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와 다름없이 평온하던 경찰서에 새로운 인원이 들어왔습니다. ‘어떤 노역 Part 1’은 그렇게 시작된, 조금은 독특한 새 식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번 신입은 첫인상부터가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들어오자마자 거친 말투와 돌발적인 행동으로 주변 분위기를 흐트러뜨렸고, 결국 지켜보던 팀장님의 표정까지 굳어질 정도였습니다. 이 사내의 정체는 ‘노역수’였습니다. 노역수란 벌금이나 과료를 납부하지 못해 법원의 노역장 유치 명령을 받고 교정시설에 수용되는 사람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금전으로 치러야 할 벌을 몸으로 대신 때우기 위해 들어오는 경우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런데 이 친구는 저에게 결코 낯선 얼굴이 아니었습니다. 벌써 이번이 세 번째 만남이었습니다. 올 때마다 늘 비슷한 모습이었고, 이번에도 역시 만취 상태로 들어왔습니다. 혼자서는 제대로 서 있기조차 힘겨워 보여, 결국 주변에서 옷까지 직접 챙겨 입혀줘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처음에는 황당하고 답답한 마음이 앞섰지만, 한편으로는 참 익숙한 장면이기도 했습니다. 매번 같은 이유로, 매번 비슷한 모습으로 반복해서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들 말입니다. 그렇게 또 한 번, 이미 익숙해진 얼굴이 제자리로 돌아왔
여성 사동, 줄여서 흔히 ‘여사’라고 부르는 공간이 있습니다. 이곳은 이름 그대로 여성 수용자들만을 위한 전용 수용동이며, 근무 역시 여성 교교관들 위주로 배치되어 운영됩니다. 교정시설에서는 남성과 여성을 철저히 분리하여 수용하는 것이 원칙이기에, 구조나 운영 방식도 완전히 독립되어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곳의 관리 원칙 중 하나는 매우 명확합니다. 남성 교도관은 여성 수용자가 생활하는 거실 내부를 직접 시찰할 수 없습니다. 프라이버시 보호와 안전에 대한 기준이 그만큼 엄격하게 적용되는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사’는 같은 교정시설 안에 존재하면서도, 심리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마치 다른 구역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이 공간에 대해 직접 경험한 바가 없습니다. 실제로 내부를 가본 적도 없고 현장에서 근무해본 적도 없기에, 그곳의 일상을 자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닙니다. 그저 같은 울타리 안에 있지만 결코 닿지 않는 곳, 그런 막연한 느낌으로 상상해볼 뿐입니다. 어쩌면 담장 안의 교정시설 속에서도, 이처럼 서로 다른 세계가 각자의 규칙과 경계를 가진 채 나뉘어 존재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신규 직원 시절은 누구에게나 그렇듯, 팽팽한 긴장감으로 가득했던 시간입니다. 처음 교도관 계급장을 달고 근무 모자를 눌러쓴 채 출근하던 날, 제가 가장 많이 했던 일은 단연 인사를 건네는 것이었습니다. 상급자분들을 마주칠 때면 기본적인 인적 사항부터 시작해서, 여자친구가 있는지와 같은 사적인 질문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답변을 드려야 했습니다. 복도든 화장실 앞이든 가리지 않고 선배들을 마주칠 때마다 큰 소리로 경례를 하며 지나가던 기억이 선합니다. 당시 워낙 긴장한 상태이다 보니, 경례의 대상을 구분하는 감각조차 무뎌져 있었습니다. 결국 거실 소지에게까지 깍듯하게 경례를 해버리는 실수를 저질렀고, 이를 본 수용자들이 “신규 왔다”라며 수군거리며 바로 알아채는 상황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때 처음 알게 된 엄중한 사실이 있습니다. 만약 그 장면을 관구계장님 같은 상급자가 목격했다면, 단순히 웃고 넘길 해프닝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소지 입장에서는 규율 위반 문제로 번질 수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소지 직책에서 해임되거나 가석방 심사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또한 이곳에서는 사소한 실수 하나도 결코 가볍게 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점을
