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모르게 한도까지 대출을 받아 주식 투자를 하기 시작했다. 자기자본을 가지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투자하는 것이 정석이지만, 매월 갚아야 할 원금과 이자 탓에 마음이 조급해 투기 형태로 투자를 하여 금방 원금이 바닥이 났다.
한 달 봉급으로는 상환이 불가능해 개인 파산, 신용불량자가 된 후 직장을 그만두었다. 모든 통장은 압류되었고, 부모님의 증여재산과 퇴직금으로도 부채를 상환하지 못했다.
두려움으로 술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먹다가 결국 알콜 병원에 입원했다. 이후 보호자인 아내의 승인 없이는 채권자들의 방문이 금지되어 시달림에서는 멀어졌지만, 대신 아내와 아들들은 불안에 떨며 엄청난 고초를 겪어야만 했다.
나는 가족으로부터 멸시받고, 친구와 지인들로부터는 비난을 받는 처지가 되었다. 아내와는 이혼했고, 아들들과는 연락을 하지 않게 됐다.
모든 통장이 압류돼 기초생활수급비, 장애인 수당 등 정부 지원금은 압류 방지용 지킴이 통장을 이용했다. 회사 임금, 일용근로인부임은 아들 통장을 이용했다. 그러나 일자리가 변경될 때마다 법원의 압류결정문 사본과 가족관계등록부 등 관련 서류를 다시 제출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신용 회복을 위해 파산 처리 전문 업체를 수차례 방문해 상담하였으나, ‘채권기관이 너무 많은 관계로 어렵다’는 말뿐이었다. 높은 수임료를 지불한다고 해도 거절을 당했다.
그러다 얼마 전에 파산자의 신용 회복을 도와준다는 홍보물을 보고 신용회복위원회를 방문해 상담을 진행했다. 채권기관 목록과 함께 대한법률구조공단에 제출할 관련 서류를 구비해 제출했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등기부등본에 정리되지 않은 필지가 있었다. 문중 토지였다. 법원의 종중 승소 판결문과 참석 날인한 회의록을 보완 서류로 제출했다. 제출 후 1개월이 지나지 않아 법원으로부터 면책 결정을 받아 모든 통장의 압류가 해제됐다.
이제는 부채가 없다. 아들들에게 빚이 상속될지 모른다는 커다란 짐이 덜어져 불편했던 가족관계도 좋아지고 있다. 하늘을 훨훨 날고 싶은 심정이다. 깊은 잠도 잘 수 있었다. 속이 시원했다.
수백만원을 지불해도 해결하지 못할 일을 수임료도 없이 인지대, 수수료 등 고작 20만원의 비용으로 해결했다. 비록 7개월간 요구하는 서류를 갖추어 제출해야 했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는 수고였다.
그러나 순간의 분노를 참지 못한 대가로 지금은 어처구니없게도 영어의 몸이 되었으니, 다 된 밥에 재 뿌리는 격이라는 말이 내 처지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싶다. 그래도 담장 안에서 낙심하지 않고 하루하루 반성하여 살아가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인생에는 세 번의 기회가 있다고 한다. 출소한 후의 삶을 내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로 생각하고, 과거의 부담은 털고 죽는 날까지 건강과 행복을 위해 열심히 살아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