운’의 요소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애초에 이런 법적 분쟁에 휘말리지 않도록 ‘리스크 관리’를 철저히 하는 것이며, 기록을 남기는 습관을 지니는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 사건 이후 필자는 항소심 사건을 대하는 태도에 더욱 만전을 기하게 됐다. ‘안 된다’고 포기하기보다는, 기록 속에 숨겨진 1%의 진실을 찾아내기 위해 한 번 더 서류를 들춰본다. 오늘도 필자는 누군가의 억울함이 담긴, 그리고 재판부의 심금을 울릴 수 있는 ‘치밀한 항소이유서’를 쓰며 밤을 지새운다. 진실은 결코 스스로 드러나지 않으며, 오직 포기하지 않는 자의 손길에 의해 증명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