엄마, 하고 마음을 담아 목청껏 불러봅니다. 엄마, 제 목소리 지금 들리시나요. 유행가처럼 늘 부르던 엄마. 배고플 때 밥 달라고 “엄마”하고 부르고 학교 갈 때 “엄마,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집에 오면 “엄마, 다녀왔습니다” 내가 아쉬울 때 애교 부리면서 “엄마” 60년을 넘게 입에 달고 부르던 나의 노래 “엄마” 지금은 부를 수가 없네. 우리 엄마는 나에게 수많은 것들을 가르쳐주셨지요. 내가 세상의 빛을 보기 전에는 태내에서 엄마의 심장박동 소리를 들으며 세상의 언어를 배웠고, 세상의 빛을 보면서는 엄마는 나에게 젖가슴을 내밀어 초유를 주시며, 엄마와 나의 첫 인연을 가족의 끈으로 만들어주셨습니다. 엄마가 숨을 쉬면 내가 숨 쉬는 것이고, 엄마가 웃고 있으면 내가 웃고 있고... 그런데 왜 엄마의 아픔과 슬픔은 대신하지 못할까? 참 아쉽다. 이제는 우리 엄마가 늙어가는 모습만 바라보면서 수많은 기억들을 돌이켜봅니다. 엄마에 대한 감사, 사랑, 배려 이런 단어들은 영원히 내 곁을 떠나지는 못할 것입니다. 이 시간이 지나고 조금 더 지나면 수십 년, 수백 년이 흐른 뒤에 엄마에 대한 나의 사랑이 영원히 길이 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엄마, 감사합니다. 고맙
미움과 귀여움의 차이 아무 데서나 방귀 뀌기, 반찬 많이 먹기, 화장실 나오면서 슬리퍼 아무 데나 벗어 던지기, 3옥타브로 코 골기 등등. 같이 지내는 어떤 인간의 만행 때문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어디서 이런 인간이 혜성처럼 나타나서 내 수명을 갉아먹는 건지, 하… 그래 이것이 감옥이지, 이 또한 치러야 할 내 죗값에 패키지로 포함된 것이라 여기며 매일을 정신승리 갱신을 하던 10여 년 전이 떠오른다. 사람이 싫으니 하나부터 열까지 다 밉게 보였는데, 그중에서도 제일 싫은 것은 매 순간 인상을 쓰고 다니는 그 사람의 면상이었다. 저 양반 왜 저래? 뭘 잘했다고 저렇게 인상을 구기고 다녀? 쎄보이려고 저러나? 별생각 다하며 그 사람에 대한 미움이 커져 갈 무렵, 어느 날 접견장 대기실에서 그 인간과 딱 마주친 것이다. 서로가 비호감임을 인지해 온 시간의 무게만큼 대기실의 적막감은 무척이나 무거웠다. “000번, 스마트 2호 접견실로 들어가세요.” 구세주 같은 직원의 방송이 나오자, 그 사람이 먼저 접견실로 향했다. 잠시 후, “하하하, 우웅~ 구래구래~ 우리 딸내미 아이스크림이 그렇게 맛있쪘져?” 접견실 문 너머로 그 사람의 대화 소리가 새어 나왔
수많은 사람들이 죄를 짓고 교도소, 구치소에서 자유가 제한된 힘든 생활을 보냅니다. 지난번 <더시사법률>에 투고했던 투고자님의 말씀처럼 구치소든 교도소든 사회와 마찬가지로 돈(영치금)이 없으면 ‘법자’(법무부 자식)라는 은어로 불리며 거실 내 소일거리를 맡아서 하거나 식기 당번제, 화장실 청소와 같이 번갈아 가며 해야 될 일도 도맡아 하게 되는 경우가, 저의 주관으로는 거의 모든 교정시설이 마찬가지 아닐까 생각합니다. 필자인 저도 ‘법자’입니다. 미결수를 지내는 동안 영치금이 없고 접견 오는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거실을 쓸고 닦고, 화장실 청소, 설거지, 식수 받기, 구매지 작성을 다 했습니다. 20시 30분에 모포를 깔면 그대로 잠들었고, 오전 5시 30분이 기상 시간이었습니다. 영치금이 어느 정도 있어야 징역 생활이 편하다는 것에는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저 같은 경우 괴롭힘이 심해서, 주로 괴롭힘을 주도했던 인원이 전방을 가고도 쓰리쿠션(타교도소에 편지를 적어 원하는 교도소로 편지를 보내는 행위)으로 저를 괴롭히라고 하는 정도까지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어차피 이런 일로 면담을 해봐야 좁은 징역에서 코걸이라며 더욱이 사람 취급을 못 받을 것이
언니, 잘 지내고 있어요? 작년 10월에 언니가 집행유예로 나가셨으니까 8개월이 지났네요. 그때 막내딸이 임신 중이라 혹 실형을 받고 기결수가 되면 어쩌나 걱정 많이 하셨는데 지금은 손자 품에 안고 함박웃음 지으며 살고 있겠네요. 언니가 선고 며칠 앞두고 나한테 그러셨지요? 뜬금없이 “도와줘서 고마웠다”고… 나는 언니를 도와준 게 없는데 언니가 그러기에 그냥 인사치레로 받았었지요. 작년 여름은 정말 ‘살인 더위’라는 말을 실감했었잖아요. 더위 타는 언니가 너무 힘들어해서 나는 언니의 빨래를 해주었었고 사물함도 심심하면 정리를 했잖아요. 솔직히 언니를 도와준다는 배려심보다는 내 성격상 주위가 어지러운 걸 못 보고 있기 때문에 나이 많은 언니에게 잔소리를 하느니 내가 했던 건데 언니는 불쾌해 하거나 짜증을 내기보다는 오히려 좋아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나도 많이 편했답니다. “고마웠다”라는 인사는 언니가 아니라 내 쪽입니다. 언니는 수감생활하면서 남에게 많이 베푸셨고, 어린애들이 거실에서 엉뚱한 짓을 할 때는 가차 없이 훈계도 했었지요. 어떤 애들은 반감을 가지기도 했지만 난 언니의 그런 모습을 내심 맘에 들어 했었습니다. 언니가 집행유예로 가족 품으로 가셨을 때는
2013년 11월 6일, 이 세상에 내 눈을 쏙 빼닮은 딸아이 두 녀석이 태어났다. 이란성 쌍둥이… 볼을 비벼보고, 살짝 꼬집어 보고, 내 배에 올려놔 보고, 두 팔로 안아보고, 앞뒤로 업어 보고, 밤새 우는 아이를 재워보고, 우유를 먹여보고, 내 쭈쭈도 물려보고… 혹여 닳을까, 혹여 떨어질라, 땅에 내려놓는 것도 아까워… 어쩜 이렇게도 예쁠까? 어쩜 이렇게도 귀여울까? 이토록 아름다운 인형을 내가 만들었다고? “아빠~” 오메, 아빠라고 했다. “여보~ 방금 아빠라고 했어." “아빠~ 아빠~” 내가 만든 인형이 이제 말도 한다. 내게 아빠라고 하는데? 분명 아빠라고 했는데… 그래, 내가 너희 아빠다. 내가 창조주다. 내가 너희 둘을 한방에 만들어낸 창조주다. 기어다니던 녀석들이 아장아장 걷는다. “오~ 걷는다. 걷는다.” “여보! 봤어? 걷는 거?” 아빠도 그때가… 아장아장 걷던 그때가 그립다. 할머니 품에서, 할머니 손을 잡고 살던 그때가… 너무도 그립다. 할머니 품에서 엉엉 울었던 그때가… 밥상 머리 파리채를 움켜쥐고 밥을 떠먹이는 전투적이던 할머니… 이제 그 추억 비슷한 것을 돌아보며 내 딸아이를 마주하면서, 그때… 그 기억을 떠올린다. 나도 너희들처럼
술, 단합과 화목을 이끄는 리더 술, 어둠의 길을 안내하는 사신 술, 슬픔을 잊게 하고 희망을 주는 달콤한 사탕 술, 주위에 피해를 주고 나락으로 이끄는 악마 술, 아픔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고 꿈나라로 이끄는 몽마 술, 돈을 잃게 하고 건강을 악화시키는 병원균 술, 정신과 마음을 진정시켜 주는 진정제 술, 정신과 몸을 중독시키는 마약
한 줌의 흙밖에 남지 않는 인생인 걸 왜 이리도 발버둥 치며 살아야 하는지. 죄를 짓고도 주위 사람을 헐뜯고 욕하고 아등바등하며 상처만 남기는 것이 인생살이인가. 백 년 살기도 힘든 세상만사, 죄만 짓는구나. 이래도 한세상 저래도 한세상, 너무 빡세게 살지 말고 이놈의 세상살이 이렇게도 살아서는 안 되는데 하면서도 이렇게 살아왔구나. 이것도 알면서도 이렇게 살아왔는데 앞으로도 후회하며 그렇게 살 것 같구나. 인생살이, 아무리 뒤집으려 해도 아무리 바꾸려 해도 욕심만큼은 버리지 못하니 그래서 욕심이 죄를 지어 깊은 수렁에 헤어나지 못한 삶이다. 어찌할까 생각에 묵상에 지난날의 반성에 나에게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가 싶을 때이다. 이곳에서 오 개월이 넘었지만 아직까지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심술이 나는구나. 좀 더 시간을 보내며 반성과 침묵으로 성숙한 사람으로 변하고 싶을 때이다. 더 깊은 반성으로 좋은 앞날을 꿈꾸며 하루를 헛되지 않게 계획성 있게 살 것이다.